[우지경의 Shall We drink] <25>과학으로 빚은 맥주, 코펜하겐 칼스버그

2016. 7.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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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뉘하운(Nyhavn) 부둣가 노천카페는 여름날 맥주를 마시기에 낭만적인 장소다.
1847년 J.C 야콥센이 세운 코펜하겐 칼스버그 양조장 전경.
양조장 안뜰의 나무 테이블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가이드 투어 전 시원하게 마신 칼스버그 필스너 한 잔.
코펜하겐 칼스버그 양조장 정원에서 만난 인어공주 자매 동상.
1854년 J.C 야콥센이 만든 다크 라거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양조 시설.
코펜하겐 칼스버그 양조장에서만 생맥주로 맛볼 수 있는 칼스 스페셜.

“단 하루만 인간이 되어 천국 같은 세상을 살 수 있다면 300년의 삶을 내놓겠어요.”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Andersen)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간계의 왕자를 사랑하게 된 인어공주의 대사다. 안데르센의 숨결이 깃든 도시, 코펜하겐(Copenhagen) 랑겔리니 항구 끝자락엔 먼바다를 응시하는 작은 인어공주 동상이 놓여있다. 시내와 떨어진 애매한 위치임에도 코펜하겐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명소라 하겠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물거품이 되어도 좋다는 애절한 사랑보다, 황금빛 맥주의 뽀얀 거품에 가슴이 뛰는 나는 인어공주 동상 대신 코펜하겐 칼스버그(Carlsberg) 양조장으로 향했다. 칼스버그 역시 안데르센에 버금가는 덴마크의 아이콘 아니던가. 칼스버그는 세계 최초로 라거(Lager)에서 ‘하면발효 효모’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며 맥주 역사에 획을 그은 맥주 브랜드이기도 하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국철을 타고 칼스버그 역에 내리니, 언덕 위 양조장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독일어로 카를의 언덕이란 뜻의 칼스베르크(Carlsberg의 독일어 발음)란 이름처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이 언덕 위에 여러 채 있었다. 입구 표지판에 쓰인 ‘코펜하겐 익스비어런스(The Copenhagen Exbeerience)’라는 문구에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음악이 흐르는 양조장 안뜰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꽤 많았다.

가이드 투어 시작 전 양조장 굴뚝 아래서 시원한 칼스버그 필스너 생맥주부터 한잔 쭉 들이켰다. 입안에 거품이 부드럽게 퍼지면서 청량한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풍미가 작렬하거나 홉의 톡 쏘는 맛은 없지만 가볍고 깔끔한 맛에 갈증이 싹 가셨다.

“1847년 칼스버그를 창립한 J.C 야콥센(Jacob Cristian Jacobsen)은 8살 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양조장에서 맥주 만드는 일을 배웠어요. 당시 덴마크에는 에일(Ale) 밖에 없어서, 그는 독일 맥주로 눈을 돌렸습니다. 덴마크산 라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 뮌헨으로 건너가 제들마이어(Sedlmayr) 양조 장인에게 라거 양조법을 전수받고 효모를 가지고 돌아왔지요.”

가이드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칼스버그의 역사부터 들려줬다. 이어 운송 마차용 말을 기르던 마구간, 맥주 저장고, 연구소 등을 차례로 소개하며 칼스버그가 맥주 질 향상을 위해 과학자들과 긴밀하게 협업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야콥센이 연구소를 만들고 과학자들을 고용한 결과, 1883년 여기서 한센 박사가 라거에서 하면 발효 효모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어요. 더 놀라운 건 그 기술을 돈을 받고 팔지 않고 무료로 공유했다는 점이죠. 최고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 눈앞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양조업계의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철학을 이어받아 지금도 과학자들과 함께 맥주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읽은 미담을 양조장에서 직접 들으니 생생하게 다가왔다. 더 놀라운 건 양조장 정원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이었다. 가이드의 ‘인어공주 자매 동상’이란 설명에 ‘그래, 인어공주에겐 언니 다섯이 있었지. 그중 한 명인가?’ 하고 짐작해봤다.

그런데 웬걸. 코펜하겐의 명물, 인어공주 동상을 만든 이가 칼스버그 창립자의 아들 카를 야콥센(Carl Jacobsen)이란다. 어릴 때부터 안데르센의 동화와 조각품을 사랑한 그는 1909년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Edvard Eriksen)에게 의뢰해 인어공주 동상을 항구에 세웠다. 그러니까 양조장에 있는 인어공주 자매 동상은 인어공주 동상의 원형이었다. 카를 야콥센은 예술에 조예가 깊어 모네, 로댕, 밀레 등 쟁쟁한 작가의 미술품을 수집해 별채에 보관했는데, 그 별채가 지금의 코펜하겐 중앙역 근처의 칼스버그 박물관이 됐단다. 카를 야콥센은 당시 보기 드물게 맥주 조기유학 코스를 밟은 맥주 영재이기도 했다. 체코, 영국, 스코틀랜드 등에서 맥주 공부를 하고 돌아와 체코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과학을 사랑한 아버지와 예술을 사랑한 아들이 키운 브랜드가 칼스버그다. 술과 예술을 두루 사랑한 집에서 만든 맥주라니 더욱 호감이 갔다.
가이드 투어 후 2층 바에서 이 양조장에서만 만드는 ‘칼스 스페셜(Carls Special)’을 맛봤다. 1854년 J.C 야콥센이 만든 다크 라거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맥주로 2005년부터 소량 생산하고 있다. 몰트의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가 가득하면서도 목 넘김이 편했다. 약 170년 전 기필코 덴마크산 라거를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굳은 신념처럼 진한 색도 매력적이었다.

어쩌면 술을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여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먼 길 마다치 않고 양조장까지 와준 친구와 잔을 부딪치며 덴마크어 건배 ‘스콜(skål)’을 외쳤다. 무척이나 청량한 여름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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