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별것도 아닌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 / 유홍준

2015. 10. 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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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악산 하산 길 성벽 밑에서 잠시 쉬는데 노 대통령이 내게 말했다. “유 청장님은 언론에서 지면을 얻어낼 수 있죠? 이 좋은 산을 대통령이 독차지하면 되냐고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좀 기고해 주십시오.”

이 가을 나는 다시 북악산에 올랐다. 서울성곽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잘 진행되는지 보고 싶었고, 서울 답사기 집필을 위해 올라간 것이다. 숙정문에서 서울성곽 길을 따라 촛대바위, 청운대를 지나 북악산 정상에 올라 파노라마로 전개되는 서울 시내를 한껏 조망한 다음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행복한 반나절 등반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악산과 서울성곽은 서울의 크나큰 축복이다. 도심 속에 이런 수려한 산을 갖고 있는 도시가 지구상 어디에 또 있는가. 서울성곽은 한양도성의 울타리로서 북악산에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더해준다. 서울성곽이 있는 북악산과 없는 북악산을 비교해 본다면 이 유적이 지닌 자연과 인공의 환상적인 만남을 명확히 깨닫게 될 것이다. 북악산이 개방되던 날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북악산의 도시공학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이 산을 푹 떠서 뉴욕이나 파리에 내다 팔면 얼마를 받을까요? 이런 아름다운 공간을 대통령이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문화재청의 정성 어린 정비작업을 거쳐 대통령이 된 지 4년 만에 완전 개방하여 시민 여러분과 함께 오르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왜 북악산 개방을 문화재청에서 추진하였고, 대통령이 된 지 4년이 지나서야 개방할 수 있었던 것인가. 거기에는 긴 사연이 있다. 우선 내가 문화재청장에 부임하게 되는 것부터 간단치 않았다. 참여정부 인수위는 문화재청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전문가에게 맡길 방침인데 내게 맡아달라고 하였다. 다만 문화재청은 헌법기관이므로 정부조직법이 개정돼야 하니 좀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1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그동안 내 처지는 아주 애매해서 무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었을 때는 노 대통령의 탄핵 사태가 있었다. 이에 나는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6개월 지나 대통령이 탄핵에서 풀려나자 2004년 9월1일 청와대 비서실에서 내게 전화가 왔다.

“유 교수님, 비서실장께서 오전 중에 청와대로 급히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지금 제주도에 있습니다.”

“어이쿠, 큰일났네요.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전화가 왔다.

“오늘 12시에 문화재청장으로 임명한다는 발표가 있을 겁니다.”

“어, 그거 안 되는데요.”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우리 집사람한테 물어봐야죠.”

“네~에?”

나는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와서 문화재청장을 하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냉정하기가 돌부처 같은 집사람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거긴 월급 얼만데?”

그러고 하는 말이 벼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해 볼 만한 직장’이면 가서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구두발령’ 후 1년 반이 지나 문화재청장이 되었다. 문화재청은 과연 일해 볼 만한 직장이었다. 문화재의 소극적인 관리에서 적극적인 활용으로 정책을 바꾸어 먼저 경복궁 경회루를 42년 만에 개방하니 국민들이 좋아했고 경복궁도 자못 활기를 얻었다. 나는 서울성곽도 개방할 준비를 하였다.

2005년 8월21일, 마침내 기회가 왔다. 청와대에서 이번 일요일에 대통령께서 조연환 산림청장과 부부 동반으로 북악산을 등반하고 오찬을 하자고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날 아침 일찍 청와대로 가서 북악산 정상에 오르니 그날따라 날이 맑아 관악산까지 내다보였다. 참으로 황홀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올라와 보고 처음이었다. 수행하던 경호원은 평소 시계는 멀어야 30킬로미터 정도인데 오늘은 40킬로미터라고 했다.

하산 길 성벽 밑에서 잠시 쉬는데 노 대통령이 내게 말했다.

“유 청장님은 언론에서 지면을 얻어낼 수 있죠? 어느 신문에든 이 좋은 산을 대통령이 독차지하면 되냐고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좀 기고해 주십시오.”

대통령이 이처럼 북악산 개방에 뜻을 보인 것이 놀랍고 반가웠다.

“개방하라는 뜻이죠?”

“물론이죠.”

그리하여 나는 서울성곽 개방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경호실에서 펄쩍 뛰면서 대통령이 언론에 글을 쓰라고 했지 언제 개방하라고 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진의를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얼마 후 회답오기를 ‘신문에 글을 쓰라고 하셨다는데요’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대통령의 개방 의지가 분명한데 왜 현직 청장이 대통령을 비판해야 하느냐고 되묻자 그러면 직접 다시 말씀드려 보라며 대통령과의 대면보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나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렇게 자세히 말씀하셨다.

“내가 종로구에 국회의원을 나왔을 때부터 북악산을 개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당시 나는 대통령이 될 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앞으로 서울시장이 되면 개방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 대통령이 된 겁니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어 처음 지시한 것이 북악산 개방이었습니다. 그런데 경호실이 이건 경호실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국방부 장관을 불러 지시했더니 국방부도 자기 일이 아니랍니다. 행정자치부도 아니고 국정원도 아니랍니다. 철망을 치고 막은 자는 있는데 걷어낼 자는 없는 겁니다. 그렇게 임기 반을 넘기자니 답답해서 여론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던 겁니다.”

이에 나는 대통령께 내가 그간 준비해 온 것을 말씀드렸다.

“청와대가 있는 한 북악산 전면 개방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서울성곽만 개방해도 효과는 똑같습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청장님이 추진하십시오.”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개방하려면 보안 경비시설을 재배치해야 하고, 성벽 보수, 나무 식재, 탐방로 설치, 이에 따른 예산 배정이 뒤따라야 하는데 문화재청장 힘으로는 그 콧대 센 경호실, 국방부, 기획예산처, 서울시 등의 협조를 받아내기 힘듭니다.”

“그렇게 복잡합니까? 어떻게 하면 될까요?”

“청와대 비서실에 지시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서울성곽 개방에 따른 관계기관 협의가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 주도하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이 탐방로를 환경에 맞춰 설계하였고 <궁궐의 우리 나무>를 쓴 박상진 교수의 나무 안내판도 걸었다. 그리하여 2006년 2월에 일부 구간을 시범 개방하였고 이어 2007년 4월5일 마침내 서울성곽 전면 개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출입에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 어느 날 미국 대사관에서 문화재청에 전화가 왔다. 버시바우 미국 대사가 북악산에 올라가 보려고 신청했더니 외국인이라 안 된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대한민국 공무원들이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얼마 뒤 서울 주재 외국대사관 모두에게 토요일 오전에 북악산 개방 기념 등반을 하고 뒤풀이로 삼청각에서 간단한 도넛 파티를 연다고 초대하였더니 무려 35개국 대사 부부가 참가하였다. 이 이방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북악산이 있는 서울의 아름다움에 무한한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든 신분증만 지참하면 북악산에 오를 수 있다. 북악산이 개방되던 날 황지우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 저 권부의 푸른 기와집 그늘에 가려 / 지난 반세기 마음의 위도에서 사라졌던 자리에서 / 오늘 이제는 육성으로 이름 불러도 될 / 그대 백악이여. // 이렇게 풀어 버리니 별것도 아니었던 두려움이 // 그대 슬하에 감추인 칼바위며 촛대바위를 / 순우리말로 되찾아 오네 …”

숙정문 입구 서울성곽 안내판에는 이 시의 전문이 쓰여 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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