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살살 녹는 쇠고기만 최고? 식지 않는 등급 '편식' 논란

김치중 2015. 7. 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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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질 좌우하는 마블링이 등급 결정, 사실 기름 맛에 고소함 느낄 뿐"

축산업자 등 판정에 문제 제기

"한우는 체질적으로 잘 생겨, 등급제 변경하면 축산업 혼란"

품질평가원은 원칙 고수 입장

쇠고기 질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겨지는 마블링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에게 곡물사료를 먹여 인위적으로 만든 지방질로, 마블링이 많을수록 맛이 좋다는 것은 허구'라는 지적이 요리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늘날 소는 인공수정 태아이식 복제기술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이제 소는 종의 적합성보다 시장 효용성을 목적으로 사육된다. 탄생부터 도살 순간까지 산업생산품인 것이다. 소들은 적절한 몸무게가 될 때까지 곡물 톱밥 찌꺼기 오물을 섭취한다. 비록 야생에서 클 때보다 더 많은 지방을 갖고 있고 체중도 더 나가며 더 빨리 성숙하지만 활기가 없고 때로는 번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농무부는 마지막 순간 트럭을 타고 자동화된 도축장으로 운송돼 도살되는 소들을 '곡물을 소비하는 동물일단'이라 정의했다.'(제레미 리프킨 저 '육식의 종말' 중)

소고기 맛(육질)을 좌우하는 것으로 알려진 '마블링(marbling)'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에게 곡물사료를 먹이고 운동을 억제시켜 생긴 결과물로, 마블링이 많을수록 좋은고기라는 현 등급판정은 잘못'이라는 게 비판의 골자다.

마블링은 고기의 근육조직을 관통하는 작은 지방조각 또는 지방의 얇은 층으로 일반적으로 마블링이 많을수록 고기의 풍미나 부드러움, 육즙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소고기 육질등급 판정은 ▦고기 색깔 ▦고기 조직.탄력 ▦지방 색깔 ▦뼈 성숙도 등을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축산업자들은 "마블링이 등급을 결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마블링이 많으면 1++, 1+ 등과 같은 최고등급을, 마블링이 적거나 없으면 1,2,3등급을 받는다.

강제로 곡물사료 먹고 운동 억제해 생긴 지방

최고등급 소고기에만 허락된 마블링이 도마 위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마블링 함유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현행 소고기 등급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마블링은 소에게 곡물사료를 먹이고 운동을 억제시켜 생긴 결과물"이라면서 "정부가 기름진 고기가 좋고 맛있다며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는 "마블링이 많이 생기려면 소가 곡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면서 "소는 먹은 풀을 소화시키기 위해 4개의 위를 갖고 있는데 풀이 아닌 곡물사료를 먹으면 위장병, 지방간이 발생한다"면서 "곡물을 먹고 자란 소에서 획득한 마블링이 좋은 소고기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동물복지 차원에서도 소에게 강제로 곡물을 밀어 넣는 작금의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면서 "곡물이 아닌 풀을 먹고 자란 소들은 마블링이 거의 생기지 않아 2등급 이하 판정을 받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마블링을 통해 소고기 등급을 정하는 것은 정부가 다양한 입맛을 가진 국민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런 논리에 따르자면 라면도 등급을 매겨 판매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정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인간도 불필요하게 지방 등 에너지를 섭취하면 지방간은 물론 동맥경화증이 발생하는데 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했다.

"살살 녹는 소고기, 육즙 아닌 지방이 많을 뿐"

요리전문가(셰프)들도 마블링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대중은 마블링이 많은 고기가 육즙이 풍부하다고 느끼는데, 육즙이 아니라 지방이 많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옥동식 전 광화문 퓨어아레나 셰프는 "사람들이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를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 하는데 사실은 고기 맛이 아닌 기름 맛에 빠져 있는 것"이라면서 "단백질과 수분이 함유돼야 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나는데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는 기름 맛 때문에 고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튀김을 먹을 때 느끼는 고소함과 같은 맛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서울에서 유명한 소고기 식당에 가면 소고기 굽는 냄새가 주변까지 번진다. 사람들은 이 고소한 냄새에 입맛을 다지며 그 고기를 먹기 위해 줄을 선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는 미각과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지만 30분 이상 가게에 앉아 고기를 먹으면 환호했던 그 고기냄새에 질리게 된다"고 했다. 마블링에 대해 비판적인 요리전문가들은 "입에 들어올 때 냄새가 느껴지고, 코에 음식을 댔을 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고기가 정말 맛있는 고기"라면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블링이 없는 소고기는 정말 맛이 없을까.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사람들에게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와 마블링이 없는 소고기를 반복해서 먹여보니, 처음에는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를 선호했지만 5,6번 먹은 후에는 마블링이 없는 고기를 선택했다"면서 "기름진 고기가 맛있는 고기라면서 정부가 국민 입에 강제로 집어넣는 국가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우, 체질적으로 잘 생겨" vs "구차한 변명"

마블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대두되자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숙성육'이다. 숙성육은 마블링이 없는 부위를 활용해 고기 풍미를 강하게 하면서 육질을 부드럽게 만든 소고기다. 옥동식 셰프는 "마블링이 없는 2,3등급 소고기를 1~3도 사이에서 숙성하면 육질이 부드러운 소고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2,3등급 소고기는 생고기 상태에서는 질긴 느낌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들 고기를 충분히 숙성하면 1++ 등급 못지않은 소고기가 된다"고 했다. 기름기 가득한 소고기를 찾아 먹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마블링과 관련 비판적 시각은 물론 대안까지 제시되고 있지만 정부당국의 견해는 달랐다. 한우 등급판정을 담당하고 있는 축산물품질평가원 측은 "우리 국민의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은 10㎏인데 이중 국산은 절반인 5㎏에 그치고 있고, 마블링이 함유된 최고급 소고기 소비량은 1년에 1kg에 불과해 건강상 유해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면서 "한우는 품종 특성상 마블링이 잘 생기고 육질이 좋은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곡물사료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한우는 체질적으로 마블링이 잘 생긴다는 주장인 셈이다. 또 평가원은 "소비자들이 마블링이 함유된 소고기를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일부 주장대로 소고기 등급제도를 없애거나 변경하면 축산 시스템이 교란되고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원론적 이야기만 했다.

평가원의 입장에 대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한우가 체질적으로 마블링이 많이 생긴다는 말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면서 "정부가 음식에 등급을 매겨 국민의 입맛을 통제하는 비민주적 제도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의 축산 관련 NGO 운동가는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곡식이 부족해 기아에 시달리고 있지만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 이상이 축우와 다른 가축들이 먹어 치우고 있다"면서 "선진국에서는 소고기와 같은 사육된 육류를 과잉 섭취해 심장발작 암 당뇨병 등에 걸려 사망하고 있는데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마블링 쇠고기' 포화지방산 많아 심혈관 질환 조심

소고기는 다른 육류와 마찬가지로 인간에 필요한 필수 영양분인 단백질을 제공한다. 문제는 소고기에 함유된 지방이다. 소고기는 돼지고기, 닭고기 등 다른 육류에 비해 지방이 많은데 특히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의 경우 포화지방산이 많아 문제다. 포화지방산을 많이 섭취하면 간에서 포화지방을 재료로 콜레스테롤을 만들어 혈액 내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아진다. 인체에 필요 이상으로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면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이 달라붙어 혈관을 좁게 만들고 혈액순환을 방해, 고혈압 동맥경화증 등 각종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 섭취를 삼가야 한다고 말한다. 대사능력이 떨어져 돼지고기, 닭고기에 비해 열량이 높은 소고기를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근력이 약하고, 젊은이에 비해 혈행 속도가 늦은 노인의 경우 기름기가 많은 소고기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면서 "1++ 등급처럼 기름이 많은 소고기보다 기름이 적은 2,3등급 소고기를 매일 아침, 점심에 5~6점 정도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박민선 교수는 "노인들은 소고기를 먹을 때 섬유질이 풍부해 위장운동을 자극하는 야채와 함께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 드신 부모에게 마블링 가득한 소고기를 사드리는 것보다 규칙적으로 기름기 적은 소고기를 섭취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도인 셈이다.

소고기는 20~40대 직장여성들에게도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박민선 교수는 "감정적 요인이 아니라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다면 매일 조금씩 소고기 등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면서 "마른 체격을 가진 50대 여성들은 열량 부족에 따른 신진대사 감소로 소화기능이 떨어질 수 있어 소고기 등 육류 섭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고기는 하루에 얼마만큼 섭취하면 좋을까. 한국인의 하루 단백질 섭취 권장량은 남성 50~80g, 여성 45~70g 수준이다. 소고기 기준으로 남성은 성인 주먹크기인 180~240g, 여성은 102~150g 정도가 적당하다. 조정진 한림대동탄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계란 우유 콩 돼지고기 닭고기 등 식물ㆍ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가정하면 성인의 경우 1주일에 소고기 200g 정도 섭취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박민선 교수는 "회식자리에서 소고기를 많이 먹을 생각을 하지 말고 건강을 위해 매일 조금씩 소고기를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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