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지옥, 무통천국' 정말 그럴까요?

칼럼니스트 김나희 2013. 11. 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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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주사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연재] 김나희의 불량정보 거기 서!

모든 산모가 초산 때 죽도록 고생을 한다거나 천장이 노랗게 보여야 비로소 아기가 나온다던가 하는 속설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드라마에서는 천편일률적으로 "왝왝" 하면 임신, "아악!" 하면 출산이지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진통지옥! 무통천국!'을 외치며 경막외마취(무통주사) 전도에 나서는 의사선생님도 계시지요. 이 좋은 무통주사를 왜 맞지 않느냐는 산모들도 있고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진통을 줄이는 약들은 크게 진통제와 마취제로 나뉩니다. 진통 과정에서 약을 사용하면 태아의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마취과 의사들은 아무 영향이 없다고 하고, 소아과 의사들은 영향이 있다고 하며, 산부인과 의사들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고 하지요. 의아스럽게도, 임신 기간 내내 대부분의 여성들은 약을 매우 조심스럽게 먹고 몸조심을 하는 데 반해, 출산 당일에는 상당히 강력한 마취제를 덜컥 선택합니다. 오히려 임신 기간 동안에 먹은 약은 아기의 몸속을 돌다가 다시 탯줄을 통해 엄마 몸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엄마의 혈관계가 배출시켜 줄 수 있어요. 반대로 출산 때 아기에게 흘러들어간 마취제는, 출산과 동시에 엄마에게서 분리된 아기가 혼자 힘으로 해독하고 제거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데메롤이란 진통제는 성인 몸에서는 3시간이면 절반이 제거되지만 아기 몸에서는 약 20시간이 지나야 절반이 제거됩니다. 아기는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약에 취해 있게 되는 것이죠.

물론 마취제와 진통제가 수십 년간 개선돼 왔고 안전성이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가장 위험한 방법인 전신마취는 이제 제왕절개술에서도 별로 쓰지 않지요. 대신 경막외마취라는 방법으로 허리 아래의 통각만을 차단하는 약을 투여합니다. 통각은 없지만 의식은 명료하고 다리를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산모들이 선택합니다. 하지만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경막외마취로 태어난 아기들이 덜 기민하고 산소부족을 겪을 확률이 높습니다. 또 분만의 진행이 느려지고 난산 위험이 올라갑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궁수축에 맞추어 힘을 주어야 아기가 잘 밀려나오는데, 경막외마취에서는 산모가 자연스럽게 힘을 주기가 어렵고 아기 스스로 몸을 틀어 좋은 자세를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분만2기 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나고, 겸자 사용은 4배, 제왕절개는 2~3배 늘어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경막외마취 역시 얻는 것이 있는 대신 잃는 것도 있습니다. 경막외마취를 하면 자연분만 성공률이 낮아지고 모유수유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경막외마취는 엄마와 아기가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기도 합니다. 또 엄마의 요실금 확률도 올라갑니다. 다수의 진통제가 젖 찾기, 젖 물기, 빨기 같은 신생아의 중요한 행동을 방해하고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아기들은 경막외마취의 효과에서 곧 벗어나지만, 질환이 있거나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의 건강에는 마취가 위협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설명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 절반의 산모들은 사전에 이런 설명을 듣지 못했으며, 경막외마취를 받았던 산모들 중의 절반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시술을 거부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나 봅니다. 진통 역시 힘든 대신 얻는 것도 있습니다. 강하고 규칙적인 자궁 수축은 엄마에게는 진통이 되고 아기에게는 온몸이 압박되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놀랍게도 이 출산 스트레스는 정상 만삭아에게 매우 유익하답니다. 만삭의 건강한 태아들은 스트레스에 대응해 카테콜아민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이 호르몬은 태아의 심장 박동과 호흡을 느리게 하고 근육으로 가는 혈액을 줄여 출산 도중 뇌와 심장에 산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합니다. 또 태어난 이후 2시간 동안 아기가 또릿또릿 깨어있게 해서 엄마와 인상적인 첫 만남을 하고 세상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자연출산으로 태어난 직후 또릿또릿한 신생아의 모습. 엄마는 맞은편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지요! ⓒ김나희

자연분만으로 태어나면 제왕절개로 태어났을 때보다 더 빨리 첫 숨을 쉬고 혈중 산소 농도가 더 빨리 증가하고 호흡 관련 문제가 덜 발생합니다. 이 역시 카테콜아민 덕분입니다. 또 자연분만의 압박 자체도 아기의 호흡을 돕기도 합니다. 분만 과정 중에 태아의 가슴이 눌려 폐 속의 수분이 배출되기 때문이지요. 또 자연분만 과정은 아기의 체온을 유지시키고 외부세계에 적응하는 신경 발달도 빠르게 합니다.

온전히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들뿐 아니라, 어느 정도 진통을 겪다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들도 역시 이런 이점을 누립니다. 진통을 하다가 결국 제왕절개를 한 산모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다가 결국 제왕절개술을 받았다고 안타까워하지요. 그 모든 고생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면 약간이라도 위로가 될까요. 출산 스트레스가 아기에게 유익했다는 것을 알면 좀 위안이 될까요?

산모를 위해 경막외마취를 권하는 것은 제왕절개가 꼭 필요한 경우 등으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경막외마취의 위험성과 단점을 정확히 설명하고 산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진통을 줄이기 위한 호흡법이나 마사지, 침 치료 등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요. 또 경막외마취를 선택했다면, 신생아가 심하게 처지거나 보채더라도 놀라거나 이상하게 보지 않도록 경막외마취의 부작용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겠습니다.

다른 표현 방법을 찾기 귀찮았던 드라마 제작진이 등장인물의 고뇌를 표현할 때 늘상 담배 연기를 푸욱 내뿜는 장면을 내보냈지요. 흡연 장면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나서야 다른 표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의 천편일률적인 드라마의 출산장면은 편견을 재생하고 출산에 대한 공포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드라마의 출산장면들은 현실의 산모들에게 산통을 강화시키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개선돼야 할 것이라 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30% 정도의 산모들은 출산 과정이 행복하고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답니다. 일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요. "아악!" 소리 지르고 "응애!" 울기만 하는 장면 대신, 평화롭게 아기를 낳는 장면, 태어난 아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지 않고 미소짓는 장면, 신생아실 유리 너머로 아기를 바라보는 대신 엄마와 아기가 살을 맞대고 누워 있는 장면 등 다양한 출산 장면이 브라운관을 채웠으면 합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한방내과 전문의)이며 국제모유수유상담가이다. 진료와 육아에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이 둘 다 필요하다고 믿는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고 직접 자료를 뒤지는 성격으로, 잘못된 육아정보를 조목조목 짚어보려고 한다. 자연출산을 통해 낳은 아기를 모유수유로 키우고 있는 중이며 대한 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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