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

2015. 12. 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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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조금 더 관심을 받아도 괜찮았을 텐데. 2015년에 출간된 소중한 책들.

유계영은 2010년에 등단했는데 시집이 지난 10월에 나왔다. 6년 만에 첫 시집이면 별로 늦은 것도 아 니다 싶은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다들 너무 빨리 낸다. 시인들이 조급해서가 아니라 언어의 속도가 그렇다. 뭐든 빠르게 변하고 그렇게 또 빠르게 잊는 시대이기 때문에 언어 역시 그런 시대를 반영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유계영의 시를 읽고 있으면 아, 유행이 조금 지났다, 싶은 거다. 이를테면 유계영도 2000년대 직후 등장한 소위 감각의 시인들 혹은 그런 시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그 후손들 이 하나둘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차에, 유계영이 여전히 그 후손의 포즈를 취한 시집을 발표했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전부 헛소리다. 일단 시에 유행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물론 시인들이나 평론가들이 유계영의 시를 보면 이딴 평가를 내릴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미세하게 , 유계영의 시는 조금 더 회화적이며, 조금 더 불안하고, 조금 더 어긋난다. 나는 이 세부들이 조금 더 읽 히고 조금 더 주목받고 조금 더 밀고 나가야 할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고 나간다는 문장의 주어는 물론 유계영이다. <온갖 것들의 낮>이 조금 더 일찍 나왔으면 어땠을까…. '한 아이는 반드시 백발로 태 어날 겁니다'(시 '백발' 중에서) 같은 문장 참 좋다.

안주철은 2002년에 등단했다. 시집은 6월에 나왔다. 첫 시집을… 도대체 몇 년 만에 낸 거지. 인내심이 존경스럽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늦게 등단한 시인들은 진작 시집을 내고 심 지어 몇몇은 문학상까지 받았는데, 자신은 첫 시집을 그저 꿈꾸고만 있었다니. 한편으로 문단이(라고 해봐야 서너 개 출판사가 될 테지만) 안주철을 너무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안 주철은 저 위에 잠깐 언급한 소위 감각의 시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에 등단했다. 모든 관심이 그들 에게로 쏠렸다. 그때 굉장히 많은, 좋은 시인들이 잊혔다. 정직한 언어로 묵묵히 운명과 싸우던 시인들 에겐 아프고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그들은 언어를 그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단 눈으 로 본 현실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썩은 고기를 물어다 암컷에게 바치는 짐승처럼 / 내 사랑 은 수준은 딱 그만큼'(시 '썩은 고기' 중에서) 같은 문장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힘, 즉 관찰의 힘이 강하다. 문장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동은 시선에서 온다. 그래서 <다음 생에 할 일들>을 그저 좀 낡은 시, 그저 좀 슬픈 시라고 규정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비평적 담론, 동시대 언어의 첨예 함 따위로 재단할 수 없다. 그저 진정성에 기댈 뿐이다. 오래 두고 오래 읽을 시집이다.

정용준의 세 번째 책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가 나왔다. 단편 소설집이다. 정용준은 기대주다. 그에 대 한 문단의 평가는 굉장히 좋고, 그것이 별로 허황되지도 않다. 먼저 나온 단편집 <가나>와 장편 소설 < 바벨>은 의심할 바 없이 수준 높은 소설들로 묶여 있다. 죽음에 대한 정용준의 탐구는 여운을 길게 남긴 다. <바벨>에서 보여준 환상들, 그러한 환상들이 충돌하는 장면들,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 나아가는 의 지는 압도적으로 돋보인다. 그런데 아직, 정용준의 소설이 대중적으로 읽히기엔 무리일까? 여기 정용 준이라는 소설가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것일까?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무거워서? 새 단편 소설집에서 정용준은 죽음, 용서할 수 없으나 용서할 수밖에 없는 죄들에 대해 썼다. 서사, 소설 적 긴장, 현실 인식이 잘 어우러진다. 한마디로 재밌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한 권이 온통 슬프고 안타 까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아쉽다. 어쩌면 요즘 독자들은 밝은 이야기를, 위트 넘치고 간결한 이야기를 원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것은 정용준이 감당해야 할 슬픔 같다. 그렇지, 그렇지? 그래서 응 원하는 것이다.

하얀 여백  하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듯이, 시인과 소설가가 쓴 문장들을 그저 어떤 형태와 조형으로 바라보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백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도 존재하며, 그것은 독자가 무엇인가를 그 려낼 수 있을 만큼 하얗기 때문이다.

READ & SEE 이번 달, 새롭고 멋진 읽을 것, 볼 것.

<검은색> 송재학ㅣ문학과지성사 송재학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모국어를 읽는 기쁨을 준다. 그러나 이 기쁨은 시를 읽고, 혹은 읽고자 애 쓰는 이에게만 허락되는 감정이다. 시는 쉬울 수 없는 장르다. 좋은 시라면 언어의 속살을 드러낼 것이 다. 그것이 익숙한 풍경일 리 없다. 또한 좋은 시라면 언어의 속살로 세계의 내부를 드러낼 것이다. 그것 또한 뻔한 풍경일 리 없다. 송재학은 수십 년 동안 언어와 세계의 내부로 들어갔다. 아홉 번째 시집에서 그가 화두로 삼은 것은 '검다'는 감각이다. 그것은 필연이지 않을까? 깊은 내부는 어둡고, 좋은 시인은 묵묵히 그 어둠을 걸러내는 법이니까.

<무신론 보고서> 갤러리현대ㅣ진기종ㅣ2016년 1월 3일까지 신의 존재라는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설치 및 영상 작품들로 표현한다. 기적을 행한 예수와 그 밖에 믿 기 힘든 신화들, 종교가 행한 타락 그리고 종교전쟁과 같은 모순된 상황을 환기시킨다. 화제를 비틀어 제시하는 방식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기도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하 지만 단순히 종교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 지각의 오류가 발생시키는 판단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 '자유의 전사' 실리콘, 기타 오브제, 150×90×140cm(×2), 2015.

<제4회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 문화역서울 284 ㅣ12월 27일까지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다. 올해로 4회째다. '도시와 문자'라는 주 제로, 문화의 근간인 문자가 도시 환경 속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해석한다. 총 22개국 91명(팀)의 작가가 참여한다. 도시와 문자 풍경, 문자 문화에 대한 작업을 지속해온 캐서린 그 리피스(뉴질랜드), 와이낫 어소시에이츠(영국), 김두섭(한국) 등 국내외 초대 작가 25인의 전시가 진행 되며, 특별전과 전시 프로젝트도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한 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PHOTOGRAPHY: 조성재 | Contributing 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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