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벽화마을, 이야기꽃 흐드러진 골목길

2014. 9. 3. 08: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장성배 기자 = 서울 종로구의 이화벽화마을 도보 여행은 대학로에서 가까운 이화동 주민센터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주민센터 안으로 들어서면 민원서류 신청 창구에 '이화동 벽화마을 착한여행 지도'가 수북이 쌓여 있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다. 이화벽화마을을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제작된 지도로 친절한 가이드처럼 다가온다. 전체적인 동선을 파악할 수 있고 대표적인 벽화들이 어디쯤 있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이화동 주민센터에서 나와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샛길인 이화장1길로 접어들면 이화벽화마을로 향하게 된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은 대부분 주민센터 앞 오거리에서부터 길을 잃고 헤맨다.

이화장1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화장(梨花莊, 사적 제497호)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사저로 유품과 사진 자료가 전시돼 있다. 2011년 7월 집중호우로 인해 본채(전시관), 부엌 등이 큰 피해를 입어 현재 휴관 중이다.

굳게 닫힌 이화장 정문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 담 옆으로 돌계단이 나 있다. 이화장에서 이화경로당을 지나 하늘분식까지 약 140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처음 올려다보면 까마득하지만 계단 양편에 조성된 화단과 왼쪽 벽면의 그림을 감상하며 걸으면 힘든 줄 모르고 오르게 된다.

이화장 돌계단 끝에 자리한 하늘분식은 중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본래 창고로 쓰던 건물인데 작년 7월 A씨가 작은 식당으로 변모시켰다. A씨는 "중국인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온다"고 말했다.

"80%는 중국인이에요. 짜장라면(짜파게티)이랑 김밥이 가장 인기 좋고 떡볶이, 순대, 어묵도 많이 나가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손님이 많은데 중국 사람들 목소리가 아주 크잖아요? 주민들이 시끄러워서 못 살 정도예요."

하늘분식의 메뉴는 관광객을 위해 3개 언어(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표기돼 있다. A씨는 "베이징대를 졸업한 딸이 메뉴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커피와 차는 11가지가 판매되며 가격은 2천~3천 원이다.

◇계단에서 헤엄치는 잉어 가족

하늘분식에서 한숨을 돌린 후 주변을 둘러보면 이화벽화마을의 중심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하늘분식 앞 작은 사거리는 이화벽화마을 관광 코스를 구성하는 가로축과 세로축의 교차점이다. 계단으로 된 이화장1나길과 차선이 없는 이면도로가 엇갈린다.

이화장1나길은 이면도로를 가로질러 오르는데 약 60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이어지는 계단길에 들어서면 관광객을 마중 나온 '물고기 가족' 그림을 만나게 된다. 30여 개 계단을 화폭으로 삼아 그린 비단잉어 네 마리다. 푸른 수면 아래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듯한 원색의 잉어들이 행복감과 생동감을 선사한다.

'물고기 가족'은 현재 이화장1나길에 주소를 둔 주민 B씨의 바람이 구현된 그림이다. 지난해 가을 7년 만에 이화벽화마을을 다시 찾아와 벽화 작업을 한 경희대학교 미대 이태호 교수팀이 주민들과 사전 인터뷰를 했을 때 나온 의견이 반영됐다. B씨는 당시 만삭인 아내를 위해 태교에 좋다는 잉어 그림을 부탁했다.

이화벽화마을에서 만난 이 교수는 "'물고기 가족'은 아빠, 엄마, 딸, 아들이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느낌의 따뜻한 가족애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한테 '뭐 그려 드릴까요?' 하면 대부분 꽃이라고 그럽니다. 그렇다고 전부 꽃만 그리면 지역적 특성이나 주민들의 삶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창조적 의미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미술의 기능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습니다. 공공미술은 전문가들이 동네 주민의 의견을 걸러서 작업해야 합니다."

비단잉어 그림을 지나 이화장1나길을 오르면 계단 끝에 이화마루텃밭과 한양도성이 나타난다. 이화마루텃밭 바로 옆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 평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2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어 주민과 관광객 모두의 쉼터 역할을 한다. 이화장에서 이화마루텃밭까지 200여 개 계단을 쉼 없이 올라온 관광객이라면 평상에 누워 하프타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하프타임을 조금 길게 갖는 것도 좋다.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서울의 600여 년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낙산(駱山) 정상부 낙산성곽길에 서면 남산, 인왕산, 동대문 지역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양도성과 낙산공원은 이화벽화마을 여행의 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국내 최대의 타일 모자이크 벽화

이화벽화마을 도보 여행의 후반전은 이화마루텃밭에서 출발한다. 텃밭 옆 '이화동 마을박물관'을 지나면 곧바로 율곡로19길이 나타난다. 벽화를 보며 올라왔던 이화장1나길과 20여m 간격을 두고 조성된 또 하나의 계단길이다.

율곡로19길 계단길은 초반부터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양쪽 벽면에 다양한 소재의 벽화가 구현돼 있다. 벽화마다 한쪽 여백에 '낙서 금지'라고 써놓았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은데 신기하게도 '낙서 금지'가 적힌 벽화는 모두 처음처럼 상태가 온전했다. 관광객을 위한 낙서장은 따로 있었다. 율곡로19길 계단길을 3분의 1가량 내려가면 낙서 전용 벽면을 볼 수 있다. 가로 4m, 세로 2m 크기의 벽면 전체를 칠판처럼 만들고 상단에 'Before I die…'를 써 놓았다.

낙서장을 뒤로하고 계단길을 내려가면 이화벽화마을의 수작(秀作) 중 하나인 타일 모자이크 벽화가 나타난다. 지난해 경희대 이 교수팀이 시멘트 계단에 페인트로 그려진 기존 꽃 그림 위에 색색의 비정형 타일을 붙여 선보인 작품이다. 30여 개 계단에 조성된 작품을 감상하면 일반 벽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감과 질감이 전해진다. 이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율곡로19길 계단길은 '깔딱고개'에서 '꽃계단'으로 별칭이 바뀌었다.

한 가지 아쉬움은 예산 부족으로 현재 미완성 상태라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이화벽화마을 미술 작품 보수와 신규 창작을 위해 이 교수팀에게 준 기금은 2천300만 원이었다. 이 교수팀은 총 7개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는데 타일 모자이크 벽화에 가장 많은 돈과 인력을 쏟아부었다. 이 교수는 "예산이 마련돼 꽃계단 벽화가 완성되면 국내 최대 타일 모자이크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동에 날개 달아준 천사 날개 벽화

'꽃계단'을 다 내려오면 이면도로다. 이화벽화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천사 날개'가 이면도로 건너편에 모습을 드러낸다. 창공에 떠 있는 한 쌍의 날개 가운데 서면 누구나 천사가 되는 구도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인해 '천사 날개' 주변은 늘 북적댄다.

'천사 날개'는 본래 이화마루텃밭 아래 계단길에 있었다. 도서 디자인이 직업인 젊은 부부 세입자가 그렸는데, 인기 TV 프로그램인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이화벽화마을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천사 날개'는 프로그램 출연 배우의 이름을 따 '이승기 벽화'로도 불리었다.

오리지널 '천사 날개'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유명세로 인해 단명했다. 관광객이 몰려들자 벽화 주변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일부 관광객이 밤에 찾아와 옷을 거의 다 벗고 기념사진을 찍는 통에 주민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천사 날개'는 지난해 지금 자리인 이면도로 건물 벽에 부활했다. 좁은 계단길이 아닌,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많은 자리인지라 팬티만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추태는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화벽화마을 실제 주인공은 봉제 노동자

'천사 날개'를 지나 남쪽으로 수십m 내려가면 굴다리가 나온다. 이화벽화마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굴다리 한쪽 벽면에 그려져 있다. 작업복을 입은 여성이 미싱으로 박음질하는 모습을 표현한 대형 벽화다.

이화동은 인접한 충신동, 창신동과 함께 반세기 전부터 동대문시장의 생산 기지였다. 동대문시장에서 판매되는 의류, 침구류, 신발, 수예, 커튼, 액세서리 등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부부 또는 직원 서너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봉제업체가 이화동 곳곳에 산재해 있다. 2006년 이화동 일대에서 진행된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봉제 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박종해 작가가 2층 주택 한쪽 벽면에 그린 '봉제인, 존경의 벽'이 대표적이다. 목에 줄자를 건 봉제 노동자 부부가 미싱 뒤에 서 있는 모습의 그림인데 지금은 사라져 찾아볼 수 없다. 건물 주인이 벽화가 유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경희대 이 교수팀이 공공시설인 굴다리에 봉제 노동자를 그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화동의 역사와 일상을 표현한 벽화가 훼손되지 않고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경찰서장이 송전탑 반대 주민에 100만∼300만원 돌려
"계약자 서명없는 보험은 무효…설명의무 소홀은 배상해야"
선거법 무죄·국정원법은 유죄…법원 판단 이유는
英스톤헨지 주변 땅속서 구조물 수십 개 발견
오른 다리 절던 北 김정은, 이번엔 왼쪽 '절룩'

▶ 이슈에 투표하고 토론하기 '궁금한배틀Y'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