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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두려운 아이들 해마다 늘고 있다
시사저널 | 2012.11.14 11:35




20대 미만 청소년들 사이에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 시사저널 이종현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학업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모가 많다. 실제로 지능이 뒤떨어지지 않고, 공부도 많이 하지만 기초 학력 갖추기에도 벅찬 아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 난독증이 아닌지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김철호군(가명)은 돌을 넘긴 후에 엄마·아빠를 말했고, 만 4세가 되어서야 말문을 텄다. 새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해 들어야 겨우 뜻을 알았다. 유치원 때 한글 학습지를 시작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어서 한글을 거의 모른 채 입학했다. 학교에서는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렸다. 보통 사람은 '안녕하세요'를 한 문장으로 읽지만, 김군은 '안녕하' '세요'로 두 번 나눠 읽었다. 김군의 눈에는 글자가 구불거리는 외계어로 보일지 모른다.

학업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다. 행동 장애(결핍·과잉활동 장애 등), 정서 문제(불안, 우울증 등), 환경 문제(가족 불화, 부모와의 갈등 등)이다. 그중에 난독증도 있다. 난독증이란,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읽을 때 단어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는 증세이다. 대개 미취학 시기에 발음을 자주 틀리거나, 말을 더듬는다. 취학 초기에는 글씨를 베껴 적기가 어렵거나 학습 자체에 취미를 잃기 쉽다. 그러나 사물·그림·도표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능력에는 지장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듣고 말하는 것과는 무관하고, 지능 저하와도 관계가 없다.

이 증상은 주로 20대 미만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의 증세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책에서 단어의 앞뒤를 바꿔 읽기도 하는데, '스파게티'를 '파스게티'로 읽는 식이다. 앞 단어의 조사를 뒤 단어에 붙여 읽기도 한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아버지 가방에들 어가신다'로 읽는 것이다. '책책을 읽고 싶지만 글자가 이이상하게 보인다'처럼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글씨가 악필이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보일 수 있다. 또 산만하거나 충동적 행동을 하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가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휴대전화 문자는 곧잘 읽지만 책을 읽을 때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읽는 매체가 문제가 아니라 짧은 글보다 긴 글을 읽을 때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조기 치료 안 하면 다른 질환 생길 수도

난독증이 의심되면 주저하지 말고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소아청소년정신과를 찾으면 된다. 의사는 병을 앓은 적이 있는지, 가족력이 있는지 등을 묻는다. 또 다각도의 검사를 받는다. 예컨대, 신경 검사나 학습 능력 검사로는 난독증 외에 다른 원인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언어 능력 검사(읽기, 이해하기, 말하기, 사물 명칭 따라 하기, 쓰기 등)로는 난독증의 정도를 확인한다. 전에 없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은 이상 뇌 사진(MRI 등)을 찍을 필요는 없다.

난독증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뇌의 양쪽 반구의 불균형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공간 지각 기능을 담당하는 우뇌에 비해서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을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난독증을 앓는 사람의 40%는 유전 탓이다. 또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아도 난독증이 생길 수 있다. 글을 처음 배울 때 흥미를 갖지 못해서 일시적인 학업 부진을 경험하는데, 무조건 공부하라는 강요를 받으면 더욱 글을 읽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도 청소년이나 성인이 된 후에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스트레스나 다른 정신 질환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험생에게 강박증과 관련된 난독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시험 문제를 읽을 때나 책을 읽을 때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이어지면 시험지나 책을 보는 것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전문의들은 1 대 1 치료를 권장한다. 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일주일에 두 차례 병원에 들러 특수교사, 심리상담사, 언어치료사로부터 1 대 1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전, 즉 초기에 발견할 경우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발견하면 ADHD나 수리 장애가 겹친 상태여서 1년 이상의 치료가 요구된다.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지능이 낮지 않은데도 저능아로 오인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조사한 결과, 기초 학력이 부족한 초등학생 5만명의 20%는 난독증이나 정서 불안 등의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난독증으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사람이 2007년 1백68명에서 2011년 2백9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80~90%는 10대 이하 아이들이다. 전체 아이 중에서는 5~7%가 난독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능이 낮아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교과부, 종합 클리닉 설치해 교육·치료 지원

이에 따라 교과부는 지난해 난독증 등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2년 동안 6백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대구·대전·전남·경북 교육청은 30여 개의 학습 부진 종합 클리닉을 설치하고 학업 부진 학생 3천여 명을 찾아가 교육하고 있다. 이효선 교과부 교육정보기획과 사무관은 "병원 치료가 필요하면 전문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각 클리닉에서는 학업이 부진한 이유를 알아내고 그것에 맞는 방안을 찾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기초 학력이 부족한 1백70명 정도를 관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방치된 아이가 있고,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도 있다. 각각에 맞는 치유 방법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난독증이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같은 글자를 반복해서 읽도록 하고, 그 후에는 단어에서 문장으로 점차 문자 정보를 확대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또 난독증 증세가 있는 아이는 심리적으로 억눌려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난독증으로 진단받은 김군은 지난 3월부터 4개월 동안 주 4회 방과 후에 하루 1시간 30분 동안 '시지각 훈련(안구 조절, 형태 지각 등)'을 받았다. 이후 김군의 읽기와 쓰기 능력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글에 대한 이해력, 줄 맞추어 글씨 쓰기, 더듬거림 없이 책 읽기 능력 등이 향상되었다. 국어와 사회 교과 성적도 올랐다. 성적이 올라 자신감이 생겨 수업 시간에 발표도 곧잘 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학령기 아이들에게 학습 부진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이다. 많은 학습 부진 아동이 부모나 학교로부터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아이라는 선입견 아래 채근을 당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살펴보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에게 막연한 학업 독려는 심각한 스트레스가 되며 이 때문에 2차적 정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학습 부진이 있는 아동은 정확한 원인을 진단해 적절한 치료와 교육을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난독증=저능아' 아니다


난독증이 있더라도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일 수 있다.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해 창의적인 사고와 미술·음악 등 예능 분야에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큰 성과를 보인 유명인 중에 난독증을 앓았던 사람이 적지 않다.

화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노트를 기록할 때 거울을 보듯 거꾸로 기록했다. 실제로 그가 쓴 원고를 보면 난독증의 특징인 철자 오류가 종종 나타난다. 영국 정치인 윈스턴 처칠은 어릴 때 말을 더듬었고, 학창 시절에는 학업 성적이 나빴다. 발명가인 토마스 에디슨은 저능아 취급을 받을 정도로 학업 수행, 수학, 집중력, 언어 표현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글자와 숫자 외우기를 어려워했고, 청소년기까지 글을 읽지 못했다. 그림은 일기를 쓰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학습 속도가 느렸고,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 입학시험에서 낙방했다. 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초등학교 때 난독증 증상이 나타났고, 정치인이 되어서도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영화배우 톰 크루즈는 난독증 때문에 주변 사람이 읽어주는 대본을 외워 연기했다.

노진섭 기자 / n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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