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 길 신혼집

2016. 5. 3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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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of Taste

경리단 길의 유명한 게스트하우스 ‘체크인플리즈’를 만든 김혜영, 도원탁의 신혼집은 어떤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작은 평수를 무색하게 하는 아이디어와 감각으로 가득 찬 또 다른 ‘걸물’이다.

그레이 톤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체크인플리즈의 외관.

갑작스런 누수와 막바지 이사 마무리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촬영에 적극적이었던 부부와 점잖은 반려견 추추.

루프톱 하우스에 만든 침실. 숙면에 방해가 되는 TV나 살림살이는 다 치우고,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레이 톤과 라왕집성 판재로 만든 침대 베이스 등을 이용했다. ‘옥탑방’이지만 도원탁 작가가 벽에 단열재를 하나하나 채워넣어 겨울에도 따뜻하다.

"공간 이미지가 ‘집’으로 한정되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여백의 힘이 있는 화이트를 주색상으로 사용했고, 조명으로 좀 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줬죠.”

오래된 나무와 장판, 천장만 걷어내고 화이트 컬러 페인트칠을 하니, 뉴욕의 로프트 하우스 같은 러프한 느낌이 만들어졌다. 좁은 집의 숨통을 트이기 위해 옷방과 주방 문을 떼어버렸다. 필라멘트 전구와 여행 중에 모은 소품들로 공간 여백에 표정을 더하기도.

현관문을 열었을 때, 좀 더 ‘웰커밍’하는 분위기를 주고 싶어 길게 확장한 현관 입구. 회색 타일을 깔고 키가

큰 바질나무를 두어 분위기가 환기된다.

루프톱 하우스 침실의 초소형 화장실과 주방. 정갈한 화장실엔 최소한의 창문과 습지식물인 고사리류 식물을 놓았고, 주방엔 싱크대만한 크기의 창을 만들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를 쉽게 알아본다. 입고 있는 옷, 자주 듣는 음악, 주로 가는 카페, 슬쩍 풍기는 향까지 처음 보는 사이라도 흠칫 놀라며 금방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 경험에 대한 얘기다. 재작년 여름, 경리단 길이 들썩거리기 시작할 무렵, 한 골목에 오픈한 게스트하우스 ‘체크인플리즈(Check Inn Please)’는 취향에 이끌리는 이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공간이었다. 반지하 카페, 2층 게스트하우스, 꼭대기 루프톱 오너의 하우스까지 체크인플리즈란 이름의 일부로 운영되는 이곳은 최소한의 가구만으로도 꽤 정확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건물 전체를 한 가지 스타일로 정돈한 탓에 1989년에 준공된 오래된 빌라라는 걸 눈치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감각으로 경쟁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작에 SNS 하트를 수백 개씩 받으며 소리 없이 유명해진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체크인플리즈 스튜디오를 만든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혜영과 조각가 도원탁 부부가 자신들의 살림집 또한 같은 건물 1층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사 마무리가 덜 된 시점이었음에도 <엘르 데코>가 꼭 촬영하고 싶어 삼고초려를 요청한 이유다. 도원탁 작가는 카페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을 처치하느라, 김혜영 실장은 1층 이삿짐 막바지 정리를 해치우느라 여전히 분주한 채로 에디터를 맞았다. “원래 500m쯤 떨어진 곳에 신혼집이 있어요. 그런데 분리돼 있다 보니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지더라고요. 수익보다 취향 통하는 사람들과 좀 더 가까이 교류하고 싶어 만든 공간인데, 체크인과 체크아웃할 때만 손님을 만나는 것도 못내 아쉬웠죠. 그래서 지난여름부터 세간살이를 조금씩 옮겨두고 두 집 살림을 하다가, 아예 이사하기 위해 몇 주 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 튤립은 거실 테이블 위에 둘까요? 키스 자렛 앨범 포스터는요?” 공간이 정리가 되면서 허옇기만 하던 이 집의 진가가 조금씩 드러났다. 이 건물의 비밀 아닌 비밀 중 하나는 대지면적에 비해 건축 실면적은 작디 작다는 것. 12평밖에 되지 않는 규모의 집이지만 꽃과 인테리어 오브제 등을 어느 곳에 두느냐에 따라 표정을 달리할 정도로 공간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여백들로 가득하다. 덕분에 체감과는 다른 수치에 어리둥절한 상황. “주로 넓은 평수의 주택 위주로 프로젝트를 하다가, 내 집으로 일종의 실험을 하게 된 거죠. 골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현대적인 느낌을 더했고, 좁은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여백이 보이는 데 집중했고요. 그러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납을 해야 했어요.“ 김혜영은 가공이 덜 된 듯한 마감재나 소재의 원래 느낌이 살아 있는 자연스러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덕분에 사는 사람의 개성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도드라지는 공간을 만들어왔다. 트렌드만 따르지 않는, 소위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는 공간이 그녀의 손에서 여럿 탄생했다. 아닌 게 아니라 친숙한 듯 생경한 공간 구성에 나도 휴대폰 카메라를 연신 눌러댔다. 대리석 바닥과 벽면은 물론 가구도 모두 화이트 컬러로 맞춘 공간은 거실과 맞은편의 작업실, 문을 떼낸 옷방과 주방, 작은 화장실로 구성돼 있다. 각 공간엔 폴 해닝슨의 구조적인 펜던트와 루이스 폴센의 우아한 판텔라 조명, 도원탁 작가가 직접 만든 오브제들, 공간에 생기를 더하는 푸른 식물들, 세계 각지에서 모은 에코백 등이 적재적소에 자리 잡고 있다. “공간 이미지가 ‘집’으로 한정되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여백의 힘이 있는 화이트를 주색상으로 사용했고, 주방과 작업실의 위치를 바꿨어요. 또 주로 그레이 톤을 사용해서 남성적인 느낌을 준 게스트하우스에 비해서, 좀 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줬죠. 요즘은 가드닝에 관심이 많아서 공간마다 어울리는 식물을 놓는데, 예상보다 위로의 힘이 크더라고요.” 집을 거의 다 돌아봤을 무렵, 문득 이 공간에 침실이 없단 사실을 알았다.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던 옥상 층을 침실로 바꿨어요. 1층이 좀 작기도 하고, 최대한 숙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작은 펜트하우스 같지 않나요?” 화이트만큼 좋아하는 색이자 게스트하우스에도 꾸준히 사용한 그레이 컬러를 칠해 최대한 심플하게 마감한 공간에는 우드 톤의 침대와 사이드 테이블이 놓인 침실, 간이 부엌과 초소형 화장실이 전부였다. 옥상 층의 백미는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을 둘러싼 서울의 풍경들! 이 집을 만들어가면서 부부의 삶도 조금씩 변화했다. “20평대 집에서 12평대 집으로 옮겼으니 어쩔 수 없이 가진 물건의 절반을 버려야 했어요. 특히 아내는 직업상 여행 가서 영감받은 물건이나 인테리어 자재 등 항상 많이 소유하는 스타일이라 더 버리기 힘들었을 거예요.” 공간이 줄어든 덕에 심플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소비에도 신중을 기하게 된 것은 예상치 않은 수확이다. 낡은 집이라 손댈 곳이 자꾸 생긴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벌써 옥상 온실 구상에 들어간 도원탁은 이 가족의 비공인 엔지니어다. 침대 헤드보드와 주방 상판, 원형 계단 울타리 등 집 안 구석구석을 만든 장본인답게 다음 목표는 공중 정원이 될 모양이다. “맨해튼의 에이스 호텔, 윌리엄스버그의 와이스 호텔은 둘 다 러프한 매력이 있지만 각각 호텔 근처 거리의 분위기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잖아요. 여기도 경리단 길과 그런 ‘케미스트리’가 생기길 바라요.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공간.” 그렇다면 이 집은 경리단 길의 ‘만남의 광장’ 즈음이 아닐까. 마침 김혜영이 가장 좋아하는 독립 출판물 <FvF(Freunde von Freunden) Friends of Friends>를 꺼내온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개성을 그들의 집을 통해 보여주는 인테리어 화보집이자 그녀가 상당 부분 영감을 받은 책이다. 서울에서 공간이든 색깔이든 분위기든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이가 없어서 외로웠던 사람들에게 두 손을 내미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집, 부부는 이 집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더 많은 친구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photographer 장엽

contributing editor 정승혜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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