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유아 애니메이션, 왜 우린 없죠?

칼럼니스트 김나희 2015. 8. 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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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애니메이션에도 나타나는 남성 위주의 사회

[연재] 김나희의 불량정보 거기 서!

보호자가 옆에 앉아 대화하며 아이에게 영상물을 보여준다는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다 보니, 요즘 나도 '뽀롱뽀롱 뽀로로'나 '로보카 폴리'를 매일 한 편씩(한 편만!) 보고 있다. 이런 유아 애니메이션에서도 기성 세대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발견하게 될 때마다 기분이 씁쓸하다.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요 캐릭터는 아래의 11명인데, 이 중 비버 루피, 펭귄 패티, 벌새 해리만 여성 캐릭터다. 외계인 뽀뽀와 삐삐는 성별이 불분명하지만 나머지 캐릭터 여섯은 모두 남성 캐릭터. 게다가 남성 캐릭터들은 중성적이거나 무성적인 '디폴트' 설정이지만, 여성 캐릭터들은 소위 '여성성'을 강조한 차림새와 목소리, 성격을 갖고 있다. 자기소개를 할 때도 뽀로로는 '호기심 많은 꼬마 펭귄이지.'라고 말하지만 패티는 '못 하는 게 없는 펭귄 소녀란다.'라고 말한다.

뽀롱뽀롱 뽀로로. ⓒICONIX/OCON/EBS/SKbroadband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남성은 덤덤하고 보편적인 인간일 수 있지만, 여성은 늘 여성임을 인식하게 하는 시선에 갇혀 있다. 남성들은 '그냥 사람'이지만, 여성들은 꼭 '여'자가 붙여 한계를 짓는다. 뉴스에서 남자는 김모씨(45)라고 나오지만, 여자는 김모씨(여, 45)라고 나오며, 남성 작가는 그냥 작가지만 여성 작가는 여류화가이고, 남성 왕은 그냥 왕이지만 여성 왕은 여왕이며, 남장승은 '천하대장군'이지만 여장승은 '지하여장군'이다. 이처럼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된다.

로보카 폴리의 성별 위계도 심각하다. 구조대를 이루는 폴리(경찰차), 로이(소방차), 앰버(앰뷸런스), 헬리(헬리콥터) 중 명백하게 앰버만 '여성' 캐릭터이며, '여성성'을 강조하는 리본, 분홍색, 속눈썹, 상냥한 성격을 전시하듯 드러내고 있다. 자주 등장하는 약 20개의 자동차 캐릭터 중 여성으로 추정되는 것은 위에 말한 앰버 외에는 미니가 유일한데, 미니도 분홍색, 리본, 속눈썹, 새침한 성격 등으로 이른바 '여성성'을 징후처럼 나타내 보인다. (게다가 국적 불명의 '브룸스타운'에는 백인으로 보이는 인종만 등장한다!) 그나마 구조대를 운영하는 '진'이 씩씩하고 기계 조작에 능한 여성으로 나오는 설정이다.

로보카 폴리. ⓒROIVISUAL/EBS

'뽀로로펜 리틀퓨처북'이라는 책자에 나오는 직업 소개 그림(목소리도 나옴)에는 26개의 직업 중, 여성은 간호사, 가수, 화가, 무용수, 수의사, 원예사, 우주인, 디자이너의 8개 직업만 그려져 있다. (성에 따른 분명한 역할 분리가 보이는 와중에, 의외로(?) 여성 우주인이 눈에 띤다. 우리 나라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의 위상을 무시할 수 없어 그려줬나 싶다.) 21세기에 이렇게 성별 분업을 노골적으로 그려도 제작 과정에서 수정되지 않고 출판까지 이어질 수 있다니, 그저 놀랍다.

뽀롱뽀롱 뽀로로 리틀 퓨처북(토이트론). ⓒICONIX/OCON/EBS/SKbroadband

여아와 남아에게 다른 방식으로 사회화가 이루어지며, 교과서에서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남성이 사회활동을 하고, 아름답고 온유한 여성이 가정에서 가사일을 하거나 시중을 드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는 비판은 계속 제기되어 왔다. 그리 멀지 않은 제6차 교육과정까지만 해도 기술, 공업은 남학생들만 배우고 가정, 가사는 여학생들만 배워 왔다. 한데, 남성중심적인 직업세계를 보여주는 교과 과정만 문제가 아니었다. 성차별적인 사회화는 학령기 이전의 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서구에서는 차별적인 표현을 제한하려는 고민이 몇 십 년간 지속되어온 결과,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등의 소수자들의 할당을 확보해야 한다는 '개념'이 사회제도 및 주류 매체, 예술작품에서도 반영되어 있다. 어린이용 교재에서도 페이지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색이 반영된 인물이 등장하고, 성별 분업이라는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여성들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별적인 표현은 곧바로 소송이나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거나 선거에서 표를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며,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차별 금지에 대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텔레토비에서도 유색인종, 여성 등의 소수자 그룹을 안배하여 네 명의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했음을 볼 수 있다.

아시아계, 흑인 캐릭터가 처음부터 들어가 있는 텔레토비. ⓒBBC

영어에서는 직업에 관련된 차별적인 단어도 많이 변화했다. 예를 들어 'chairman'(의장) -> 'chairperson', 'spokesman'(대변인) -> 'spokesperson', 'fireman'(소방관) -> 'firefighter', stewardess (승무원) -> flight attendant 같은 식으로 중립적인 단어로 바뀌어 이미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로보카 폴리에서 소방차인 로이는 아직도 구시대의 단어인 'Fireman' 이란 이름표를 모자에 달고 있다!

차별적인 표현이 해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고정관념은 그 자체로 개인의 발달을 가로막고 최선의 성취에 도달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이를 고정관념의 위협(Stereotype threat)이라고 한다. 유아 대상 저작물을 볼 때마다 고정관념에 계속 노출될 경우 특정한 성별이나 타고난 조건 때문에 개인의 발달을 제한하는 악영향이 생애 초기부터 누적될 수 있다. 이런 영향의 결과가 유전적인 차이로 오해되어 고정관념을 더 강화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뛰어난 성취를 보일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실제로 성취도를 높일 수 있다. 이를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라고 한다. 주변의 멸시 또는 기대가 실제로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는 뜻이다. 특정한 여성상을 반복해서 보게 되는 우리의 딸들은 어떤 자아상을 갖게 될 것인가.성평등 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수학을 비롯한 학과목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거나 같은 점수를 받는데 반해, 여성 차별이 심하고 여학생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국가들에서는 여학생들의 수학점수가 낮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성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다같이 더 행복하다. 성별 분업이란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학자가 되고 싶은 여성, 간호사가 되고 싶은 남성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하면서 눈치를 보거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지 않아야 한다. 유아 애니메이션이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을 널리 펼치게 돕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성별 분업이란 고정관념에 가두지는 말았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김나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한방내과 전문의)이며 국제모유수유상담가이다. 진료와 육아에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 둘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고 직접 자료를 뒤지는 성격으로, 잘못된 육아정보를 조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자연출산을 통해 낳은 아기를 모유수유로 키우고 있는 중이며 대한 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우리한의원에서 진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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