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하나 씨의 비밀 아뜰리에

취재 정사은 사진 전성근 2015. 7. 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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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히읗 사진 영상 작업실

강아지를 마당에서 뛰놀게 하고 싶어 시작한 전원행이 삶을 통째로 바꿨다. 집도 사무실도 모두 시골로 옮기고는 꽃과 새, 고라니를 친구로 들였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즐거움이 집과 일터에 묻어나는 이곳은 사진 영상 작업실, 필름 히읗의 아뜰리에다.

"처음에는 그저 카메라를 가지고 싶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하고는 카메라를 얻어냈죠."

삶에 있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또 있을까. 자신의 시선을 사진에 담고 싶었던 미술학도가 용돈벌이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웨딩촬영도 하고 연출컷도 찍다 보니 알음알음 소개로 일이 이어졌다. 그렇게 3년이 지나 영상과 사진, 편집까지 아우르는 '필름 히읗'은 홍하나 씨의 엄연한 직장이 되었다. 그녀를 포함해 동업자는 4명. 스물여섯 막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이 모인 이 회사는 서울에서 한 시간 차를 달려 닿는, 경기도 파주에 자리한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고, 다른 나무가 열매맺는 이 시골에, 올라오는 새싹보다 더 푸른 젊은이들이 자리 잡은 연유가 궁금했다.

하나 씨가 유기견이 될 뻔한 복덩이를 만난 건 어느 동물병원에서였다. 강아지가 치사율이 80%라는 파보바이러스에 걸렸는데 100만원 넘는 병원비가 벅찼던 전주인은 복덩이를 버려달라 요청했고, 아이가 눈에 밟혀 거둬들인 그녀였다. 이름을 복덩이로 짓고는 작은 원룸에서 복닥대며 살다가, 어느 날 짖지도 못하고 산책 나가도 소심하게 구는 강아지가 가여워 시골행을 택했다.

"복덩이 덕분에 진짜 복이 굴러들어왔어요. 이 아이로 인해 파주에 자리 잡게 됐고, 이곳에서의 생활은 완전히 제 삶을 바꿔놓았어요."

전원 생활이 산으로 들로 뛰노는 강아지에게만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본인이 더 행복해졌단다.

주인아주머니가 곱게 가꿔놓은 정원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이 핀다. 꽃 이름을 모를 때면 사진 찍어 부모님께 보내고 물어보며 익힌다. 복덩이를 따라 집 뒤의 언덕을 올랐을 때는 고라니도 봤다. 겨울에도 설경이 감동이더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감동은 배가된다. 이게 다 공짜라고 생각하니 벅차서 더 좋다.

이 집을 처음 지은 이는 아마도 꽃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의 소유자였으리라. 남향으로 난 산자락 아래, 산을 깎지 않고 편안한 경사의 계단을 만들어 정원을 내고, 단과 단 사이에 꽃을 심어 경계를 지웠다. 집이 자연스레 풍경에 스미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워낙 잘 정리되어 있던 집이라 바닥을 새로 깔고 창문을 교체하는 데만 외부 인력을 썼다. 사옥이자 작업실이기에 기능보다는 자연을 오롯이 느끼는 데 더 집중해 단장했다. 벽지를 메우고 싱크대를 칠하는 일, 가구를 나르는 일은 네 명이 조금씩 손품, 발품을 팔았다. 현관 타일은 하나 씨가 만든 타일로 보수할 예정이고, 직접 구운 도자기 조명을 달 거란다. 카펫도 손수 패턴을 그려 만들었다는 그녀는 자기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도자기를 구운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린 타일을 만들고 있어요. 좀체 색이 나와주지 않아 고전하고 있지만요(웃음). 아참, 얼마 전엔 도자기 가마도 마련했어요."

앞으로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꽤나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사실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그건 돈이 많이 드니까 나중에 할 거예요."

카메라를 산 이후로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살아온 26살 하나 씨. 자기가 살 집도, 이 필름 히읗의 사옥도 모두 직접 '벌어서' 마련한 것이다. 이를 두고 성공이라고 하기엔 그녀가 사는 세계는 그렇게 계산속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쉽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고, 그걸 하면서 사는 삶이요. 사진 찍고 싶으면 찍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는 거죠. 물론 우리는 어른이니, 그 속에서 어떻게 돈을 벌지도 생각해야 하고요(웃음)."

'ㅎ'의 모양이 좋아 어릴 적 큰 종이에 이 글자를 그리고는 그 아래에 트리처럼 '주방용품', '가구', '옷' 같은 것들을 적었다는 그녀는 그 꿈을 천천히 이루어가고 있다. 취업준비도 안 해봤고, 그럴싸한 스펙도 없지만 불안하거나 주눅 든 적은 한 번도 없다.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한 젊음의 푸르름이 집과 마당 구석구석에서 담뿍 묻어난다. 나이가 든대도 사라지지 않을 맑음이다.

필름 히읗 작업실_ www.he-eu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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