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아직 정복 못한 항암신약..새 루트 찾아 오릅니다"

신찬옥 입력 2017. 5. 10. 04:12 수정 2017. 5. 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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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 바이오기업이 뛴다

이승주 대표(오른쪽)와 김용성 교수가 아주대 캠퍼스에서 창업을 준비하던 시기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넨텍 공동 창업자들이 캠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의기투합했던 것처럼 이 대표와 김 교수도 아주대 캠퍼스에서 창업 밑그림을 그리고 비전을 만들었다. [한주형 기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른바 1차 바이오붐을 이끈 것은 연구와 경영을 병행한 의사, 박사, 교수 등 1세대 창업자였다. 오랜 세월 연구해온 성과를 바탕으로 창업했지만 전혀 다른 영역인 경영과 투자 유치, 리스크 관리라는 장애물에 걸려 좌초했고 극소수만이 살아남았다. 이제 막 시작된 2차 바이오붐을 이어가려면 경영과 연구를 분리해 시너지를 노리는 '2세대 창업모델'이 절실하다. 대표적인 2세대 창업가로 꼽히는 이승주 오름 테라퓨틱 대표와 공동창업자 김용성 아주대 교수를 수원 아주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두 남자의 일생을 건 '모험'은 성공할까. 1차 목적지까지는 이미 도달했다. 우리 세포 속에서 암 돌연변이를 촉진시키는 '라스(RAS)'라는 단백질을 잡는 항체 기술 확보다. 라스는 기능에 따라 H라스, K라스, N라스로 구성되는데 항암제 개발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주로 K라스다.

항체(바이오 의약품)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K라스를 잡고 기능을 억제하면 항암 효과를 볼 수 있다. 라스 돌연변이는 전체 종양의 30%를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고, 췌장암은 무려 95%가 라스 돌연변이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역할이 규명된 이후 30여 년간 전 세계 연구자들이 라스 정복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어떤 신약물질로도 세포 속으로 '침투'해 라스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패가 계속되자 2014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NIH) 산하 국립 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NCI)가 직접 라스 항암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른바 '라스 이니셔티브'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우리 바이오벤처가 세포 속에 들어가 라스 단백질을 잡는 것까지 성공했다. 지금까지의 항체치료제들이 암세포를 찾아가 세포막 단백질에 달라붙는 형태였다면, 안으로 침투해 세포질 내부에 존재하는 질병 유발 단백질을 잡아낸 것이다. K라스의 특정 돌연변이만을 저해하는 세포침투항체 연구 성과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모든 라스 돌연변이를 저해할 수 있는 항체로는 세계 최초다.

벌써 국내외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오름 테라퓨틱이다. 2006년부터 세포침투 단백질 치료제 분야를 연구하며 세계적 성과를 발표해온 김용성 아주대 공대 교수와 LG생명과학 연구원, 사노피 아시아연구소장을 지낸 이승주 대표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원천기술을 개발한 김 교수는 아주대에서 기초 연구를 계속해 발전시키고, 이 대표와 연구원들은 오름 연구소에서 상업화를 위한 연구를 맡는다.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필수다. 이 대표는 'K라스 항암제 개발'을 히말라야 K2 등정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50년간 실패했던 K2 등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산소탱크'개발 덕분이라고 하죠. 오름의 기술은 그 산소탱크에 비견될 수 있고, 덕분에 정상(항암제 개발)으로 가는 여러 루트에 도전할 길이 열렸습니다. 교수님 연구실이 베이스캠프라면 오름은 원정대고, 아주대가 첩보국 무기연구소라면 우리는 007 같은 역할이에요."

두 남자의 인연은 2009년 산학연 신약개발 교류 모임에서 시작됐다. 덕분에 이 대표는 연구 초기부터 창업 때까지 라스 표적기술 연구가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국내외 제약바이오 회사에 몇 건의 기술을 이전했는데, 이 연구는 '남 주기 아까운 기술'이었다"면서 "이 대표도 계속 창업을 권했지만, 경영은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공동창업에 대해 "이 대표의 경영능력과 글로벌 네트워크 덕분에 회사가 빨리 자리 잡고 있고, 저는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은 모델 같다"며 "서로 보완해가며 회사를 키우는 지금이 아주 만족스럽다"고 웃었다.

김 교수는 2010년 연구년을 맞아 제넨텍에서 근무한 1년이 많은 것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넨텍은 바이오텍의 효시로 불리며 사우스 샌프란시스코를 글로벌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만든 회사다. 김 교수는 "연구원들의 세미나 수준, 일주일에 2~3번씩 열리는 외부 초청 연사 강연 등 놀라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두 달쯤 기가 죽어 있었던 것 같다"면서 "제넨텍의 연구 수준과 개방적인 기업문화를 보면서, 이들과 경쟁하려면 강력한 기반기술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과 남들이 많이 하는 분야는 따라 하지 말자는 철학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 교수는 오름의 기반이 되는 핵심논문 3개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지난 2014년 미래부가 선정하는 미래유망 융합기술파이오니어사업 및 연구과제로 선정되어 오는 2020년까지 지원을 받고 있다. 가장 최근 논문은 10일 세계적 저명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 판 최신호에 게재됐다.

"지난 2014년 논문이 '이런 플랫폼이 가능하다'는 소개였다면, 작년 논문은 그 원리를 설명한 것이고 이번에는 '이 기술로 라스를 잡았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분야도 물론 열심히 하겠지만, 제 에너지의 70~80%는 이 연구에 쏟아붓고 싶어요. 그래서 언젠가 '한국에서 새로운 항체기술이 나왔다'는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오름은 원천기술뿐 아니라 2세대 창업모델로도 주목받는 회사다.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실험'하고 있다. 이 대표가 스탠퍼드 대학과 LG생명과학, 사노피 등에서 경험한 조직문화의 장점을 따서 오름만의 색깔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는 "사이언스 기반 기업들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면서 "직원 6명의 작은 조직이지만 매주 토론하고 발표하면서 경험을 공유하고, 직책을 없애 모든 구성원이 리더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경영하는 회사를 꿈꾼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대전에서 시작돼 판교까지 이어지고 있는 혁신신약살롱이라는 바이오산업계 네트워크 모임을 만든 장본인이다. 사노피 아시아 신약연구소장으로 근무하며 많은 바이오텍들을 만났고, 글로벌 제약사와 벤처캐피털(VC) 인맥도 두텁다. 그는 "신약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창업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막상 해보니 한국에서 바이오텍을 키워오신 선배들이 정말 존경스럽고 슈퍼맨처럼 보이더라. 힘든 길이라는 걸 매일 절감하지만, 좋은 분들이 기대가 크다며 함께하자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첫걸음을 뗀 셈이고, 정상까지 갈 길이 멉니다. 중간에 실패도 하겠죠. 그러나 계속 새로운 루트를 찾아 도전할 겁니다.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질병들이 아직 많습니다. 이런 '난공불락 표적'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오름의 꿈입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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