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한옥에서의 '삶'

2013. 11. 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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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누비며 젊은 시적을 보낸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가 정착한 계동의 아담한 한옥. 100년의 시간을 지탱한 서까래와 비밀스러운 정원을 품고 있는 한옥에서의 삶이 선사한 은밀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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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가 있는 능소헌 뒷마당. 담벽 위의 작은 공간도 놓치지 않고 야생화를 심고 장독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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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둔 플라스틱 체어는 캘리포니아에서 구입한 미국 아웃도어 가구 회사의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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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태오 홈(Teo Home)'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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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100년 역사를 함께한 우아하게 뻗은 소나무를 품고 있는 청송재의 고즈넉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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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한구석에 자리한 '남편나무'. 예부터 가장의 기를 세워주는 나무라 불렸으며 공기정화 작용이 뛰어나다. 앞에 있는 토기는 신석기시대 것으로 그 아래 흰색 자갈을 깔아 더 분위기 있게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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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재 뒤편에 숨겨진 작은 꽃담.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의 철제 의자가 의외로 한국적인 꽃담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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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유리문으로 바라본 미팅 룸. 테이블 위의 도자기는 그가 태국 공장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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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의 취향과 감각,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는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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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 대신 통유리를 끼워 넣은 창문을 통해 어디서나 정원을 바라볼 수 있다.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작은 정원을 품고 있는 'ㅁ'자 모양의 단정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가 2년 전 마련한 계동의 보금자리. 그의 탁월한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 '모던 한옥'이라고 입소문 난 곳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회사에서 일했던 코스모폴리탄인 그에게 한옥은 언제고 살아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처음 여기에 방문했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이 집의 오랜 주인이었던 건축가 김영섭이 해외 지도교수로 떠나게 되면서 새로운 주인이 될 기회를 허락받은 그. 한옥의 틀은 그대로 남기되, 내부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꾸미고자 했다. "조선시대 후기, 지금의 아파트 개념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보급형 한옥이에요.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인의 삶에 맞게 고쳐서 한옥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의 집은 '능소헌'과 '청송재' 두 채의 아담한 고택이 이어져 있는 형태로 먼저 능소헌은 사무실 겸 생활공간으로 쓰고 있다. 줄리언 오피의 그림이 걸려 있는 입구를 지나면 한스 베그너의 소파와 모던한 벽난로가 놓인 응접실이 있고, 안쪽으로 침실과 사무실이 이어진다. 창문의 창호지를 떼고 통유리를 넣어 채광을 높인 덕분에 오후가 되면 실내는 햇살로 가득하다. 돌계단을 내려가면 닿는 청송재는 미국을 오가는 그의 부모님이 머무르거나 이따금 외국인 손님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쓰인다.

마당을 향하도록 배치한 거실 가구들부터 직접 바느질해 만든 이불보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100년의 시간을 지탱한 서까래 아래 북유럽 가구들과 오리엔탈풍의 오브제들이 어우러진 이채로운 풍경. 이 모든 것을 실현시킨 그의 심미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 아이들과 취미나 관심사가 달랐어요. 처음에는 세계사를 좋아했는데 자연스레 역사의 중요한 파트인 예술에 흥미를 느끼게 됐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의 영향도 컸어요. 주말이면 어머니와 함께 집안 가구 배치를 바꿔보는 게 일상이었어요." 사무실 창문에서 보이는 기와지붕 위에 얹혀 있는 해태 모양의 잡상은 그가 중학교 시절 인사동에서 샀던 것. 이후 줄곧 그를 따라 다니다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이곳에서 그는 '살면 살수록 더 좋아지는' 한옥의 매력을 실감하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걱정하는 난방이나 소음 등의 문제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경험하고 누리게 된 즐거움이 훨씬 많다.

그중 가장 큰 행복은 집 안 어디서든 정원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 '능소헌', '청송재'라는 이름은 모두 이곳에 있던 나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한옥마다 품고 있는 2개의 중전을 포함해 구석구석 미로처럼 자리한 정원이 8개나 된다. 능소헌에 심어 있던 능소화 나무는 독성이 염려돼(능소화 꽃을 만지고 눈을 비빌 경우 실명의 위험도 있다) 베어냈고 대신 1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도록 단장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매화, 라일락, 작약, 재스민 등의 꽃이 순차적으로 피어나고 진다. 청송재에는 이 집이 생겼을 때부터 함께 한 소나무가 수호신처럼 굳건히 서 있다. 처마 끝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위치에 절묘히 놓인 물확도 눈길을 끈다. "한옥에서는 사계절을 다 즐길 수 있어요.

여름 장마철에 비 구경하는 것도 좋았고, 지난겨울 눈 내리는 풍경도 아주 예뻤죠. 이사 온 뒤 캐주얼한 디너 파티를 많이 했는데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예전 양옥집에서도 파티를 하긴 했지만 여기만큼 운치가 있진 않았어요." 지금까지 자신이 거쳐간 공간들은 선반에 꽂혀 있던 책들까지 세세히 기억한다는 그. 미국 유학시절이나 유럽에서 일하며 혼자 살았던 집들과 그곳에서 겪은 특별한 경험들을 공간에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곤 한다. "암스테르담에 살 때 반대편 집 데크가 굉장히 가까이 붙어 있었어요. 거기 화분과 식물들이 많았는데 참 보기 좋더라고요.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집을 작업할 때도 발코니를 정원으로 많이 꾸며요.

폴딩 도어를 오픈해서 가든 파티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단순히 예쁜 인테리어는 저보다 훨씬 잘하는 분이 많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사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그는 한 집에서 2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다. 클라이언트의 집을 통해서는 그가 해보고 싶은 것을 다 구현할 수 없기에, 돈이 모이면 새 집을 구하거나 인테리어를 바꾸는 게 포트폴리오를 쌓는 또 다른 과정이다. 하지만 능소헌과 청송재에서는 앞으로도 여러 번의 계절을 더 보내게 될 것 같다. "이 집은 아직 다 '살지 않은' 것 같아요. 경험해 보지 못한 게 아직도 많이 남은 기분이에요. 가구나 소품의 위치를 바꿨을 때 서로 어우러져 보이는 것이 다른데 특히 한옥에서는 조금만 변화를 줘도 느낌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많은 질문을 얻으면서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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