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넉넉한 한옥

박명주 2012. 11. 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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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언덕배기에 자연의 풍경과 정서를 안은 한옥 성연재 이야기

아파트 전셋값을 따라가느라 허덕이느니 차라리 작고 오래된 주택을 고쳐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넓은 아파트를 버리고 작은 한옥으로 이사한 이상헌, 한지수 부부. 삼청동 언덕배기에 자연의 풍경과 정서를 안은 한옥 성연재 이야기.

↑ 한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에 마련한 아기자기한 작은 꽃밭을 만날 수 있다.삶에 불편함이 없는 105.8m² (32평형) 아파트와 맞바꾼 36.26m²(11평형)의 작은 한옥. 한신대학교 이상헌 교수와 케이블 방송 투니버스의 국장을 맡고 있는 아내 한지수 씨의 새로운 보금자리다. 오래전부터 북촌생활을 꿈꿨던 부부는 그동안 북촌문화운동에 참여하며 한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왔다. 그러던 차 지난해 지인에게서 이 집을 소개받았고, 한옥의 기둥까지 기울어져 있는 집에 그대로 살 수 없어 레노베이션을 결정했다.

1 레이지 룸(Lazy Room)이라고 이름 붙인 서재 겸 휴식의 공간. 평상에 앉아 책을 보며 차를 마시거나 낮잠을 자며 빈둥거릴 수 있는 편안한 곳이다. 2 꼭 필요한 가구만 배치한 소박한 안방. 한지를 통해 은은하게 빛이 들어와 공간이 보다 아늑해 보인다. 3 마당이 시원하게 보이는 안방 창문."집값이 오르기만을 기대하며 사는 건조한 생활이 싫었고 불필요한 짐을 이고 지고 사는 것에 염증을 느껴 그동안 꿈꾸어왔던 한옥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집을 설계하고 공사를 마치기까지 비용은 1억원 정도 들었어요. 그 돈 들여 집을 고쳐야 하느냐며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평화로운 작은 한옥 집에서 위안을 받으며 살고 있는 지금의 삶에서 저희 부부는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그러나 꿈꿔왔던 한옥으로 이사오기까지는 그리 녹록치 않았다. 집을 고치는데 들인 시간과 비용, 살림살이를 3분의 1로 줄이는 것과 주차 문제, 장보기 등 일상의 소소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보다 휠씬 작은 평수여서 꼭 필요한 살림살이를 고르는 것부터가 고민이었어요. 가지고 있던 가구와 가전제품은 대부분 버렸고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 집 안에 들여 주변을 정리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1 집의 가운데 부엌을 두어 안방, 대청, 부엌, 방이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2 커다란 들창은 오후의 따스한 빛을 담으며 멀리 인왕산의 모습까지 담아 풍요로운 집을 만든다. 3 부엌을 집의 중심으로 옮기고 침실과 레이지 룸을 양 옆으로 배치해 동선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4 레이지 룸의 자투리 벽을 활용해 책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주차 문제가 해결되었다. 대신 장보기가 힘들어지자 한 달에 두 번씩 지방에서 올라오는 채소와 과일, 나물 등 산지직송 서비스를 신청했다."어떤 것이 상자 안에 들어 있는지 몰라요. 두부, 배추, 나물 등 그 주에 재배한 것들을 택배로 부쳐주는데, 예를 들어 나물을 캔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고 그곳의 에피소드와 간단한 레시피도 손글씨로 적어주신답니다. 요리해서 먹을 때도 재배한 분들을 생각하며 알뜰히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먹고 있어요. 그로 인해 저희 부부의 대화거리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왼쪽 천창을 통해 들어온 자연의 빛이 집을 환하게 만들어주며 밤에는 하늘을 바라보며 달이 기우는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오른쪽 외부 공간에서의 정리 정돈이 어렵다는 불편함을 보완해 마당에 면한 안방 벽 일부를 안으로 들여 밖으로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합리적인 동선을 고려한 레노베이션이 집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으로 큰 한옥을 반으로 나눠 두 가구가 살고 있는 구조를 띠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집과 맞닿아 있는 벽의 소음 문제, 기울어져 있는 기둥을 잡는 것 등의 기본적인 선결 과제를 가득 안고 있었던 터 라 한옥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고 있는 디자인 회사가 필요했다. 북촌에서 40여채의 한옥을 짓고 고쳐온 구가건축의 조정구 소장은 이 집의 미션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낙점됐다."기존 공간은 'ㄱ'자형의 도시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북, 동, 남쪽은 이웃 집과 면하고 있어 창을 내기 어려웠고, 특히 집의 코너에 자리한 안방은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둡고 습했어요. 부엌과 대청은 소통하지 않는 구조라 사용하기 불편했고 대청 옆으로는 두 개의 작은 방이 연달아 붙어 있어 내부 동선이 끊어지는 단점이 있었죠. 유일하게 외부와 통해 있는 공간에는 보일러실이 가로막고 있어 답답한 구조였습니다."

↑마당에는 길목을 따라 디딤돌을 깔았다.레노베이션의 가장 큰 숙제는 부엌과 거실과의 관계, 내부로 이어지는 동선으로 현재 우리의 생활 모습을 기존 한옥에 녹여내는 것이었다. 그 해답은 부엌에서 찾았다. 기존 한옥에서는 부엌이 독립적으로 놓여 있었는데, 이를 집의 중심으로 옮기면서 대청과 긴밀하게 오갈 수 있도록 계획했고, 부엌을 비행기내의 주방, '갤리(Galley)'의 위치에서 착안해 안방-대청-부엌-방으로 동선과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안방을 기존의 부엌 자리에 배치해 방에서도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고 마당 안쪽으로 전체적으로 빛과 바람이 잘 통하도록 계획해 밝고 쾌적한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에 주력했다. 남쪽 건물이 높아 어두웠던 대청 자리에 천창을 내어 햇빛이 대청에 들도록 했으며 보일러실로 막혀 있던 공간에는 커다란 창을 가진 서재 일명 '레이지 룸(Lazy Room)'을 두어 풍경을 담고 겨울에도 서향빛이 깊숙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계획했다. "들창을 열면 인왕산이 보이는 레이지 룸은 햇살을 받으며 쉬고 책을 보며 낮잠도 잘 수 있는 편안한 방이에요. 하늘로 난 창을 통해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달도 볼 수 있죠. 집에 돌아오면 위안을 받는 느낌이고 집에 있는 시간이 참 평화롭고 좋아요. 우리 집에서 가장 예쁜 공간은 침실인데 한지를 통해 은은하게 빛이 들어와 아늑하고 포근해서 잠도 잘 와요."작은 집의 미덕으로 더욱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부부의 성연재. 크기, 넓이에 속박되지 않은 채 가치로운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로망을 담은 집이 아닐까 싶다.

디자인 및 시공: 구가건축사무소 (02-3789-3372)에디터: 박명주포토그래퍼: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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