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 속 햇살이 파고드니.. 신비의 검은 동굴이 열렸다
제주도는 12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다. 섬 전체가 '화산 박물관'이다. 화산으로 생겨난 오름이 368개나 솟아 있고, 그 아래 160여 개의 용암동굴이 흩어져 있다. 자그마한 섬에 이만한 오름과 동굴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중 자연미가 뛰어나고 화산 지형이 독특해 다양한 생태계를 간직한 거문오름은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린 제주의 대표 오름이다.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동굴도 모두 거문오름에서 탄생했다. 제주가 고향인 배우 고두심이 최고의 명소로 꼽은 곳도 바로 거문오름이다.
거문오름(해발 456.6m)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와 구좌읍 덕천리에 걸쳐 있다. 한라산 북동쪽 기슭에 솟은 거문오름은 제주의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불리는 이름도 여럿이다. 예부터 분화구 모양이 방아를 닮았다고 해서 '방하악', 흙과 돌이 유난히 검다고 해서 '검은오름'으로 불린다.
제주사람들에게조차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거문오름은 2008년 국제트레킹대회가 열리면서 그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탐방코스는 전망대코스(1.8㎞)와 분화구코스(4.5㎞), 정상코스(5.5㎞) 3가지. 9개의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진 능선은 길이가 4.4㎞, 바닥 지름이 1㎞에 이른다. 탐방로는 하늘에서 보면 노선이 태극무늬를 닮아 일명 '태극길'로 불린다.
거문오름은 '종합선물세트'다. 원추형·말굽형·원형·복합형 등 제주 오름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남방·북방식물이 공존해 식생도 다양하다. 거대한 화산체는 숯가마터, 일제강점기의 동굴진지와 주둔지, 4·3유적지 등 제주 근대사의 고난과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오름 들머리는 삼나무숲이 길게 이어진다. 중턱에 이르자 제1초소가 반긴다. 숲은 계절이 무색할 만큼 울창하다. 삼나무, 편백나무, 곰솔, 상수리나무, 윤노리나무, 보리수나무, 단풍나무, 쥐똥나무가 나란히 어깨를 겨룬다. 그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스며드는 가을 햇살이 맑고 눈부시다.
좌측으로 가파른 나무데크를 따라 능선에 이르자 시야가 트인다. 한 줌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 밑으로 꽃향유, 탐라산수국, 주걱비름, 방울꽃이 가을 햇살을 탐하고 있다. 능선 왼쪽 오름 밖은 들판 너머로 오름이 겹겹이다. 서우봉과 밭돌·안돌·높은·동거문·따라비오름 등이 봉긋봉긋 솟아 있다. 쳇망·구두미·부대·물찻·궤팽이·민·지그리·거친·대천이·바농·명도암·꾀고리·세미오름도 한눈에 잡힌다.
능선 오른쪽은 숲 기운 가득한 거멀창(분화구)이다. 능선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자 동남쪽 낙엽수림과 서북쪽 상록활엽수림의 경계가 뚜렷하다. 한 오름에 다른 식생의 군락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신비하다.
전망대에서 가파른 나무데크를 따라 아래로 내려서면 제2초소다. 분화구로 파고드는, 본격적인 탐방의 시작이다. 말발굽 모양의 분화구는 한라산 분화구보다 4배나 크다. 그 복판에 알오름이 있고 바깥으로 9개의 봉우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9개의 봉우리는 풍수학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뜻에서 '구룡농주형(九龍弄珠形)'이라 부른다. 제주 사람들이 거문오름을 '하늘이 내린 땅'으로 신령스럽게 여기는 이유다.
삼나무 우거진 숲길을 따라 분화구로 들자 곧바로 용암협곡이다. 폭 80~150㎝, 깊이 15~30m 규모의 협곡은 2㎞ 정도 이어진다. 절벽을 이룬 화산암이 양쪽으로 에워싸 어둑하다. 습기를 머금은 화산암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의 생명력이 놀랍다. 협곡 뒤편에는 수직동굴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분화구는 안으로 파고들수록 원시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이곳이 바로 곶자왈(화산암이 많은 숲)이다. 예덕나무, 왕쥐똥나무, 까미귀베개, 말오줌때, 붉가시나무, 센달나무, 개서어나무, 때죽나무, 식나무, 붓순나무 등 이름도 생소한 나무들이 저마다 바위를 껴안고 산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새우난초와 갈매기난초도 지천이다. 희귀조인 흰눈썹황금새와 삼광조, 팔색조, 오색딱따구리도 이 숲에 둥지를 틀고 있다.
알오름에도 전망대를 세웠다. 알오름은 분화구 중앙에 솟은 기생화산이다. 태고의 숨결이 모인 자리로 심신이 지쳤을 때 이곳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면 보양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전망대에 오르자 사방을 둘러싼 '아홉 마리 용(산봉우리)'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미로처럼 이어진 탐방로에는 숯가마터와 일본군 동굴진지, 병참도로 등의 흔적도 역력하다. 숯가마터와 화산탄 중간 지점에는 풍혈(숨골)이 있다. 풍혈은 암석 사이에서 바람이 새어나오는 곳. 제주 사람들은 '용의 입김이 나오는 곳'이라 부른다. 거대한 화산암에 박힌 화산탄은 대포알처럼 생겼다. 화산탄을 지나자 숲으로 덮인 협곡이 길게 이어진다. 숲길 끄트머리에 선흘수직동굴이 있다. 동굴의 깊이는 35m. 바닥면에서 수평굴과 연결된 제주에서 가장 깊은 수직동굴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4·3사태 때는 주민들이 이곳에서 숨어 지냈다.
수직동굴에서 5분 정도 발품을 팔면 갈림길이다. 왼쪽은 탐방안내소, 오른쪽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9봉에서 2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1시간 남짓 산행다운 맛을 즐길 수 있다. 탐방안내소로 향하는 길에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바람 끝에서 스러지고 일어서는 은빛 물결이 가을 제주의 운치를 더해준다.
귀뜀
■찾아가는 길: 제주공항→97번 지방도(번영로)→거문오름 입구→세계자연유산센터
■주변 볼거리: 거문오름 입구에 들어선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는 홍보전시관, 영상체험관 등이 있고 한라산의 탄생 과정, 한라산과 용암동굴의 지질구조, 지형 특성, 생태 체험, 세계자연유산 등재 의미 등을 엿볼 수 있어 오름 탐방 전 둘러볼 만하다. 성산읍 삼달리에 '김영갑갤러리두모악'(064-784-9907)이 있다. 고 김영갑 사진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아 연말까지 '바람'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맛집: 거문오름에서 5분 거리의 방주할머니식당(064-783-1253)은 도토리묵과 묵밥, 고사리비빔밥, 두부보쌈, 검정콩 콩국수 등을 판매하는 건강음식 전문점이다. 이외에 돌하르방식당(064-752-7580), 덤장(064-713-0550), 오조해녀의집(064-784-0893) 등이 유명하다.
■주의: 거문오름은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예약제(탐방 2일 전)로 운영하고, 매주 화요일은 '자연휴식의 날'로 정해 출입을 통제한다. 반드시 등산화를 신어야 하고, 등산용 스틱은 사용할 수 없다. 식수 외에 음식물 지참도 금지다. 출발 시간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숙박: 대명리조트 제주는 '이색(2色) 트레킹 코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064-780-5023)한다. 제주올레 6·7·20코스를 완주하는 '에코 트레킹 올레'는 11월 2·3주차 수·토요일 진행한다. 한라산 윗세오름과 사라오름을 완주하는 '에코 트레킹 한라산'은 11·12월 매월 3주차 토요일에 진행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참가비는 대인 2만원, 소인 1만5000원이며 참가자에게는 김밥과 생수, 간식(칼로리 바), 트레킹 스틱(고객 요청 시), 아이젠(한라산 코스), 코스 인증서 등을 제공한다. 이달 말까지 셀프가든 '모닥'에서 야외셀프BBQ를 운영(064-780-5069)한다. 제주신라호텔은 11·12월 '온라인 스페셜 패키지'를 선보인다. 11월1일~12월19일까지 일~목요일 투숙 시에만 예약(2박 상품) 가능하다. 패키지는 본관 마운틴뷰 2박과 조식 2인 1회, 더 파크뷰 디너 뷔페 2인 1회, 라운지 S 2인 입장권, 야외 온수풀 무료 입장, 숨비 스파&자쿠지 무료 이용, 프라이빗 비치 하우스 무료 이용, 객실 인터넷 무료 이용 등으로 구성됐다. 1박 33만원. 1588-1142
■문의 : 제주특별자치도청 관광마케팅 담당(064)710-3921, 세계자연유산센터 (064)710-8981
<제주 | 글·사진 윤대헌 기자 caos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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