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온 프랑크 가족의 한국 생활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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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의 해라더니 말띠 셋이 모인 집안은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얼마 전 KBS < 인간극장 > 을 통해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는 일상을 즐겁고 유쾌하게 그려냈던 프랑크 가족.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이 가족의 대한민국 적응기를 들여다본다.
전북 정읍시 산외면. 마을을 들어서자 프랑크(49세)씨가 서 있었다.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프랑크씨를 앞세워 좁게 난 흙길을 따라 걸으니 담을 감싸 쥔 담쟁이가 인상적인 집 한 채가 나온다.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웃음을 얼굴에 가득 머금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할아버지 정창근(84세)씨와 할머니 이복남(84세)씨, 뒤로 질끈 묶은 갈색 머리가 예쁜 세나(13세)와 두 볼이 빨간 산이(4세)를 안은 엄마 정희라(45세)씨까지 모두 나와 손님을 반긴다. 강아지 두 마리까지 합세하니 이런 환영 인사가 또 없다.
독일 남자, 당찬 동양 여자에게 매료되다
희라씨와 프랑크씨가 처음 만난 건 약 6년 전, 직장에서였다.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통신사 보다폰(Vodafone)의 마케팅 과장으로 일했던 희라씨에게 한 컨설팅 회사 대표가 조언을 얻으려 했다. 젊은 대표는 전화 속 그녀의 당당함에 함께 일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첫 미팅을 가진 날 젊은 대표는 사무실에서 마주한 희라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으로 얼굴을 대면했을 때 그는 매우 놀라워했어요. 제가 동양인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럴 만도 한 게 독일에서는 동양인이, 그것도 여자가 이런 큰 회사의 간부로 있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죠."젊은 대표는 프랑크씨였고 그게 바로 그들이 시작한 로맨스의 첫 장면이었다. 희라씨 특유의 화통한 성격과 꼼꼼한 일 처리 능력은 프랑크씨와의 작업 중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프랑크씨가 일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그녀는 언제나 완벽한 솔루션을 내놨다. 프랑크씨의 일은 점점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다. 희라씨는 프랑크씨의 친절함과 배려심에 반했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밝았고 추진력이 있었다. 일을 하는 중에도 진행이 잘되지 않으면 걱정부터 하던 희라씨와 달리 프랑크씨는 웃으며 잘될 거라고 격려했다. 그렇게 상대의 부족함은 채우고, 힘들 때 격려하며 정이 들었고 2년 뒤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프랑크씨 특유의 친화력과 배려심은 처음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뵈러 갔을 때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소설가인 정창근씨는 한국어를 배워 오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던 프랑크씨의 모습을 보고 "그거면 됐다!"며 맘에 들어 했고 이복남씨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살갑게 대하는 사위에게 반해버렸다. 당찬 동양 여자에게 매료된 그가 이번엔 희라씨의 가족을 매료시켰다.
성격 급한 이 부부가 사는 법
생김새는 확연히 다르지만 이 부부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서로 많이 닮았다. 말이 빠른 것도 닮았고,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는 성격도 닮았다. 웃을 때도 목젖이 보이도록 화통하게 웃는 게 부부가 꼭 닮았다. 유쾌하고 푼푼한 프랑크씨가 똑 부러지는 성격의 희라씨에게 많이 져주면서 살 것도 같은데 희라씨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평소 친절하고 밝은 남편이지만 성격이 급해요. 우리 어머니도 '우리 사위 최고'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항상 우리 사위 느긋한 성격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답니다.(웃음)"
사실 이렇게 말했지만 프랑크씨의 급한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적잖이 덕을 보고 있다. 냄비 뚜껑에서 손잡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새로 달아놨고, 하수구가 막히면 바로 달려가서 뚫었다. 식사 때가 다 돼도 고쳐야 할 게 있으면 그것 먼저 고쳐야 밥을 먹었다. 급한 성격에 남들이 미뤄놓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프랑크씨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는 타이틀은 급한 성격 때문에 붙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희라씨를 그렇게 사랑해주는데 성격 좀 급한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프랑크씨는 내내 희라씨한테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안 될 것 같은데 그때 다시 한 번 뒤를 치는 희라씨의 한마디.
"사실 저도 성격이 급해서 불꽃같이 확 일어났다가 다시 가라앉고는 해요. 큰소리내면서 싸우다가도 조금만 있으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화하죠. 그래도 욱하는 성격은 많이 죽이려고 노력합니다.(웃음)"이 부부, 확실히 닮은 것이 천생연분임에 틀림없다.
지인들은 한 달 만에 한국행을 결정해버린 프랑크씨와 희라씨를 보고 모두 미쳤다고 했다. 사실 프랑크씨와 희라씨도 어머니가 편찮으시지만 않다면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릴 순 없었을 것이다. 프랑크 가족은 지난 2012년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 인사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이복남씨가 무릎에 지병이 도져 입원해야 했다. 희라씨는 독일로 돌아온 뒤에도 크리스마스에 보았던 어머니의 편찮으신 모습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때 프랑크씨가 먼저 어머니를 돌보러 가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프랑크씨도 아프신 장모님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딸 세나에게도 의견을 묻자 서슴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장인, 장모님이 아픈 것은 내 부모가 아픈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행을 결정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도 장모님을 뵈었던 그날 이후로 계속 마음이 쓰였거든요. 더구나 시골이라 매번 병원에 가려면 멀리 나가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꼭 필요했고, 그건 당연히 저였죠."결국 독일로 돌아간 지 한 달 만에 프랑크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심리학 박사로 활동하며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던 프랑크씨와 능력 있는 마케팅 과장이었던 희라씨는 부모님을 위해 모든 걸 접고 이곳에 왔다.
"그때는 두려운 것도, 걱정되는 것도 없었죠. 그냥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어요. 프랑크가 먼저 어머니를 돌보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주었을 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산외면에 프랑크 가족이 스며들었다. 조용하고 작은 동네에 어느 날부터 자전거에 아들을 태운 이방인이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는 지나가는 동네 할머니께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한국말은 모르지만 손짓 발짓을 이용해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공학박사인 프랑크는 자신의 재주를 이용해 마을의 기계나 공구가 고장 나면 어디든 달려가 고쳐주기도 했다. 멀리서 온 이방인을 멀뚱히 지켜보던 동네 주민들은 "후랑크~" "후 서방"이라며 반겨주었고 이제 독일에서 온 이복남씨 댁 후 서방은 산외면에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주민이 되었다.
세나가 화제가 된 건 단순히 예쁘고 잘 웃어서가 아니다. 자유분방하고 평등한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외국 아이가 어른들을 공경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우리나라 교육시설에 독일 사람도 감탄
사실, 이들도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는 막막했다. 부모님을 보살펴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무작정 출발했지만 도시 생활이 익숙한 이들에게 논과 밭이 펼쳐진 이곳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세나는 독일에 있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한국어도 능숙하게 하는 편이어서 적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죠. 하지만 시골 학교이다 보니 교육시설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독일보다 훌륭한 교육시설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독일은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교육 시스템이나 환경이 많이 다르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나 학업 커리큘럼, 교사와 학생 간의 비율 등에서 월등해 교육에 관심이 있는 독일 부모라면 대부분 사립학교에 보내길 원한다. 희라씨도 다르지 않았다. 세나가 독일에서 4학년으로 졸업한 뒤(독일은 초등교육 과정이 4년이다) 준비했던 곳이 사립학교였다. 그곳은 성적이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입학하기 위해선 면접을 봐야 하는 등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프랑크씨는 우리의 초등교육 시스템이 독일의 영재교육 시스템과 수준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교실마다 놓인 영상기기며 각종 교구들이 독일의 영재학교와 거의 같은 수준이며 교육의 질도 높았다.덕분에 한국에서 교육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세나 또한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잘 적응해갔다.
예절 바른 아이, 부모가 만든다
< 인간극장 > 에 출연 이후 세나가 화제가 된 건 단순히 잘 웃는 예쁜 아이여서가 아니었다. 할머니를 모시는 모습에 가식이나 꾸밈이 없었고, 어린 동생 산이를 돌보는 모습이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식사 때가 되면 자연스레 부엌에 계신 엄마 곁으로 가 식탁을 닦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았다. 자유분방하고 평등한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외국 아이가 어른들을 공경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프랑크씨는 "독일에도 요즘 부모들이 공부만 시키고 가정에서 따로 교육을 하지 않아 예의 없이 지성만 높은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주변에서도 식탁에 누워 식사하거나 어른들이 밖에서 돌아와도 인사도 하지 않는 그런 아이들을 봤었죠. 하지만 우리 가족은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아주 철저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돕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철저히 교육해왔고, 세나 스스로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교육이 잘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교육 시스템이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보고 익히는지에 달렸다고 했다. 아이들이 직접 보고 행동하게 하라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독일에서 한국에 온 이유는 '이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다. 우리는 항상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머릿속엔 '왜'라는 물음표가 떠오르고,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죠."
실제로 세나가 해온 일들은 희라씨가 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산이를 씻기고 놀아준 것도 희라씨가 먼저 했고,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발톱을 정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먼저 행동하는 건 평범하게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일이고 힘이 들기도 해요. 아이보다 먼저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은 행동이라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없어요."
프랑크·정희라씨 부부의 엄격한 가르침으로 세나는 예쁘고 싹싹한 데다 예의까지 바른 아이로 자랐다. 공부도 잘해 독일에 있을 땐 학급에서 1등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아빠·엄마의 든든한 조력자로 곁에서 갖은 일들을 도왔다. 하지만 요즘 세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프랑크씨와 희라씨는 변한 딸의 모습에 약간은 섭섭한 눈치다. "요즘 세나는 자기의 생각을 곧잘 표현해요. 전에는 무조건 '네~'라고 했다면 요즘은 상황을 보고 자신이 먼저 판단하죠. 그래서 가끔 의견 충돌도 있고, 뾰로통하게 굴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래보다 부모님 말에 순종 잘하는 예쁜 딸임에는 틀림이 없죠."
사실 한국에 온 뒤로 제일 바빴던 건 세나였다. 1년 만에 생활환경이 크게 바뀌어 적응해야 했고, 친구들도 다시 사귀어야 했고, 한국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했다. 편찮으신 할머니도 돕고, 점점 커가는 동생도 컨트롤해야 했다. 요즘은 'EXO' 오빠들까지 세나의 마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집에서 젤 바쁜 사람은 누가 뭐래도 세나다. 방은 한국의 여느 십대 소녀와 다를 바 없이 좋아하는 EXO 오빠들의 사진과 기사, 친구들 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돌아오는 목요일엔 한 가요 프로그램에서 세나를 초대해 서울까지 가게 됐다며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인간극장 > 이 방송된 이후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했던 세나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유튜브에 자신의 사진과 노래로 꾸민 인사말을 올리기도 했다. 세나는 이런 사람들의 관심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사실 처음엔 방송국과 잡지사에서 우리 가족을 취재하러 온다는 말에 '특별할 게 없는데 왜 우리 가족을 취재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전히 우리 집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으로 인해 행복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본격적인 한국 생활, 이제부터 시작
프랑크 가족이 산외면에 들어와 산 지도 벌써 1년이 됐다. 처음 목표했던 기간을 모두 채웠다. 하지만 프랑크씨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정말 즐거워 벗어나고 싶지 않다. 편찮으신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도우며 또 한국 문화에 대해 좀 더 배우며 살고 싶다고 했다. 3월부터 서울의 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게 된 프랑크씨는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며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장인어른·장모님 곁에 더 있고 싶어 주변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것이 어떻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이력서를 무작정 보내보기도 했지만 답변이 없었습니다. 나름 독일에서 꽤 유명한 심리학박사로 이름나 있었기 때문에 준비 없이 급하게 한국에 왔어도 금방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역시 쉽지 않네요.(웃음)"
실제로 프랑크씨는 미국의 유명 대학인 UCLA와 독일 아헨공과대학에서 각각 심리학과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딴 인재다. 프랑크씨의 말이 끝나자 희라씨도 앞 다퉈 말을 꺼낸다.
"저도 독일에서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인정받았지만 이곳에선 그냥 독일에서 오래 살다온 아줌마가 되더라고요.(웃음) 여섯 살 때 이후로 한국에서 생활한 적이 없으니 제 능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오지 않아 속상하기도 해요."
프랑크·정희라씨 부부는 이제 시작이라 어려움이 많지만 계속해서 용기를 갖고 한국 생활에 적응해보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시골 생활도 잘 이겨냈는데 서울로 올라와서는 뭘 못 하겠느냐는 것이다.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틀림없이 잘해낼 거란 믿음이 생긴다.
편찮으신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모시기 위해 독일에서 날아온 프랑크 가족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분명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취재_전유리 기자 | 사진_박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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