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의 문턱은 왜 닳았을까

2014. 8. 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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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많은 손님들이 오가는 활기찬 공간과 가족들을 위해 조용한 방이 살갑게 공존하는 용인 기흥구의 성아네 집

건축가 성상우(44)씨는 '문턱이 닳는 집'을 짓는다. '문턱이 없는 집'도 아니요, '문턱이 높은 집'도 아니다. 사생활을 보호해줄 문턱은 분명히 있으되 끊임없이 손님을 불러 모으는 집. 손님이 많이 와도 개인 생활이 가능한 집. '푹 퍼져 쉬는 곳'만이 아닌 '기능'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가득 찬 집. 지난 3년 동안 이러한 화두로 지은 단독주택만 경기 파주·안양, 강원도 춘천·강촌 등에 6채다.

그중 가장 최근에 완공된 집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의 '성아네 집'이다. 땅콩집을 포함해 다양한 디자인의 주택이 가득한 이 동네에서도 성아네 집은 단연 눈에 띈다. 건물 전면을 장식한 국산 낙엽송의 화려한 색감, 육각 면의 특이한 건물 모양 때문에 우선 그러하다. 지난 22일 찾아간 집은 북향의 필지 안에서 남쪽으로 살짝 돌아앉아 온몸으로 햇볕을 받고 있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아는 사이다. 얼마 전까지 성상우 건축가가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을 모아 <명심보감>을 가르쳤는데 그곳에 성아 남매가 왔다. 당시만 해도 성아네는 아파트에 살았다. 전세 계약 만기 날짜가 도래했고,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6천만원 올려달라고 했다며 한숨 쉬는 공상훈(42)·주윤정(39) 부부에게 성상우 건축가가 '집 짓기'를 권했다. 함께 땅을 물색하다 북향에 반듯하지 않은 땅 모양 덕분에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왔던 현재의 필지를 구입했다.

삼각형 둘째 방 다락놀이방 등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 빼곡좁은 공간을 반층씩6개 높이로 촘촘히 구성해담당 공무원도 놀라

건축주 가족의 예산 상황을 잘 알았기에 건축가는 굳이 자신이 추구하는 '문턱이 닿는 집'을 권하지 않았다. 평범한 2층집 시안을 포함해 4개의 조감도를 내밀었다. 부부는 예상외로 '문턱이 닳는 집'을 선택했다. 육각형으로 각지게 집을 짓고 삼각형으로 나선형 계단을 만들어 2층을 반층씩 쪼개는 특이한 방식으로 집을 짓자면 건축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건축비를 2억5천만원 이하로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성공이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상의해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심을 둔 부분은 세가지다. 두 아이가 친구들과 맘껏 놀면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숨은 공간'이 많은 집, 성아 엄마 주윤정씨가 동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확보된 집, 그리고 무엇보다 햇볕이 잘 드는 밝은 집이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을 불어넣은 집을 지어달라는 '어려운 주문'도 있었다.

이 집의 문턱을 닳게 할 이들은 두 부류일 터였다. 윤정씨에게 수학을 배우기 위해 이 집을 찾는 아이들과 부모들, 그리고 두 자녀의 친구들.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방이 수학을 가르치는 방이다. 현관 왼쪽에는 공용 화장실이 있다. 수학을 배우기 위해 집을 찾은 이들은 해당 '작업실'과 화장실만을 이용하면 된다. 위층의 '프라이버시'는 고스란히 지켜진다.

나머지 공간은 집 한가운데 있는 삼각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철저히 쪼갰다. 고도 제한으로 2층집만 지을 수 있는 지역 특성을 고려해 최대한 공간을 확보할 계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미'를 위해서였다. 현관에 들어서면 계단에 이르기 전 왼쪽이 화장실, 오른쪽이 거실이다. 반층을 올라가면 수학 배우는 방, 그 오른쪽으로는 부엌이다. 거기서 반층을 다시 올라가면 정면에 세면대와 거울이 보인다. 세면대 왼쪽에는 변기만 있는 화장실, 오른쪽에는 세탁실과 목욕탕이 분리되어 있다.

일곱살 순형이의 '삼각형 방'과 천장이 낮은 '다락 놀이방'을 지나 또 반층을 올라가면 누나인 성아의 방이다. 동생을 '차단'하기 위해 벌써부터 방문에 '들어오지 마시오'란 팻말이 붙어 있다. 누나 방과 '다락 놀이방'은 미끄럼틀로 이어져 있다. 미끄럼틀을 타고 반층 내려와 동생과 만나 논다. "아이 친구들이 자기 집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요." 성아네 집에 오면 친구들이 좀처럼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를 않는다며 주씨가 덧붙였다. 집을 찾은 날에도 순형이의 친구가 와서 하루 종일 놀았다.

거기서 반층을 또 올라가면 드디어 안방이 나온다. 안방이지만 어른이 간신히 설 수 있는 높이의 다락방이다. 침대와, 침대에 누워서 바라보면 산이 내려다보이는 창문만 있다. 나머지 다락 공간은 '아빠의 동굴'이다. 이 집의 유일한 텔레비전이 이곳에 있다. 남자를 위한 동굴인가 했는데 아이들이 만화를 더 자주 본다고 한다. 다락 공간을 살리니 실평수가 165㎡(50평)에 달했다.

그리하여 성아와 순형이는 "우리집은 6층집"이라 말한다. "건축 허가를 받을 때도 담당 공무원이 당혹스러워했을 정도"로 공간 활용 상상력이 뛰어나다. 집을 육각형으로 지어 비스듬히 땅에 앉히니 등을 맞댄 필지의 집과 집 사이로 햇볕도 듬뿍 받을 수 있게 됐다. 정원도 여러 쪽이 생겨 좁은 쪽에는 텃밭을 일구고 넓은 쪽에는 에어바운스 수영장을 만들었다. 부엌과 이어진 다른 쪽 정원은 가족이나 손님들과 바비큐를 하며 즐기는 공간이다.

이 유쾌한 집 구상은 건축가의 아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상우 건축가의 애초 전공은 경제학이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 건축학 전공을 학부부터 다시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건축학부에서 공부하던 중 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어렵게 공부를 이어간 그에게 외환위기가 닥친 90년대 말은 혹독한 시간이었다. 공황장애가 발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몇 년이 흘러갔다. 오랜 시간 성상우 건축가는 집 안에 머물며 스케치를 하고 집에 대해 고민했다. "집에 갇혀있다 보니 집이라는 공간에 더 예민해졌다"고 한다. 한학을 공부하며 마음을 다잡아갔고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치며 집 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집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작업도 하며 활기가 있는 삶을 꿈꿨다. '문턱이 닳는 집'은 그런 역사 속에 구상됐다.

그는 경기도 판교의 타운하우스 '월든 힐스' 작업을 통해서도 이러한 철학을 구현했다. 설계는 야마모토 리켄 요코하마 국립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가 맡았고 그는 야마모토리켄설계공장 한국지부장을 맡아 커뮤니티 기능을 회복한 공동주택 프로젝트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했다. 3~4층짜리 단독주택의 군집 형태인 이 타운하우스는 모든 주택의 2층 공간을 전면 유리의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공용 데크를 통해 이웃과 연결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문턱이 닳는 집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 집에서 사는 가족이 가난하더라도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경제 활동도 하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거죠. 앞으로도 건축주와 친구가 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에게 맞는 좋은 집을 지어나가고 싶습니다." 건축가 성상우의 말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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