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백제 왕궁 부엌터 확인(종합)
철제솥, 토기, 숫돌 등 발견…삼국시대 왕궁 부엌 유구 발굴은 처음
일렬로 배치된 길쭉한 건물터 확인…"백제 궁성 형식 일본에 전파"
(서울·익산=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제 왕성 혹은 별도(別都)로 알려진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에서 왕궁 부엌으로 유력시되는 건물터가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 24일부터 왕궁리 유적 서남쪽 일대 8천300㎡에서 진행한 제26차 발굴조사에서 사비기 왕궁 부엌으로 추정되는 동서 6.8m, 남북 11.3m 규모의 건물 유구(遺構)를 찾아냈다고 20일 밝혔다.
삼국시대는 물론 통일신라시대를 통틀어 왕궁터에서 부엌으로 보이는 건물지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건물지 내 길이 1.64m, 너비 1.38m, 깊이 0.44m의 타원형 삼단 구덩이에서는 철제솥 2점을 비롯해 어깨가 넓은 항아리 2점, 목이 짧고 아가리가 곧은 항아리 1점, 목이 짧은 병 2점 등 토기 5점과 숫돌 3점이 발견됐다.
토기 중 일부에서는 안에 액체가 담겨 있었던 흔적이 확인됐고, 구덩이 옆에는 배수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부엌 벽체에서는 기와를 잇대어 만든 시설도 드러났다.
또 이 구덩이에서 2m 떨어진 지점에서 또 다른 철제솥이 출토됐으며 불탄 흙과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는 벽체, 많은 숯이 깔린 장소 2곳도 나왔다.
심정보 문화재위원회 위원은 건물군 안에 독립된 부엌이 있었던 곳은 궁궐과 사찰뿐이라며 "이 부엌에서는 식자재를 씻고 음식을 조리하고 설거지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왕궁리 유적 철제솥은 바닥에 원형 돌기가 있고 어깨에 넓은 턱이 있으며 아가리는 안쪽으로 살짝 휜 형태로 아랫부분은 삼국시대 철제솥과 유사하나 그릇 입구와 몸통은 통일신라시대 철제솥과 비슷하다"며 "고대 백제계 철제솥의 변화 양상을 말해주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서쪽 궁장(宮墻, 궁궐 담장)을 따라 길이 29.6m, 너비 4.5m인 남북으로 길쭉한 장방형 건물지를 포함, 다양한 건물지도 발굴됐다.
특히 정면 10칸, 측면 1칸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방형 건물지와 부엌 건물지 등 여러 건물이 왕궁의 중심이 되는 정전 서쪽에 일렬로 배치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단은 이에 대해 왕궁리 유적보다 늦게 만들어진 일본 오사카 나니와(難波) 궁, 나라(奈良) 아스카(飛鳥) 궁과 비슷한 건물 배치라고 설명했다.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정전 옆에 회랑이 있는 경우는 많지만 별도로 장방형 건물을 세운 것은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라면서 "백제의 궁성 건축 특징이 일본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왕궁리 유적에서는 화장실로 보이는 기다란 석축시설과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기와 가마터, 서쪽 궁장을 향해 흐르도록 설계된 배수로 2개도 확인됐다.
이은석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삼국시대 왕궁 부엌에 대한 기록은 없다"며 "이번에 확인된 부엌 건물지의 위치와 내부 구조, 시설을 면밀히 분석하면 삼국시대 왕궁 부엌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 대에 조성된 왕궁성으로 1989년부터 매년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궁성과 궁장, 정원, 공방터 등이 발견됐고, 인장 기와와 연화문 수막새 등 유물 1만여점이 출토됐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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