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자투리땅의 기적, 과천 협소주택

취재 정사은 사진 변종석 2014. 10. 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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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소주택

삐뚤빼뚤 못생긴 땅

이 땅은 과천시 도시계획에 의해 마을길인 소로(小路)가 생기면서 앞집의 마당이 잘려나가 생긴, 그야말로 자투리땅이다. 이전 땅주인에게 이 땅은 계륵(鷄肋)이었다. 남쪽은 도로에, 북쪽은 옆집 담벼락에 갇힌 삼각형 땅. 심지어 온전한 삼각형도 아닌, 모퉁이가 잘린 삼각형이다. 50㎡ 작은 면적에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덕분에 건축주는 조용한 주택가 남향 땅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었고, 땅주인은 쓸모없는 땅을 처분할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에게 행운인 셈이다.

삼각형 창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작은 집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집은 거푸집의 노출면을 그대로 외벽 삼아 페인트로 마감했다. 노출콘크리트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마감이 투박한데, 이유인즉 콘크리트 면을 매끈하게 뽑으려면 거푸집과 공정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작품주택 아니고서야 그럴 필요 없다'는 건축주의 강단 있는 의지가 이 마감을 쓸 수 있었던 선행조건이었다. 땅은 50㎡, 알뜰살뜰 면적을 모아 실내를 구성하니 쓸 수 있는 면적이 57㎡이다. 허가면적인 46.4㎡에 발코니 확장으로 10.6㎡ 보너스 면적을 추가로 얻어 탄생한 협소주택 사이(sai)다.

해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 때문에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땅부터 집까지 전세금으로 모두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은 자신이 내뱉고도 불가능해 보였다고 한다. 건축주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내의 동의를 얻는 데만도 장장 4년이 걸렸다. 전세금으로 짓겠다는 조건 외에도 기존의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맞벌이 부부의 출퇴근이 가능해야 했다. 마침 단독주택 열풍과 맞물려 TV와 잡지에서 외국 협소주택을 여러 채 소개했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아내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이 주택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위성지도와 지적도, 그리고 발품을 팔아가며 작은 땅을 찾아다니길 1년 남짓. 마음에 드는 땅이 있었지만 금액이 맞지 않아 포기한 적도 있고, 작은 땅이지만 맹지이기 때문에 집을 지을 수 없는 조건도 있었다. 어느 휴일,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다 발견한 이 땅은 남향인데다가 작아 비용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때 건축주는 속으로 외쳤다. '땅이 내게로 왔다!'고.

사실 그에게 '집'이란 평생 번 돈으로 으리으리하게 지어 죽을 때 까지 사는 곳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옮겨가면 되는 곳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욕심을 버릴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 젊은 나이니 돈이 넉넉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그렇다면 면적과 치장에 욕심을 내려놓자 결심했다. 실내는 최대한 간결하게 구성해 마감재를 덜어내되, 보기 좋게 구성하는 것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자신이 직접 하면 되었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좁아서 어쩌나…"하는 주변 염려는 "팔고 이사 가면 되지!"라는 명쾌한 대답으로 일축했다.

작은 땅일수록 디자인 중요도는 크다. 쓸 수 있는 건축면적이 7~8평밖에 되지 않아 자칫 계단을 잘못 내기라도 하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이 더 줄어들 터였다. 건축주는 설계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전부터 협소주택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오파드건축연구소 오문석 건축가와 연이 닿았다. 외관 디자인에서부터 실내 구성과 인테리어, 배치까지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두 사람의 만남으로 밀도 높고 짜임 좋은 주택이 만들어졌다.

협소주택 건축 솔루션

협소주택의 과제는 계단실, 주차장, 방까지 각 실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구성하는가이다. 이들은 먼저 연면적 50㎡이하 주택은 주차장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주차장법 시행령을 이용해 주차장 대신 필로티 구조의 야외공간을 디자인해 아이와 함께 뛰놀 마당을 만들었다.

실내는 한 층이 방 하나로 사용되는데 굳이 구분하자면 1층은 주방과 식당, 2층은 거실, 3층은 안방이다. 건축 착공허가 당시 정북방향 사선제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높이인 8m 이하를 지키기 위해 현관에서 1m쯤 아래에 주방과 식당을 배치하고, 여기서 생긴 레벨차를 이용해 화장실을 세미스킵 형식으로 엇갈리게 배치했다. 좁은 공간에서 계단실을 중심으로 층을 나눠 공간을 배치하는 이 아이디어로 주택은 6개의 레벨이 있는 실내를 갖게 되었다.

집의 실내 면적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낸 아이디어는 다락과 발코니 확장이었다."협소주택은 조그만 공간이라도 버리지 않고 활용해야 해요. 화장실 상부에 1m 높이 공간이 생겼고, 이곳을 다섯 살 아들이 놀 수 있도록 다락으로 만들었어요.

이 공간은 건축가가 과천시청 건축과에 몇 차례나 확인해 얻어낸 전리품이다. 흔히 최상층 경사지붕 아래에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상부 슬래브가 평평할 때 최고높이 1.5m 이하면 어디든 다락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연면적에서 제외되니 서비스 면적인 셈이다.

두 번째는 발코니 확장이다. 발코니는 잘 활용하면 작은 집에서 합법적으로 실내 면적을 얻을 수 있는 보너스 공간이다. 이 집은 2층과 3층 남쪽 면의 일부를 발코니로 설계해 건축허가를 취득한 뒤 공사하며 실내로 편입시켰다. 준공서류를 접수할 때에는 발코니 확장 전후 도면을 함께 제출해야 하고, 최종 건축물대장에는 확장경계부분 기준선이 표시된 확장 후 도면이 등재된다.

사실, 단독주택에 살고는 싶은데 돈이 없다는 말은 거짓일지 모른다. 가진 돈을 셈하여 건축예산을 세우고 이걸로 가능한 면적과 형태를 생각해보자. 공사비가 부담스럽다면 마음 맞는 두세 가족이 동시에 공사를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돈이 적으면 작고 아담하게 지으면 되고,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면 경매 등을 통해 도심 속 숨겨진 땅을 찾으면 된다. 자투리땅을 찾아 1년을 헤맨 이 집의 건축주처럼 말이다.

주차장을 포기하니 흙 밟는 재미가 생겼고, 고급 인테리어를 포기하니 대출 없이 아늑한 보금자리가 탄생했다. 방문이 없으면 어떻고 계단이 가파르면 어떠한가. 공간 곳곳은 아이의 서재가 되고, 놀이터가 된다. 문이 없으니 오히려 가족의 소통은 더 좋아졌다.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마당에서 흙놀이를 하고 해먹에서 낮잠을 자며 게으름 피우는 것이 이 가족의 새로운 행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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