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두번째 함께 살기

2014. 12. 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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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라이프

가족별 독립성과 한국식 가족문화를 접목한 노바건축 세대합가 단독주택 세가지 사례

나이 들면 누구와 살까2회 '한지붕 두가족' 세대합가형 단독주택

통계청 '2014년 사회조사'에서 보면 부모와 함께 산다는 가구주의 비율은 31.4%로 한국 사회 가족들의 세대 합가 비율은 급히 떨어지고 있다.(2012년 33.7%)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쓴 책 <아파트 공화국>에선 "한국의 전통적인 다세대 동거가 깨진 데에는 경제활동으로 인한 잦은 이주, 불안한 노후 비용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가족을 전제로 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도 분가에 한몫했던 것"으로 분석한다. 최근 단독주택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세대 합가를 시도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그 모양은 전통적인 자식과 부모의 동거와는 좀 다르다. 지난 2~3년 동안 여러 건의 세대 합가형 단독주택을 지어온 노바건축 강승희 소장은 "주로 경제연령과 생활양식이 비슷한 형제나 동서가 함께 집을 짓고 공유하는 평등한 집짓기가 많다. 주택에서 부모의 공간은 잠시 들르는 방으로 꾸며지는 등 부모-자식 동거는 일시적인 형태가 늘었다"고 했다.

집을 통해 가족의 변화를 볼 수 있을까? 노바건축의 3가지 사례를 통해 단독주택에서의 세대 합가 형태를 둘러봤다.

안방이 두개인 '향여재'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에 있는 향여재는 안방이 2개다. '고향으로 돌아오다'는 뜻의 이 집은 원연희(48)씨 부부가 결혼한 큰딸 부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작은딸과 함께 살기 위해 지은 곳이다.

원래 두 딸은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었다. 올해 6월 집이 지어지면서 큰딸 임효진(27)씨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둘째 딸 예진(25)씨가 함께 살게 됐고, 원연희씨 가족의 두번째 함께 살기가 시작됐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면 한국의 가족 문화와 미국의 독립심을 함께 물려주고 싶다"는 큰사위 크리스토퍼 제임스 브록씨의 제안으로 합가가 이뤄졌다고 했다. 미국인 브록씨는 한국에 있는 대학에서 가르친다.

멀리서 보면 높은 지붕이 낮은 지붕을 품은 듯 보이는 향여재는 142.25㎡ 넓이의 건물 현관을 들어서면 동쪽 끝엔 원연희씨 부부 안방이, 서쪽 끝엔 큰딸 효진씨네 안방이 있다. 결혼한 딸과 부모의 방은 나란히 남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뿐이다. 현관문은 하나지만 큰딸 부부는 침실 창을 통해서도 드나들수 있도록 설계했다. 큰딸 부부는 침실문 바로 옆 계단을 통해 서재와 다실이 있는 다락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두 안방 사이엔 거실과 식당이 있다. 거실도 두 부분으로 나뉜다. 가운데 1.2m 높이 책장과 티브이장이 등을 맞대고 있어 티브이를 보지 않는 가족은 책장 쪽에, 티브이를 보는 가족은 소파에 앉는다. 새로 합친 가족들의 일상은 어릴 때완 달랐다. 딸들은 생활비도 나눠 내고 가사일도 분담하지만 생활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했다.

"딸들이 경제적인 기반을 쌓으면 마당을 함께 쓰는 새집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원씨는 "다 자란 아이들 삶을 간섭해서도 안 되고 부모·자식이 함께 나눌 것이 없는 삶도 싫으니 중간 지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여러 해 해왔다. 우리 가족의 최소한의 리추얼과 일상만을 공유하자는 이 집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했다.

건축주만 4명인 '여인재'

지난 8월 집들이를 마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있는 '여인재'는 오빠 부부와 여동생 부부가 함께 지은 집이다. 밖에서 보면 거실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이 1, 2층 합쳐 각기 103.61㎡씩 지어진 건축물을 똑같이 나눈 쌍둥이집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서로 엑스자로 얽혀 있다. 오빠네는 1층은 왼쪽에 있는 거실과 주방을, 2층은 오른쪽 집을 쓴다. 동생네는 1층은 오른쪽, 2층은 왼쪽 집이다. 각자 계단을 지나 상대방 거실의 2층으로 올라가면 부부 침실과 두 아이들의 방이 있다. '크로스 땅콩집' 형태로 집을 지은 이유는 형과 아우네가 면적뿐 아니라 향도 평등하게 나누길 원해서였다고 한다. 강승희 소장은 "기존 땅콩집에선 어느 한 집이 좋은 전망을 취하기가 쉬운데 서로 얽히면 360도 전망을 두 집이 모두 누릴 수 있다. 대신 아이들이 우리집 2층에서 뛰어도 가족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오빠는 1층 거실과 주방에선 서쪽, 2층에선 동쪽을 본다. 동생은 그 반대다. 1층 거실과 2층 두 아이 방은 두 집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다.

오빠 이상범(33)씨는 "두 집이 모두 아들 둘씩을 키우며 비슷한 생활을 하니까 용기 내서 합쳤다"며 "건축 기간 동안 두 가족 8명이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면서 같이 사는 연습을 하고 애들 싸움을 어른 싸움 만들지 말자고 약속도 했다"고 전했다.

"나이 들어도 절대 헤어지지 못할 구조"라는 건축가의 장담대로 지금 4명의 집주인은 비슷한 꿈을 꾼다. 이상범씨는 "막상 살아보니 2층 마당에서 일부러 만나지 않는 한 부딪칠 일이 거의 없지만, 앞으로도 헤어질 생각이 없다. 빨리 아이들을 키우고 부부 4명이 함께 보낼 시간이 기대된다"고 했다.

집안일과 비용은 분담하되생활은 서로 간섭 안해집짓는 동안 함께 살며합가 훈련도공동수영장 만들어가족 넘어 마을 공동체로

마을 수영장 만든 '여여헌'

2013년 8월, 윤승재(45)·이민정(40)씨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물안마을에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한 집을 지었다. 이민정씨는 "646㎡ 넓은 땅을 혼자 차지하기가 부담스러웠는데 도련님네와 함께 살게 됐으니 집을 두 채 얻은 셈"이라고 했다. 동생이 가져온 전세금도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됐다. 함께 살지만 독립된 구조로 계획된 두 집에서 형은 서쪽 문으로, 동생은 동쪽 문으로 다니고 마당도 따로 쓴다. 1, 2층 합쳐 89.14㎡ 넓이의 동생네는 안방 전망이 근사하고 159.12㎡ 넓이의 형네는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인 두 아이에게 넉넉한 방을 만들어주었으니 형제는 각각 단독주택의 장점을 누리며 산다.

'여여헌'이라는 집 이름을 붙이며 건축주는 '더불어 산다'는 뜻의 한자 '여'를 넣었다. 동생 부부는 얼마 전 여기서 첫아이를 낳았다. 이민정씨는 "갓 결혼해 아파트에서 아기를 낳아 키울 동생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동생 부부가 혹시 독립해서 따로 살게 되면 전셋값이 들썩이는 바람에 동네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며 마당에 세로 3m, 가로 5m 넓이의 마을 수영장을 만들었다. 덕분에 지난여름 여여헌은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고 건축주 부부가 꿈꾸던 품앗이 육아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자연스레 무르익었다.

강승희 소장은 "예전 세대 합가는 주로 도심 속 다가구 형태로 이뤄졌다면 지금은 택지지구에서 단독주택 짓기로 실현된다. 경제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가 단독으로 집짓기 힘들어서 형제들과 함께 지으며 일찍 노후를 계획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이런 공동 건축은 노인들의 공동주거로 본격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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