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건축가 김재관, 사는 사람의 꿈을 읽고 집을 고치다

취재 정사은 사진 김호근 입력 2014. 10. 17. 15:30 수정 2014. 10. 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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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인터뷰

세상 모든 일이 궁금해 죽겠다는 눈빛으로 집수리 현장을 누비는 사람. 마흔이 넘은 나이에 소년 같은 영롱함을 잃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스스로 '김목수'라 칭하고, 세상은 '집수리 전문가'라고 부르는 건축가 김재관 소장이다.

집 고치는 건축가, 그 출발은 어디서부터인가요

이런 고민을 늘 했어요. 건축가들이 늘 하던 아키텍처(Architecture)라는 것, 이게 이 일의 전부는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요. 기존 건축가들이 작업하는 방식으로는 사회에 건축가가 관여할 수 있는 폭이 좁다는 사실에 한계를 느꼈어요.

기존 건축가들이 작업하는 방식이라 함은?

소위 대가(大家)의 시대에는 건축가가 권위 있는 직업이었어요. 근데 그 시대에는 건축이 권위 있을 만 했어요. 그만큼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었거든요. 두 번의 전쟁 이후도 마찬가지였고요. 건축물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그만한 기술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은 소수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우리나라 건축계는 여전히 그 시대를 연모하고 있어요. 교육도 그대로고요.

바뀐 시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전문가들이 생긴 거죠. 건축가는 여전히 모든 걸 통합하는 지휘자(Conductor)로 욕심을 부리고 있어요. 다른 이들은 욕심부리지 않고 가구만, 조명만 파고들어서 제 영역을 이룬 거예요.

건축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모든 영역을 다 알고는 있는데, 제대로 아는 건 사실 별로 없어요. 영토 상실의 시대가 열린 거죠. 그 시대에 제가 있었어요.

건축은 계속 진일보하는 것 아니던가요

제가 건축을 하던 시대에는 인테리어, 가구, 빌더들한테 밀려 건축가의 영역이 쇠퇴해갔어요. 욕은 하는데 시장은 뺏기는 거죠. 왜 그럴까 보니 건축가를 원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거예요. 다른 전문가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부분이 있거든요. 게다가 건축가는 현장에서 괜히 폼만 잡는 것 같으니 소위 '재수 없는'거죠. 불우한 시대를 맞았죠.

그럼 건축가가 필요한 영역은 어딘가요

마치 돈 많은 메디치 가문이 미켈란젤로를 후원했던 것처럼, 돈 많은 사람들이 건축가를 찾는 거죠. 일반 집장사 집은 눈에 안 차는 사람들이 건축가를 부르는 거예요. 한마디로 건축가란 불러줄 사람이 없으면 시장을 독자적으로 형성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거죠.

소장님이 그 상황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느껴집니다

사실 나는 뛰어난 건축가가 정말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면면히 느껴왔어요. 저는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늘 최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진지하게 임했고요. 너무 뼈아픈 고백인데, 나는 내가 모자라진 않지만 스스로 원하는 만큼 뛰어나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굉장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엄청나게 똑똑하지도 않고요.

제주 강정교회로 건축문화대상을 받고, 여러 성과도 거뒀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나요

재능이라고 하는 건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디자인 재능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인문학적 지식에 대한 희구(希求)가 있어야 해요. 앎에 대한 본능적인 갈구와 품성, 욕망이 있어야 하고 그걸 해결할 만한 지적능력이 있어야 해요.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조리기구가 나쁘면 꽝이잖아요. 거기다가 독창적인 사고, 배움을 통합해 해결하는 폭넓은 사고, 앎을 통해 배양된 자기 캐릭터 그리고 미적 감각도 있어야 하고요. 한마디로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재가 바로 '재능 있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나는 그만큼은 아니었던 거죠.

스스로 그걸 인정하는 건 힘든 일인데

미칠 것 같았어요. 내가 잘한 것보다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끝없는 열등감이 있었죠. 늘 불만스러웠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질투가 생겼어요. 마흔 초반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시절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어느 날 문득 '네가 그런 재능이 있다 치자. 그럼 넌 그 생활을 만족했을까'생각해봤어요. 내가 그렇게 존중해 마지않는 일부 건축가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은 것만 있지는 않더라고요. 화려함 뒤에 쓸쓸함과 공허함이 있고, 미켈란젤로처럼 누군가 불러주지 않으면 독자적인 생산을 하지 못하는 게 있더라고요. 내가 도달하고 싶었던 그 세계의 내면까지 전체를 다시금 보니 내가 원하는 건 상황(State)일 뿐, 그게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었어요. '부자가 없으면 안 되는 미켈란젤로, 넌 그게 좋은 거냐?' 자문했을 때, 심지어 좋아하지도 않는 거예요.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었는데요

나는 독자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 스스로 무엇도 잉태하지 못하는 그런 절름발이 같은 부류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냉정히 돌아보니 심지어 그럴 능력도 별로 없더라 이거죠. 게다가 시장과 혈통, 건축가들의 역사를 돌아보며 앞으로 흘러갈 방향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꿈꿔왔던 대가의 시대는 절대 열리지 않을 거라는 분명한 사실에 직면했죠. 그때 결론은 딱 하나예요. '이렇게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람이 더는 할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그때부터 일을 안 했어요. 재미도 없고 지겹더라고요.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잖아요. '내가 너랑은 죽어도 못 살겠다'이런 순간이요. 그러다가 2009년 우연히 서울 문화의 밤 '일일건축설계사무실' 행사에 나가게 됐어요.

무슨 생각으로 자원했나요

길에서 사람들 만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곳에 건축가란 사람 다섯 명이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와서는 묻는다는 게 "정화조도 고칠 줄 아십니까?"인 거예요. "집을 가장 싸게 짓는 방법은 뭔가요?"도 있었고요. 서로 '저 질문을 나한테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하며 안도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제게 와서는, 하수도를 물어보는 거예요, 하하.

근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이 건축가에게 궁금한 건 우리가 생각하는 '구축'이란 의미의 건축이 아니라 사실은 그들의 일상과 매우 가깝고, 그들을 괴롭게 하는 '집'에 관한 것들인 거예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거였죠.

거기서부터 소장님의 집수리 이력이 시작된 거군요.

그곳에 찾아온 상담자 한 분과 연이 닿아 수리한 집이 서초동 주택이에요. 단순히 재미있을 거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진짜로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설계만 했기 때문에 건물에 문제가 생겨도 '아, 그거 시공팀이 잘못해서…'처럼 모면할 거리가 많았어요. 근데 서초동 집수리 작업은 서슬이 퍼런 검으로 승부를 겨루는 거더라고요. 자칫하면 내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인 거죠. 근데 저는 오랫동안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온 사람이잖아요. 건축가라는 영토도 내팽개쳤고요. 그래서 각오를 하고 작업을 시작했죠. 집 상태를 보고는 바로 후회했지만요, 하하.

설계에서 현장의 집수리로 넘어가니 무엇이 달라지던가요

너무나 재미있었죠. 뭐, 아주 살맛이 나더라고요. 건축가는 설계 변경하려면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요. 그리고 설계하고 나면 할 일이 끝나서 건물이 지어지는 맨 마지막까지 관여하지도 못해요. 낳은 애를 키울 수는 없는 거죠. 근데 집수리는 달랐어요. 나는 집이 끝날 때까지 설계할 수 있어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 이거 바꿔야겠는데, 바꾸자!" 하면 그냥 바꾸면 돼요.

무회건축의 시공팀이 따로 있어요?

지금 우리 직원들이 벽돌 쌓고 용접도 해요. 건축과 나온 애들도 다 현장에서 벽돌 나르고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구조나 재료로는 설계 안 해요. 해봤자 못 만드니까요. 벽돌을 쌓는 사람이 회사를 그만둔다, 그러면 설계를 바꿔요. 솜씨 좋은 목수 한 분이 팀에 들어오면, '자, 나무 쓰자!' 하는 거예요.

건축주는 그런 재료나 구조 변경에 쉽게 동의하나요

저는 의외로 고집이 없어요. 가령, 배가 고파서 스파게티를 만들어야 하는데 마늘이 없다면 저는 메뉴를 바꿔요. 왜냐면 배고픈 것만 해결하면 되니까. 설계할 때 그게 어떤 재료든 어떤 디자인이든 건축주가 꾸는 꿈, 그 욕망을 해결해주면 되는 거예요. 건축주는 저에게 '그곳으로 저를 좀 데려다 주세요'하고 맡기는 거거든요. 근데 마늘이 없다? 그러면 딴 길로 가면 돼요.

큰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처럼 보여요

무엇보다 건축주를 좋아해야 해요. 좋은 와인을 먹을 때, '이 와인 내 친구가 참 좋아하는데,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경험 다들 있잖아요. 그리고 내가 그걸 챙겨갔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죠. 그게 행복이니까. 집도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해야지 좋은 집을 만들어주고 싶은 거고, 그걸 만들어줬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건축주와 늘 연애하듯 만나요. 그러면 서로 행복해지죠.

특별히 그런 관계를 쌓는 비결이 있나요

서로 열심히 자기주장을 해요. 애써서 맞추고 배려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충분하게 하고 그 정서적 흐름을 이해하는 거죠. 건축주에게 난 충분히 내 의사를 말하고 이야기해요.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요. 그래도 메뉴는 많으니까 짬뽕 없으면 짜장면 먹으면 되는 거잖아요. 꼭 벽돌이 아니어도 되고, 나무가 아니어도 되는 거죠. 그거 아니더라도 건축주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으니까, 재료 하나 바꿨다고 결핍되는 건 아닌 거죠.

그렇게 열심히 자기주장을 하다 보면 속내를 다 알게 되겠어요

깊은 얘기를 많이 알게 되죠. 가족 관계와 가족사도 자연스레 알게 되고요. 그런 게 공간에 묻어 나오는 건 당연해요. 내가 바라는 집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집을 만드는 거니까요.

그들의 욕구는 어떻게 파악하나요

가령 어떤 사람이 '안방 창을 크게 내주세요' 라고 말했다면, 건축가는 '이 사람은 왜 이런 걸 원할까'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평생 햇볕이 안 드는 지하실에서만 살았을 수도 있고, 과거의 상처나 우울한 기억이 있어 빛이라는 밝은 것으로 그걸 만회하려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햇볕이 너무 많이 들면 그토록 아끼는 가구가 다 바래고 망가져 버리는 걸 몰라요. 자신의 결핍을 만회하려는 생각만 있지 그 결과로 일어나는 새로운 상실은 모르는 거예요.

건축가는 창이 크지 않아도 그 결핍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주는 게 맞지, 무조건 창을 크게 해주는 건 아닌 거예요. 밤새 치통을 앓은 환자가 '이거 빼주세요!'했다고 그걸 빼버리는 치과의사가 어디 있나요.

그들 말 속에 숨은 뜻을 파악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어요

많은 건축주가 꿈이 있지만 꿈을 잘 말할 줄 몰라요. 그저 '심플하게', '모던하게'같이 언어적 정의가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하기도 해요. 그들의 의식 속에 있는,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는 꿈을 해독하는 게 건축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거죠? 당신이 말하는 큰 창은?' 이렇게 결과로 내어놓는 것, 그가 가장 가려워했던 부분을 찾아내는 게 건축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에요.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제대로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들려요

2009년 집수리를 시작한 이래로 제 관심은 오로지 집과 사람이에요. 아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누가 누구랑 만나게 하고 누구와 마주치지 않게 할 것인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데 어떻게 모으고 흩을 건가, 재료는 어떻게 만질 것인가 하는 데 있어요.

지금 이야기하는 장소인 이 집만 해도 1년을 설계했어요. 오래 하면 저만 손해인데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왜냐면 그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연애하듯이 여러 제안을 던져요. '이거 어때? 저거 어때'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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