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의 감성 레서피

2015. 4. 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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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화가의 작업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작품과 어우러진 그녀는 봄날의 수채화 같다.

봄비가 내리는 어느 오후, 배우 김민서를 만났다.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매치한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그녀를 만난 곳은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서양화의 대가 권녕호 화백의 작업실.기자가 그곳을 찾았을 때 그녀는 작업실에 놓인 작품을 보며 권 화백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배우 활동을 하면서 짬짬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SNS에는 종종 직접 그린 작품 사진이 올라온다. 미술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그림 그리기는 그녀의 일상에 활력소가 되는 셈이다.

"선생님! 이 작품은 무엇을 형상화하신 거예요? 저는 고래 꼬리 같다고 생각했어요." "붓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해맑게 웃으며 감상을 쏟아내는 모습이 순수한 아이 같다.

그녀는 최근 아트 전문 채널 skyA&C에서 방영 중인 <아틀리에 스토리> 시즌 2의 새 MC를 맡게 됐다. 예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 그녀가 직접 인터뷰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MBC 드라마 <장밋빛 연인들>에서 단아한 이미지의 첼리스트로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아트 전문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와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권 화백과 함께 작품을 둘러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먼저 싱그러운 미소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 덕분에 작업실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권 화백의 작품이 가득 찬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녀와 마주 앉았다.

"가끔씩 취미로 그린 그림을 SNS에 올렸는데 그게 알음알음으로 알려지면서 <아틀리에 스토리>의 MC 자리를 제안받았어요. 아직 많이 부족해서 작가님과 제작진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작품으로만 만나던 유명 작가들의 작업실도 보고 직접 인터뷰도 할 수 있게 되니 많이 설레요."

그녀는 초등학생 때, 예술중학교 입시를 목표로 미술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했던 6학년생 아이는 학원에 다닌 지 1~2년 만에 붓을 내려놨다. '그림이 정말 내 적성에 맞는 걸까?'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 때문이었다. 대학에선 연극영화학을 전공했고 현재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림 그리는 일은 여전히 그녀의 취미 중 하나로 남았다. 가족 중에 미술계 인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짬이 날 때마다 화실을 찾는다고 했다. 그녀가 SNS에 공개한 유화 작품에는 그녀의 반려견 피파가 등장한다. 피파는 그녀와 일상을 공유하는 둘도 없는 친구다.

"지인들과도 미술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요. 다들 전문가가 아니니까 제 작품을 보여주는 것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편했죠. 작품을 보여주면 '와! 민서야, 너 그림 잘 그리는구나!' 하고 칭찬만 해주니까요. 취미로만 그림을 그리는 제가 미술에 대해 감히 이야기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이번 MC 자리가 부담스럽기도 해요. 부족한 점은 많겠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대중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부분을 직접 작가님께 여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그녀는 이미 예술의전당에서 자신이 그린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다. '2012 서울컨템포러리 아트스타페스티발(SCAF)'의 특별전 <스타 아트의 오감>전에 공식 초청됐던 것. 그녀 외에 하정우, 지진희, 김영호, 김영애 등의 스타들도 함께 참여했다. 열흘간 열린 이 특별전에 김민서는 자화상 세 점을 출품했다.

"제 화보를 보면서 유화 작품을 그렸어요. 빨간색 코트를 입은 강렬한 콘셉트의 사진이었죠. 생각해보면, 그때 제 마음이 굉장히 여리고 연약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사진을 골라 제 모습을 그린 것이죠. '나를 더 사랑하고 싶다' ' 내 얼굴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 같아요."

자화상을 그릴 무렵은 그녀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왕의 사랑을 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중전 '보경' 역을 연기할 무렵이었다. 촬영 일정은 빠듯했지만 작품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화실을 찾아 그림을 그렸다. 극 중 임금 역을 맡은 김수현(이훤 역)은 아내인 김민서(윤보경 역)를 두고 어릴 적 첫사랑인 한가인(허연우 역)을 사랑한다. 당시 김민서가 연기한 중전은 두 남녀의 러브라인에 훼방을 놓는 역할임에도 오히려 "왕이 너무 했어. 중전도 좀 사랑해주지" 하는 동정표를 받기도 했다.

"공감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이해한 '보경'이라는 캐릭터는 참 여린 여자였어요. 앙칼진 고양이를 떠올려보세요. 상대방을 할퀴고 털을 바싹 세우죠. 그런데 고양이가 그렇게 하는 건 '겁이 많기 때문'이에요. 보경이가 그토록 독한 말을 내뿜는 것도 결국 자신이 아파서 그런 거죠. 보경이가 점점 독해질수록 제 안은 점점 더 여려지는 걸 느꼈어요.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독하게 뿌리치는 것도 힘들었죠.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감정을 떨쳐내는 게 어려웠어요."

그녀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점점 더 애착이 갔다고 했다. 연약해진 그녀 마음이 그림을 그리며 조금씩 치유된 것이다. 당초 한 점만 전시하려고 했던 것을 아예 시리즈로 구성했다. 전시가 끝난 뒤 지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때는 캐릭터에 한번 몰입하면 빠져 나오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당시에는 잘 모르는데 작품이 끝나고 나서 돌아보면 깨닫게 되죠. 요즘 연기하는 '수련'이는 그렇게 어둡고 독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아요.(웃음)"

실제로 그녀는 수련이와 닮은 구석이 많다.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란 수련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정략결혼을 하게 되지만, 혼인 서약을 하는 상황에서 드레스를 입은 채 뛰쳐나와 버릴 정도로 대범한 성격이다. 평소에는 단아하고 청순하게만 보이는 김민서는 자신에게도 수련이처럼 대범하고 도전적인 면이 있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모델 한번 해볼래?'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당시 저는 이미 잡지 모델로 간간이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이미 모델인데요?' 하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이건 네가 아는 그런 모델이 아니라 예술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진짜 모델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작업실을 보여주시겠대요. 호기심에 그분을 따라갔죠. 그런데 거기에 누드화를 그리는 분들이 모여 있었고, 저 말고도 제안을 받은 후보자들이 와 있더라고요. 마치 모델을 뽑기 위한 오디션 자리처럼요. 저를 데려가신 분이 이전에 작업한 그림들을 보여주셨어요. '너무 야한 것 같은데요?' 했더니 '진짜 순수 미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거다. 오히려 감추는 게 더 외설적인 거다'라고 하셨어요. 저한테 '예술이란 이런 것'이라고 굉장히 어필하셨어요. 한때 미술학도를 꿈꾼 저로서는 상당히 솔깃했죠. 실제로 모델을 했냐고요?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명함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한테 엄청 혼났죠, 뭐.(웃음)"

친한 동료 여배우와 단둘이 유럽 여행도 다녀왔다. 그녀의 취향에 맞춘 '미술관 투어'였다. 그때 직접 관람한 여러 작품을 통해 받은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해요. 파리에 갔을 때 고흐 생가가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일부러 찾아갔죠.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가 정말 운치 있었어요. 고흐의 작품과 그 드라마 같은 생애가 어우러지니 감동이 배가됐어요. 샤갈과 모네, 르누아르의 작품도 좋아해요. 니스에 갔을 땐 샤갈 미술관에도 다녀왔는데, 참 좋더라고요."

요즘은 드라마 촬영 중이라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화실을 다니며 꾸준히 그림 작업을 하진 못한다. 그래도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진 가죽 공방에 다니며 가방, 여권지갑, 키홀더 등 각종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는 언니가 가죽 공방을 내서 그 공방에 다닌 지 2~3년 정도 됐어요. 작품이라고 하기엔 소박하지만 이니셜을 박아 지인들에게 선물해주는 재미가 쏠쏠해요."

섬세하면서도 도전적인 그녀는 당분간 드라마와 MC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작품이 끝나면 또 어떤 일을 시도해볼지 고민 중이란다. 개인전을 열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가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 한 폭의 그림이 된 것만 같았다.

취재_정희순 기자 | 사진_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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