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물결 일렁이는 평사리 벌판을 거닐다

입력 2012. 10. 13. 16:35 수정 2012. 10. 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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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오균 기자]

물비늘 반짝이는 섬진강을 따라가다

"강변에 죽 늘어선 벚나무가지 틈새로/물비늘 반짝이며 뒤채이던 햇살도/평사리 기웃거리다가/봄빛 따라 달아난다(시조시인 오영희, 섬진강 소견 중에서)"

시인이 노래했듯 물비늘 반짝이는 유장한 섬진강을 따라 평사리로 향했다.

황금물결 일렁이는 하동 악양 평사리 벌판. 벌판 한 가운데 서희의 길상의 부부송이 보이고, 멀리 섬진강이 'S'자를 그으며 유장하게 흘러가고 있다.

ⓒ 최오균

푸르디푸른 창공 아래 햇살에 뒤채이는 물비늘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1년 전 구례 수평리 마을에 살 때에는 툭하면 달렸던 길인데도 새롭게만 다가오는 길이다.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악양면 '최참판댁' 가는 길에서 좌회전을 하니 노란 황금벌판이 곧 바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건… 한 폭의 노란 수채화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벌판 한 가운데 부부송이 다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름 하여 서희와 길상을 기리는 부부송이라는 소나무다.

최참판댁 솟을 대문 앞에서 바라본 평사리 벌판이 압권이다!

ⓒ 최오균

최참판댁 솟을 대문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평사리 들판은 과히 압권이다! 밀물 때 섬진강물이 역류하고, 홍수가 나면 무시로 물이 드나들었다고 하여 '무딤이 들판'이라고 불리는 평사리 들판은 최참판이 능히 만석지기를 이루었을 만큼 넓고 기름지다.

악양들판은 여의도보다 조금 작은 83만평으로 예전엔 드넓은 모래톱과 척박한 논밭에 불과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섬진강변에 제방을 쌓아 만석지기 부자 서넛을 낼 만큼 기름진 문전옥답으로 바뀌었다.

소설토지의 무대 최참판댁앞 책을 읽고 있는 최참판 동상

ⓒ 최오균

최참판댁에 걸어놓은 가을걷이-호박, 옥수수, 박

ⓒ 최오균

최참판댁 주변 초가집에는 대봉감이며, 밤, 호박, 박, 강냉이 등 가을걷이를 해 놓은 풍성한 결실이 여기 저기 매달려 있다. 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풍경이다. 부자 3대를 간다고 했던가. 서희와 길상은 가고 없지만 최참판댁 주변은 여전히 부자냄새가 난다. 어쩌면 소설 '토지'를 쓴 고 박경리 선생의 덕이 큰지도 모른다.

서희와 길상의 영혼이 서린 평사리 부부송

길상과 서희의 다소곳한 부부송 너머로 섬진강이 'S'자를 그으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최참판댁 뒤로는 지리산 형제봉이 성벽처럼 배수의 진을 치고 있고, 멀리 섬진강 건너에는 백운산 준봉들이 병풍처럼 휘둘러져 있다.

배산임수의 지세, 풍수가 아니더라도 최참판댁은 한 눈에 명당의 길지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악양벌판과 섬진강, 그리고 멀리 백운산이 바라보이는 평사리는 그야말로 현실이 아닌, 유토피아 같은 한 폭의 풍경화다.

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와 길상의 영혼이 서린 평사리 부부송

ⓒ 최오균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한 황금들판이다. 저 황금벌을 걸어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 하리라. 그래서 이곳을 슬로시티라고 했던가? 당나라 소정방이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악양'벌은 야생차 재배지 중 세계최초로 지정된 슬로시티이다. 소정방이 과연 여기까지 왔을까?

하여튼, 그는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 모래톱 안에 있던 호수를 '동정호'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평사리 벌판과 섬진강 사이에 둑이 생기면서 동정호가 마르자 최근 복원공사를 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평사리 코스모스 길에 앉아 꽃놀이를 하고 있는 두 소녀

ⓒ 최오균

12일부터 시작되는 '토지문학제'로 최참판댁 주변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인파를 피해 악양벌판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평사리 벌판을 가로지르는 한가운데 농로에는 코스모스가 만개하여 길손을 반기고 있다.

나들이를 나온 두 부부는 시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코스모스처럼 예쁜 두 공주 아이들은 아예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꽃놀이를 하고 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울긋불긋한 코스모스 길을 따라 서희와 길상 두 부부송이 있는 주변까지 천천히 걸어가 본다. 농부들의 땀방울처럼 알알이 맺혀있는 벼이삭이 풍년을 예고해 주고 있다. 황금벌판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부부송은 평사리 어디서나 이정표처럼 돋보인다.

서희와 길상 부부송을 향해 계속 카메라의 앵글을 돌리고 있는 소녀의 엄마

ⓒ 최오균

벼이삭이 농부의 땀방울처럼 결실을 맺어가며 풍년을 예고하고 있다.

ⓒ 최오균

봄에는 매화와 자운영이 가득 피어오르고, 여름에는 녹색 벼들판이 주위를 에워싸며 푸른 물결을 이룬다. 바로 지금, 가을에는 황금물결이 풍요롭게 일렁거린다. 겨울에는 흰 눈이 쌓인 틈새로 파란 보리들이 뾰쪽뾰쪽 고개를 내밀며 부부송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평사리의 사계는 어느 때나 좋다. 그것은 서희와 길상의 영혼이 소나무가 되어 들판을 지키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토지의 애착, 토지의 사랑, 토지의 슬픔을 노래하던 그곳… 평사리 들판에 가면 사계절 서희와 길상의 푸른 영혼이 상록수가 되어 애처롭게 서 있다. 그것은 서희와 길상이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는 한편의 서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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