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가 숨 쉬는 북촌의 삶

2015. 7. 3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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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을 북촌이게 하는 건 한옥이다. 그리고 한옥을 한옥이게 하는 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널찍한 대청마루에서 전통 악기들을 연주하고 우리 소리를 가르치는 여자. 편하게 변형시킨 한복을 입고 동네를 활보하고 이웃들에게 집밥을 대접하는 풍류 아낙. 삶이 공명해 내는 기분 좋은 소리가 김현주 씨의 북촌 한옥에 울려 퍼진다.

삶의 풍류 찾아 '북촌 방향'으로

북악산 맑은 공기가 머무르는 곳. 조선 시대에는 양반가의 부촌이었고, 대한제국 시절에는 정부 관료들의 집이 모여 있던 동네가 바로 북촌이다. 지금도 북촌에는 험상궂은 고층 건물 없이 밝은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기와집이 수백 채 모여 있고 골목길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열 개나 되는 동이 있지만 행정구역상으로 북촌은 삼청동과 가회동 두 구역뿐이다. '북촌 4경'으로 지정된 가회동 언덕을 올라가면 이 일대 수만 평에 걸친 한옥 지붕의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와지붕의 곡선과 곡선이 맞닿은 어느 두 지점을 남색 모시치마 차림으로 바쁘게 오가는 이가 보인다면 국악체험공방과 게스트하우스 운영으로 한옥 두 채를 동시에 관리하느라 바쁜 김현주 씨다. 원래 우리에게는 한옥 사랑방 등에 사람이 모이면 '시, 음악, 춤'을 나누는 풍류 문화가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이 거문고나 가야금, 피리 연주를 시작하면 그에 맞추어 소리를 하거나 살풀이를 추고, 북과 설장구를 더하기도 했다. 부엌에서는 갓 만든 음식과 술을 내오고 사람들은 밤새 예술을 이야기했다. 김현주 씨는 우리의 풍류 문화, 사랑방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림집과 게스트하우스를 국악체험공방, 사랑방 음악회의 무대로 만들었다. 음식은 어머니에게 배운 전라도식 밥상을 직접 준비하는데 50인분쯤은 혼자서 거뜬히 차린다.

북촌이 북촌다울 수 있는 것은 한옥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옥을 한옥답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노력이다. 김현주 씨는 한옥을 우리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원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눈떴다. 결혼 후에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국악을 가르쳤고 세 아들은 지금 각각 거문고, 대금, 피리를 연주한다. 온 가족이 국악을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한옥과 북촌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 국악체험공방 '국악사랑'의 운영자이자 소리울 게스트하우스 대표인 김현주 씨. '풍류 아는 아낙'으로 북촌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녀가 국악 공연을 앞두고 직접 음식을 준비 중이다.

▲ 북촌은 골목마다 양쪽으로 한옥이 마주 보는 유일한 동네이다. 언덕이 많은데 이 또한 볕바른 양지에 높은 지대라 예로부터 물이 잘 빠졌다는 좋은 풍수를 보여준다.

▲ 대청마루에서 국악기가 놓인 체험실까지 이어져 있다.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방에 서까래를 드러낸 천장이 만나 시원하고 위풍당당해 보인다.

▲ 한옥의 창으로 비치는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옛 어른들은 방에 앉아 미닫이창을 열었을 때 팔꿈치 닿는 각도가 편안해야 잘 만든 집이라고 했다.

▲ <한옥, 풍류를 다시 쓰다>라는 정기 공연이 열리는 국악체험공방 '국악사랑' 입구. 원래 우리에게 있던 풍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김현주 씨 가족의 살림집을 겸한다.

▲ 살림집이자 국악체험공방인 한옥의 마당 풍경. 초여름이 제철인 앵두나무와 대나무가 심겨져 있다. 마당과 평상, 수돗가와 장독대, 디딤돌과 쪽마루 등 다양한 요소가 한옥에 재미를 더한다.

▲ '북촌 4경'으로 지정된 가회동 언덕을 올라가면 우진각, 팔작, 맞배 등 여러 가지 지붕 곡선으로 이루어진 한옥 지붕의 장관을 볼 수 있다.

▲ 국악체험공방에 놓인 다양한 악기들. 사진 속 작은 거문고는 큰아들 다울 씨가 거문고를 처음 배우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연주를 위해 특별 제작한 것이다.

자연 그리고 주변과 호흡하는 한옥에서의 삶

'ㄱ' 자 모양 본채와 작은 별채가 딸린 전통 한옥. 아담한 마당에는 6월이 절정인 앵두나무와 대나무가 있다. 마당과 평상, 수돗가와 장독대, 디딤돌과 쪽마루 등 집 안의 다양한 요소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고, 천연 목재인 소나무를 써서 지은 건물이 자연과 호흡하며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온 집안을 휘감는다.

"결혼 후 아파트에서 살다가 아이들에게 흙을 밟게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경기도 고양시의 시골 마을로 들어갔어요. 그러다 판소리 레슨을 받기 위해 북촌을 찾았는데 '내가 살 곳은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길로 조그마한 집을 얻어 한옥살이를 시작했어요."

중간에 잠시 아이의 학교 문제로 떠났다가 다시 북촌에, 그것도 두 채나 얻어 살게 된 것은 4년 전. 살림집은 국악체험공방 '국악사랑' 공간으로,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을 비롯한 손님들이 우리 악기가 놓인 방에 묵으며 국악을 배우는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두 곳을 오가며 매달 정가악회와 함께하는 <한옥, 풍류를 다시 쓰다>라는 정기 공연을 열며, 신청을 통해 '1:1 국악 레슨', '전통주와 부침개 체험', '전통차와 주먹밥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 정월 대보름에는 남편과 세 아들이 모두 농악단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길놀이에도 참여했어요. 30년 전부터 해오던 동네 행사인데, 어르신들 나이가 많아지면서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활성화해보려고요. 근처 중앙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국악 수업도 하고 있고, 초등학생 아이들도 주말마다 이곳에서 함께 뛰어놀며 공부해요."

'국악 가족'이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지역사회 활동에도 열심인 김현주 씨네 가족. 앞으로도 외국인들과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우리 국악과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공헌하고 싶다고. 하루가 다르게 관광지화 되어가며 주민의 숨결이 사라지는 북촌이지만, 그들에게는 이곳이 일상의 터전이자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곳이다. 또한 북촌의 색깔이 퇴색되지 않도록 지켜가는 것, 이 또한 그들에게 남은 숙제이다.

▲ 북촌의 삶이 특별한 이유는 대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산책할 수 있고, 이웃을 만날 수 있어서다. 동갑내기 친구인 누비 전문점 '금조' 진미숙 대표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 취향을 공유하는 이웃끼리 뭉쳐 만든 '북촌 토끼풀 마켓'은 주말에만 특별히 열리는 핸드메이드 플리마켓이다.

▲ 평소엔 세 아들이 기거하는 방으로, 공연일엔 풍류객들이 모여 공연을 감상하는 장소로 쓰이는 별채. 고가구와 악기, 그리고 이불 세 채로 살림살이가 간편하다.

▲ 국악체험공방에 놓인 악기들.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통상의 실내 전시실과 달리 이곳에서는 누구나 와서 국악기를 만져보고 연주해볼 수 있다. 직접 손으로 체험해야 우리 음악과 친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악체험공방에서는 '친절한 해설이 있는 국악 길라잡이 수업'이 펼쳐진다. 국악의 특징, 국악기의 역사와 특징, 진도아리랑, 장구 세마치장단 배우기 등을 내용으로 한다.

▲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 정가악회와 함께하는 정기 공연 <한옥, 풍류를 다시 쓰다>가 열리는데 이때 집주인 김현주 씨가 준비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처마 밑 부섭마루에 밥과 반찬, 떡과 과일, 직접 담근 오미자차까지 한식을 풀코스로 차려놓으면 방문객들이 양껏 가져다 먹는다.

▲ 정통 한실의 분위기는 그대로, 개인 욕실만 현대식으로 바꾼 게스트하우스의 방. 이부자리는 그녀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으로 한 채에 180만원에 이르는 전통 천연 염색 무명 이불이다.

▲ 마당에 자리를 깔고 오랜만에 가족 공연을 보여준 박우석·김현주 씨네 가족. 서울대 국악과에 재학 중인 두 아들 다울, 찬울 씨는 각각 거문고와 대금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산울 씨는 피리를 전공 중이다. 고운 한복은 이웃인 목운단에서 맞춰준 것이다.

▲ 국악체험공방보다 좀 더 넓은 한옥 게스트하우스 '소리울' 전경. 거문고방, 가야금방, 대금방, 피리방, 해금방의 5개 방에는 그에 해당하는 국악기가 하나씩 놓여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에는 직접 담근 매실차와 오미자차 등이 담겨 있다.

기획 / 심선영 기자 | 사진 / 김덕창 | 촬영협조 / 국악체험공방 국악사랑&소리울 게스트하우스(010-5211-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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