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고 기이한 불상, 알고보니 남녀합체불
[오마이뉴스 노시경 기자]
몽골 원나라의 초기 도읍이었던 하르호린(Kharkhorin)에 와서 보니 과거 역사를 알게 해주는 건축물은 오직 에르덴 조(Erdene Zuu) 사원 뿐이다. 몽골의 수도였지만 터만 남은 왕궁 터 위에 라마교 사원인 에르덴 조 사원이 들어서 있다.
에르덴 조 사원의 건물을 지을 당시 과거 왕궁 터에 남은 건축 자재들을 가져다가 만들었다고 하니 에르덴 조 사원 건물의 이곳저곳에 옛 왕궁의 흔적들이 박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에르덴 조 사원 내부. 넓은 경내에 전각 몇 채 만이 드문드문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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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르호린이 수도였다고 믿을 만한 왕성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원나라 당시의 여행가들이 남긴 기록에는 수많은 벽돌 건축물과 2개의 큰 이슬람 사원, 12개의 몽골 샤머니즘 사당이 있었다고 하나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아시아와 중동, 유럽 각지에서 수많은 상인들과 문물이 모이던 세계 수도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원의 대지에는 넓은 공원 같은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왕성 터 위에 세워진 에르덴 조 사원도 번성할 당시에는 스투파로 만들어진 담장 안에 60 여 개의 전각과 함께 300개의 게르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번성함을 찾을 수 없다. 청나라의 하르호린 침공 당시 하르호린이 쑥대밭이 되면서 에르덴 조 사원도 많은 전각들이 허물어졌다.
몽골이 소련의 영향을 받는 사회주의 국가가 된 이후에도 다른 불교 사원들과 같이 에르덴 조 사원도 파괴되고 방치되었다. 특히 1930년대 소련의 스탈린 독재 정권이 일체의 종교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에르덴 조 사원은 아주 심하게 파괴되어 아예 문을 닫게 되었다. 다행히 에르덴 조 사원을 포함한 몽골의 사원들은 최근에 복원이 되어 외국인들에게도 문을 개방하고 있다.
▲ 석수. 원나라 당시 왕궁을 지키고 있었을 사자상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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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부분이 지저분해 보일 정도로 검게 변한 것은 복을 기원하는 신도들이 손에 기름을 묻혀서 동물상을 만졌기 때문이다. 이 사자상들은 몽골의 전성기인 원나라 시대의 왕궁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자상들이다. 이곳을 찾은 몽골의 불교신자들은 쓸쓸한 옛 왕궁 터에 끝까지 남은 석조 동물상을 만지면 그 기가 전해져 복이 온다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 외부 전시물들. 원나라 왕궁 터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줄을 맞춰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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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덴 조 사원이 번성할 당시에 일천 명의 스님들이 살았다고 하니, 이곳에 남은 가장 큰 솥은 일천 명에 이르는 스님들의 식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대지의 나라 몽골답게 불교 사찰도 넓은 초원 위에 호방하게 펼쳐져 있고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사용한 솥의 크기도 크다.
▲ 사원의 솥. 사원 안에 기거하던 천 명의 스님들의 식사를 도맡았던 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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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차. 몽골의 불교 신자들이 경통을 돌리면서 소원을 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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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마니반메훔'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지혜에 상응하여 불심을 일으키게 해달라는 뜻이다. 즉 이 신자들은 고통스러운 윤회의 과정을 끝내고 열반으로 인도해 달라며 주문을 외우고 있다. 광막한 초원에서 힘든 삶을 사는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 에르덴 조 사원의 스님. 몽골 전통방식 대로 세워진 전각 앞을 한 스님이 걸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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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의 전각. 에르덴 조 사원 안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대웅전 격의 전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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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 사찰 구조와 굳이 비교한다면 이 '걸 조'가 대웅전 격인 전각이다. 걸 조의 지붕은 초록색 암기와에 짙은 푸른색, 엷은 푸른색의 수기와, 그리고 지붕 중앙 부분의 황색 수기와가 잡초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몽골 친구가 대웅전 외부 문 위에 있는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설명을 해 준다. 대웅전 문 위의 여러 개 문양이 몽골 국기 안에 있는 황색 소욤보(СОЁМБО) 문양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몽골 국기에 반영된 문양을 담고 있을 정도로 '걸 조'의 몽골 내에서의 위치는 높고 높은 것이다.
▲ 소욤보 문양. 몽골 국기 문양의 기원이 바로 이 에르덴 조 사원의 ‘걸 조’에서 비롯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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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합체불. 남자와 여자의 이원적인 에너지가 합일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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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합체불의 표정. 쾌락의 순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함인지 남성불의 표정이 험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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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부처님이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불상입니다."
나는 불교지식이 깊지 않은 몽골 친구가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불상은 우리나라 한 박물관에서 기획전으로 열었던 '티벳불교 전시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불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설명은 몽골 친구가 말해준 것과는 달랐다.
아내도 몽골 친구가 겸연쩍을 것 같아 남자가 작은 아이를 안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몽골에서 가이드 생활을 하겠다는 몽골 친구를 위해 그의 설명이 잘못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 불상은 남녀합체불입니다. 남녀가 성교를 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불교 불상 중 세계 어느 나라의 불교에서도 볼 수 없는 티벳 밀교 특유의 불상입니다. 하지만 티벳 불교의 영향을 받은 몽골의 불교가 타락하거나 성(性)이 개방적이어서 이런 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남성과 여성의 이원적 에너지를 함께 지닌 우주 에너지의 집합체라는 것이지요. 모든 상반되는 원리는 다시 합일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요."
나는 남성을 나타내는 불상의 얼굴이 왜 이렇게 험악한지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말하였다. 남녀합체의 순간에 왜 눈꼬리가 올라간 채로 위협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을까? 왜 이렇게 가냘파 보이는 여성을 꾸짖는 듯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래도 불상인데 성교의 즐거운 쾌락을 얼굴에서 지우고 짐짓 사원에서의 정숙을 유지하기 위함인가? 아무리 봐도 이성 간의 합일을 나타내는 불상의 모습이 기이하고 기이하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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