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선왕조실록] 황희의 자식들이 도둑질을 하다

CBS노컷뉴스 도성해 기자 2015. 11. 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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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0월 12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황희 정승의 적자와 서자가 모두 도둑질을 일삼다 적발됐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황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보신' 이라는 적자와 첩에게서 얻은 '중생' 이라는 서자가 있었습니다.

중생은 동궁에서 시중드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손버릇이 아주 나빴습니다. 동궁에서 금 술잔과 금 띠가 계속 없어졌고 심지어 세자가 쓰는 방한모까지 누군가 훔쳐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의금부에서는 중생을 의심하고 자택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중생의 방에서 없어졌던 방한모가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는데, 중생은 그전에 잃어버렸던 금잔과 금띠도 모두 자신이 훔쳤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금잔의 무게가 20냥이었는데 중생의 집에서 나온 것은 11냥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9 냥의 행방을 추궁당하자 중생은 자신의 형에게 주었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나 보신은 이를 전면 부인했고, 결국 두 형제는 대질 심문 자리에서 얼굴을 맞대야 했습니다. 중생은 "형이 윤이 라는 첩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금을 건네받고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고 주장했지만 형과 첩은 거짓말이라고 계속 부인했습니다.

형의 거듭된 거짓 진술에 화가 난 듯 중생은 형이 예전에 저지른 범죄까지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중생은 형 보신이 일전에 의금부에서 근무하던 중에 의금부에 속한 말 1필과 비단 2필을 훔쳐서 기생에게 넘겨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보신은 또 의금부에서 금비녀를 압수한 적이 있었는데 이중에 한 개를 훔쳐냈다가 들켜 조사를 받았는데, 알고보니 기생이 머리에 꽂고 있었습니다.

서자의 절도 사실을 전해들은 황희는 중생이 자신의 소생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아들로 삼지 않았는데, 결국 중생은 성을 '조(趙)'로 바꿔야 했습니다.

■ 세종 9년 (1427) : 저화 사용 장려를 위해 정부 곡식의 화매를 지시
⇒ 세종은 백성들이 화폐를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 창고의 묵은 곡식을 돈을 받고 팔도록 하는 등 화폐 유통을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 세종 16년 (1434) : 불필요한 육조의 참의,참판 하나씩을 없애다
⇒ 당시에도 비대한 관료 조직의 문제가 불거졌던 것으로 보인다

■ 세종 22년 (1440) : 황희의 서자의 절도에 대해 국문

■ 세종 28년 (1446) : 군역을 피하기 위해 삭발한 자들을 규찰하다
⇒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삭발하고 중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를 엄하게 단속하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 안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 광해 1년 (1609) : 재상들의 휴가에 말을 주지 말자는 사헌부의 건의를 허락
⇒ 재상과 공신들이 휴가를 갈 때는 정부의 말을 지원해 주던 것을 금지 시켰는데 관용차를 개인적인 용도로 쓰지 못하게 한 것과 같다

■ 숙종 5년 (1679) : 가마솥 만한 별똥별이 떨어진 것을 관상감이 보고하지 않아 논의
⇒ 크기가 가마솥만하고 대포 소리를 내는 큰 유성이 떨어졌는데 관상감에서 보고하지 않았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CBS노컷뉴스 도성해 기자] holysea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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