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읽었다는 건 '낚였다'는 뜻"

하지율 2016. 1. 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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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청춘 기자상 ④] 20대 관련서 중 인문사회 9%↓ 자기계발론의 위험성은 '공감 무능력'

[오마이뉴스 글:하지율, 편집:김준수]

'인문'이 강세? 20대 관련서는 '자기계발론'이 잠식

교보문고의 '2015년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 10위권 도서에, 인문 분야가 3권 이름을 올렸다. 1위는 <미움받을 용기>가 차지했다. 고가 후미타케·기시미 이치로가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다룬 이 책은, 2015년 46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12월 29일 기준, 10월 2주차 때 연속 35주로 최장기록을 깼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최종 주간 결산은 다음 주 정도에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인문 도서로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 시리즈가 각각 종합 2위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이름의 인기 온라인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채사장이 쓴 책이다. 그렇다면 소설 분야는 어떨까. 똑같이 3권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상황은 결이 달랐다.

 교보문고 강남점 자기계발코너(E구역)에서, 자기계발서를 보는 청년들.
ⓒ 하지율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4위,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7위,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8위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교보문고 측은 '2015년 연간 베스트셀러 동향' 자료에서, 소설 분야 책들이 "관심을 받긴 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분야 30위 내에 외국 소설이 24종, 한국소설이 6종 올랐고, 2015년 신간 도서가 11종에 그쳐 "소설 분야가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인 한 해"라고 평가했다. 교보문고 측에서는 신간 자체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우수문학도서 운영 방침 논란, 중견 작가 표절 논란 등 독자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계기가 계속"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계발·외국어 분야는, 웨이슈잉 <하버드 새벽 4시 반> 5위와 <해커스 토익 보카> 10위 한 권씩만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종합 베스트 셀러 200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자기계발 분야에서 다수의 책이 이름을 올렸다. 교보문고는 자료에서,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경영 전망성을 찾는 것은 여전"하며 "글로벌 기업가의 행보가 국내 독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능력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독자들의 움직임도 여전하다"고도 설명했다.
▲ '20대' 관련 국내도서 분야별 비중 12월 27일 기준으로, 3개 온라인 대형서점(교보문고·알라딘·인터파크)의 '20대' 관련 국내도서의 분야별 비중을 지정 카테고리에 따라 분류했다(자기계발·경영경제·인문사회 등). 나머지 분야별 도서는 모두 '기타'로 분류했다. 기타 도서들 중에는 성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분야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판단이 가능한 도서들도 있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측정'을 위해, 서점 측이 제시하는 지정 카테고리 만을 그대로 적용했다.
ⓒ 하지율
자기계발서의 영향을 실제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특히 기자가 20대이므로, 20대에게 어떤 도서들이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했다. 조사는, 2013년과 2015년에 각각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아래 '우차찬')과 <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을 쓴 서강대 사회과학 연구원 오찬호 박사(사회학)의 방법을 따랐다.
오 박사는 <우차찬>에서, 3개 온라인 대형서점(교보문고·알라딘·YES24)에서 '20대'를 키워드로 국내 도서를 검색했다. 이후 각 서점의 분야별 도서의 수치를 구한 뒤 최종 합산해 비율을 공개했다. 그 결과 자기계발(+경영경제) 약 69%, 인문사회 약 7%, 기타 24%라는 결과가 나왔다(2012년 2월 26일 기준). 기자는 이 경향성이 3년을 훌쩍 넘은 지금도 유효한지 확인하고자, 3개 온라인 대형서점을(교보문고·알라딘·인터파크) 조사했다.

그 결과 총 1213권의 도서 중 자기계발(+경영경제) 약 67.85%, 인문사회 약 8.66%, 기타 약 23.49%로 비율이 나타났다. 2015년 종합 베스트셀러 1위가 인문 도서라는 점과 상관없이, 20대를 표방하는 도서 대부분은 자기계발론에 잠식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오 박사의 조사와 거의 일치한 결과였다. 오 박사의 관점에 맞춰, 자기계발과 경영경제는 합산했다.

"자기계발과 경제·경영은 사실상 같은 범주다. 과거 경영이라는 분야의 책들은 생산성 증대를 위한 논의나 마케팅 기법 등 전문서로서의 의미가 강했지만, 지금은 기업의 경영기법을 인간의 생애과정에 적용해 '노동자가 스스로에게 최면적인 동기를 부여하게끔 하는 미사여구의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내용이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차찬> 28쪽)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는 뜻"
 강남 교보문고 진열대 위에 놓인 자기계발서들.
ⓒ 하지율
지난 2015년 12월 28일 저녁, 교보문고 강남점을 찾았다. 자기계발서 코너에 진열된 책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표지와 한눈에 메시지가 파악되는 제목이 특징이었다. 깊은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담아, 오래 생각해야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인문 도서들과는 사뭇 다르다. <긍정의 재발견>, <처세의 神>, <술자리도 능력이다>, <나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왜 나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낼까?>, <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변한다>, <상처받지 않고 일하는 법> 등등. 제목에서 가늠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들의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비슷비슷하다.
'자기'계발이라는 말에 이미 내포됐듯, 하나같이 '개인'에 해결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기계발 코너에는 주로 청년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으며, 교보문고 관계자도 "20대, 30대 독자들께서 많이 찾는다"고 확인해줬다. 한편 오 박사는 <우차찬>에서, 자기계발서가 "이십 대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다"고 비판한다. 과거보다 사회 구조적 문제가 주요 변수로 떠올랐음에도, 이를 간과하도록 조장한다는 비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혹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식의 말은 … 현실을 개선하는 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령 100명 중 20명 만이 정규직 노동자가 된다고 하자. 이 20명은 결코 변하지 않는 숫자라 하자. 그럴 경우, 죽도록 고생하면 정규직 된다고 말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생 여부와 상관없이 80명은 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이 전체 '파이'의 문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우차찬> 26쪽)

오 박사는 자기계발서가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는 식의 주문만 난무"하지만, 그래서 삶이 달라진 결과는 찾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자기계발서가 소수의 사례를 쉽게 일반화하는 경향은, '~하는 법'(규범·법칙)이라는 제목으로 자주 정형화되는 현상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다만 생존에 불안을 느끼는 20대 다수가 자기계발에 열중하다 보니,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또 소수의 사례가 발굴된다.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이 표면화 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 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 (<우차찬> 33쪽)
 강남 교보문고 진열대 위에 놓인 자기계발서들.
ⓒ 하지율
"그대의 삶이 10~20대 시절 원했던 바로 그 삶이 아니라면, 운명이나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그대의 혀를 탓해야 한다" (이지성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중)

오 박사는 더 큰 문제로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타인의 상황을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는 점을 꼽는다. 이러한 태도가 '이성적' 접근으로는 객관적 측정·비교가 불가능한 것을, 측정·비교하도록 영향을 끼쳐 사회의 '공감 무능력'을 낳을 위험이 크다는 비판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이란 '고통'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상태"이며 "공감이란 타인의 상황을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하게끔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고통을 엄청나게 그려낸다.

이때 이십 대들은 "지금 내가 힘든 건 힘든 축에도 못 끼는구나" 하는 식으로 주눅 드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고통에 대한 하소연조차도 응어리지는 마당에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더 저하될 수밖에 없다. 타인의 호소는 "한순간에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이 되고, 그렇게 고통의 비교 법칙이 이십 대를 통제한다"는 게 오 박사의 설명이다.

아르스프락시아 연구원 김학준도,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평범 내러티브'('누구나 고통스러운 부분 하나쯤은 있으며, 그러니 대부분의 고통은 평범한 것이고, 고통스럽다며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는 것 또한 무임승차다'라는 식의 논리)라는 유사한 예를 들기도 했다.

한편 공감 무능력은 편견을 강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인 '인지 부조화'(가령, '한 번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계속 미워하게 된다')나, 생존 불안과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를 멸시하려는 '노력 정당화 효과' 등과 결합할 때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더욱 파괴한다(강준만 <감정독재> 적용).

가령 세월호 특례 입학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심리적 흐름이 만들어낸 좁은 해석의 결과일 수 있다. 수능의 원래 명칭은 '대학(大學) 수학능력 시험'인데, 여기서 말하는 학(學)은 학문(學問)을 말하며 본질적으로 이미 '묻는다'(問)는 뜻이 내포돼 있다.

묻는 것은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한 인습에 대한 의구심을 포함하며, 이때 "가만히 있으라"(세월호 선내방송)는 말의 허구성을 온몸으로 체화한 이들이야말로 학문에 참여시키기에 적합한 특성을 갖췄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기계발론을 깊이 체화한 청년들에게는 힘든 사고방식이다. (이조차도 잘못된 접근이지만) 그 흔한 '배려'라는 관점조차도 적용하지 못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특히 일베가 그렇다).

자기계발론은 20대에 '남 탓, 핑계 대지 말고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하라!', '날로 ○○ 입사(입학)하려면 안 되죠!'라는 빈약한 공정성 개념을 이식한다. 또 "아무도 20대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아무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다. "아무도 역지사지해주지 않는데, 어찌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지겠느냐고 오 박사는 묻는다. 2016년 새해가 밝았다. 만약 본인의 주변에 청년들이 있고, 그들에게 '자기계발서'를 선물할 계획이 있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섣부른 훈계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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