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어떻게 이 값에.. 착한가게의 비결

박세환 조효석 기자 2015. 8. 1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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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투입 인건비 줄이고.. 싸고 좋은 재료 찾아 발품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삼계탕집에 손님 40여명이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이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는 ‘삼계탕·보신탕 6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보통 1만원을 훌쩍 넘는 일반 삼계탕집과 비교해 40% 이상 싸다. 뚝배기에 가득 담겨 나오는 닭의 크기도 다른 식당과 차이가 없었다.

몇 년째 단골이라는 정모(78)씨는 “지난해 직장을 그만둔 뒤로 식사 한 끼 비용도 부담스러워 경기도 파주에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처음 와봤다는 김희중(71)씨도 “비싼 곳은 보신탕 한 그릇에 1만6000원까지 받는데, 이런 가게가 잘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문을 열 때 이 집의 보신탕 가격은 8000원이었다. 2012년 손님이 줄어들자 주인 이모(54·여)씨는 값을 대폭 낮췄다. 대신 인건비를 줄였다. 이씨의 남편은 물론이고 형제와 조카까지 가족과 친척 6명이 종업원으로 투입됐다. 이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년 365일 일한다”며 “한 그릇 팔면 채 500원도 안 남지만 단골손님들이 있어 이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 해장국집도 비슷하다. 가난하게 자랐다는 주인 박모(56·여)씨는 선지해장국 한 그릇에 3500원을 받는다. 13년 전 개업 때보다 겨우 700원 올랐다. 인근 서울대 학생들이 주로 찾아온다. 밥도 더 달라면 양껏 퍼준다. 종업원 8명 중 4명이 가족이라 인건비를 확 줄여서 버티고 있다. 박씨는 “10여년간 같은 업체에서 음식재료를 들여온 덕에 같은 재료를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수제버거 가게는 불고기치즈버거를 3000원에 판다. 근처 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최대한 싸게 사오는 게 ‘착한 가격’의 비결이다. 주인은 “싸지만 좋은 재료를 쓰려고 매일 아침 시장을 뺑뺑 돈다”며 “별로 남는 건 없지만 찾아주는 분들이 고마워 3년 넘게 햄버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싼값에 음식을 파는 ‘착한 가게’의 비밀은 가족과 발품이었다. 인건비를 줄이려 가족을 총동원하고, 재료값을 아끼기 위해 발품을 판다. 취재팀이 돌아본 서울의 ‘착한가격업소’ 8곳 중 5곳은 일가족이 투입돼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런 업소를 육성하려고 2011년 각 기초자치단체의 업종별 평균가격보다 싸게 파는 곳을 지원하는 착한가격업소 제도를 도입했다. 업소 측이 지자체에 신청하면 평가를 거쳐 착한가격업소로 지정한다. 착한가격업소가 되면 쓰레기봉투(20·50ℓ들이 각 10장)나 방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011년 전국에 2497곳이던 착한가격업소는 이듬해 6734개로 4000여개나 늘었다. 그런데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13년 6552개, 지난해 6536개에 그쳤고, 서울만 보면 2012년 1020곳에서 지난해 993개로 되레 줄었다. 착한가격업소 지정을 신청했다가 인증을 반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제도가 갈수록 유명무실해지는 건 싼값으로 불황을 버틸 만큼 실질적 혜택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되면 음식값을 올릴 수 없다. 행자부는 매년 두 차례 전국 723명 주부물가모니터단을 통해 착한가격업소의 가격 인상 여부, 위생, 친절성 등을 점검한다. 이런 통제를 상쇄할 만큼 매출이 늘어야 하는데 그러기 어려운 현실 탓에 재인증을 포기하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착한가격업소 주인은 “식당 앞에 착한가격업소라는 팻말을 달아주는 것 외에 실익이 거의 없다”며 “인증 받은 뒤에는 가격을 전혀 올릴 수 없어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성북구의 업소 관계자는 “지원을 기대하고 신청했는데 쓰레기봉투 주는 것 정도여서 이제 기대를 접었다. 인증 취소 후에도 착한가격업소 팻말을 그냥 쓰는 곳도 있다. 이렇게 관리할 거면 왜 제도를 계속 운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박세환 조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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