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인사는 원칙이 중요하지.."

김현일 대기자 2013. 1. 2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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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감으로 모든 보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그 사람이다. 그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획재정부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하면서 경제 부처 전체를 컨트롤한다고 발표하자 이번에는 여기에도 이름이 오르내린다. 대선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최고의 전략 무기였던 경제 민주화 등의 공약 생산을 총괄한 활약만으로도 총리 하마평은 이상할 것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경제 전반을 꿰고 있는 '김종인'이다. 분야별로는 나름의 전문가가 있겠지만 국내외의 각 부문 이론과 실물을 아우르며 통찰하는 독보적 존재이다. 게다가 정국을 조망하는 4선 국회의원 관록 김종인의 안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야말로 '정치·경제'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감히 예견컨대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는 김종인이 아니다. 경제부총리도 아닐 것이다. 이 얘기를 하는 1월18일 현재의 무모한 예측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종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달리 말하면 김종인은 버겁다. 당내 모든 이들이 박당선인의 눈치를 살피지만 그는 예외이다. 할 말 다하고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면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다.

ⓒ 시사저널 임준선

"김종인은 버거운 인물? '첫 총리'는 아니다"

고래 심줄 고집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멀리 재계와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거의 전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헌법의 경제 민주화 조항(119조 2항)을 관철한 전례 등을 돌이켜볼 필요가 없다. 주지하듯 대선 당시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박근혜 후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행복위원장 자리를 곧바로 내던졌던 김종인이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원칙주의자를 달가워할 리가 없을 터이다. 고래로 직언을 하는 충신이 필요하다면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물을 곁에 둔 지도자는 많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 또는 경제부총리에 김종인은 아니다"라고 장담하는 소이는 이런 데 있다.

다만 '김종인 총리 혹은 김종인 경제부총리'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면 구원투수로서 김종인이 등판할 소지는 다분하다.

총리 하마평이 여전하던 1월10일,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2시간여 만난 데 이어 몇 차례 대화를 나눴다.

총리직을 맡게 되시나요?

총리는 무슨 총리…. 생각 없다고 이미 여러 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니 내가 할 일은 다 한 겁니다.

대통령이 되게 했으면 국정을 성공적으로 잘 이끌어가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울 사람 많아요.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고.

당선인과는 자주 만나십니까? 통화는?

아니요. 선거에 이겼고, 그래서 훌훌 털고 일어섰으면 그만이지 무엇을 연연합니까. 나는 애초부터 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인수위를 시발로 인사 뚜껑이 열리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조각이 곧 이어질 터인데 인수위원, 대변인, 헌법재판소장 등 기왕에 발표된 몇몇 인선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밀실 인선에 따른 당연한 부작용이니 어쩌니 하는 비판도 이어집니다. 당선인의 인사를 평가·전망해주시죠.

그게 참…(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인사가 만사라고 국내외 상황도 안 좋은데 인사까지 여의치 않으면 큰일 아닙니까.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리라 보십니까?

난제가 산적해 있고, 내외 여건도 불확실투성이이니 잘 대처해나가야죠. 쉽지 않겠지요.

새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아직은…. 6개월 정도 지켜본 뒤 얘기할게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유럽 각국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현지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심상치 않거든요.

(대사를 성공리에 마쳤으니 미련 없이 떠날 것이라면서도 아쉬움은 없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자극적 질문으로 그를 촉발시켜 봤다.)

대다수 언론이 총리 후보 1순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여기에는 기대감도 깃들어 있는 것 아닙니까?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마지막까지 힘을 보태야지 본인만 편해서야….

나는 이렇게 되리라(총리에 기용하지 않을 것)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사람들과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자체가 솔직히 불쾌합니다. 내가 뭐 다른 생각이 있어 뛰었다는 식으로 비치는 게 싫고…(다른 이들과 수평적으로 저울질되는 것도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대통령 후보로서 의지는 했지만 대통령으로선 중책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오래전에 간파했다는 말씀인데, 그 이유가 본인의 주장을 꺾지 않는, 한마디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데 있다고 보시는 거죠? 재계의 거부감도 한몫했을 터이고.

뭐 그렇다고… 하기야 본래 후보 때와 당선인 시절이 다른 겁니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또 달라지고. 나는 이런 것을 가까이서 무수히 봐왔습니다. 직접 겪기도 했고.

그래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참모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강한 캐릭터의 대통령인데 예스맨만 주변에 있어서는 곤란하지 않습니까?

30여 공국으로 분열된 독일 통일의 대업을 이룬 프러시아 빌헬름 1세에게는 비스마르크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철혈 재상으로 불리던 비스마르크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빌헬름 왕의 두 아들들도 수시로 '저 못된 비스마르크를 당장 쫓아내자'고 부왕에게 졸랐습니다. 그러나 빌헬름 왕은 '나라를 위해서'라며 그를 20년간(1871~90년) 재상에 앉혔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전쟁 없이 다른 공국들을 복속시켰고, 마침내는 프랑스와의 일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프러시아 빌헬름 왕을 독일 제국 빌헬름 1세 황제에 등극케 하는 것으로 보답한 것입니다. 독일 내에서 유일하게 대립하던 바이에른은 자연히 굴복했고…. 통일 대업을 이룬 것이지요. 그런데 빌헬름 1세를 이은 2세 황제는 즉위하자마자 눈에 가시였던 비스마르크를 내몰았습니다. 비스마르크를 쫓아내고 양양해하던 빌헬름 2세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패망했지요. 프랑스의 영광을 외친 드골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의 대명사인 드골은 정적 앙드레 말로를 총리로 영입해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말로야말로 중국 마오쩌뚱의 대장정, 스페인 내전에까지 참여한 좌파의 수장이 아닙니까.

ⓒ 시사저널 임준선

"미리 대처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

역대 대통령들과의 일화도 많으시죠? '할 말 다하느라 생겼던' 것들 말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경제수석 때도 스토리가 적지 않았는데요.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지방 유세를 수행했을 때 오찬 석상에서 도와달라고 해요. 서울에 올라와 모처의 사무실에서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후보가 모든 분야를 공부할 수 없으니 믿을 만한 전문가를 골라 핵심을 익히시라고 조언했습니다. 경제는 내가 해드리겠다고 했지요. 자주 만나면서 직선제를 받자고 강력히 건의한 게 주효했고, 특히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키면서 깊숙이 발을 담그게 되었습니다. 슐츠 국무장관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미국 방문은 대선의 결정적인 이벤트 아닙니까. (중략) 당선 직후에도 '청와대에 들어와 곁에서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빤했지요. 대통령의 동서인 금진호 장관이나 동기생인 이원조 의원, 박철언 보좌관 등이 '골치 아픈 사람'이라며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내가 있으면 자기네 내키는 대로 못할 터이니. 그래서 보사부장관을 했는데 1년 6개월여 되었을 때 경제가 요동을 치고 국정이 뒤죽박죽이 되니 부르시더군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시기에 준비해간 처방을 분야별로 보고해드렸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자료를 넘기라는 거예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가져다 비서진과 내각에 검토하라고 넘기면 죽도 밥도 안 될 것임을 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경제수석을 맡으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겠노라며 시간을 달라고 했지요. 일주일이 지나 다시 면담할 때 경제수석 수락의 전제를 내걸었습니다. 일단 믿고 맡기신 이상 경제에는 간섭을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주위의 참언에 흔들리면 아무 일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노대통령께서도 함께 청와대에서 일하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가 주위의 이런저런 말에 흔들려 부도냈던 기억도 있고 해서인지 '약속한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되시도록 혼신을 다해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재벌들의 불용 부동산 매각 처분이 첫 조치였습니다. 반발이 심했지만 명분과 타당성 있는 원칙을 세우고 밀고 나가니 모두가 승복할 수밖에요. 이후 경제적 요인이 큰 소련과의 수교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니 대통령께서 외무부장관에게 한-소, 한-중, 한-미 외교는 경제수석과 협의하라는 특명을 내리는 바람에 청와대 내부에서 껄끄러운 상황도 없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제대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려야 환자를 치유하듯이 국가 경제라는 게 곪을 대로 곪은 뒤에는 어려운 법입니다. 수습하기에 급급해서는 안 되지요.

노 전 대통령은 친미라서 곤란하다며 파약

지금 전력 부족으로 인한 블랙아웃을 말하는데, 경제수석 당시 발전소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도 관심이 컸지 않았나요?

해당 부서에서 전력 수요 예측을 보고하는데 엉망이에요. 왜 이런 수치가 나왔느냐고 했더니 신축 주택의 전등 수를 기초로 했다는 것입니다. 냉장고 등 정작 전력이 많이 소비되는 데에 대한 검토가 안 된 것입니다. 큰일이다 싶더군요. 다른 급한 것도 많은데 엉뚱한 곳에 돈을 쓴다는 비판을 무시하고 인천의 쌍둥이 발전소 등의 건설을 서둘렀습니다. 그때 건설한 덕분에 20년 버텨왔는데 긴 안목을 갖고 대처하지 않으니 이런 사태가 초래된 것입니다.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감옥 구경까지 하셨는데 '특정인'과의 의리를 지키느라 모든 것을 본인이 뒤집어썼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고생은 했지만 오히려 평가받는 부분이 되었고, 또 그래서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는 물론, 2003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도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대통령과의 인연은 짐작이 가는데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호흡을 맞춘 대목은 헷갈립니다.

1월 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내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는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한식집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놀랐습니다. 솔직히 말해 '깜'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자기의 주관을 펴는데 경청할 구석이 있어요. 이 사람이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습니다. 종국에는 허망했습니다만. 그래서 정말 대통령이 되려면 해양수산부장관 자리부터 던지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랬더니 꼭 처리할 일이 있어 6개월은 더 해야겠다는 겁니다. '큰일을 하려면 청와대에서 그만두라고 하기 전에 던져야 모양이 산다'고 했습니다. 열흘 뒤 노후보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앞장서면 따라갈 터이니, 돕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겁니다. 결국 응낙했지요. 당시 여론조사 지지율 5%를 밑도는 노후보였지만 잘하면 한국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대 이회창 후보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확신했기에 당내 경선만 통과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용의주도'를 항상 강조했습니다. 자문해준 정책과 전략이 먹혀들자 노후보는 기자들에게 나를 총리로 꼽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자 달랐습니다. 당선 후 1개월여가 되었을 때에야 단둘이 마주했는데 '너무 친미여서 곤란하다는 주장이 많다.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신경 쓸 게 없다고 했지요. 이 아무개, 안 아무개 등이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거든요. 권력의 생리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이런 속성을 꿰고 있는 나에게 지금 총리 자리를 쳐다보는 것처럼 얘기하니 우스운 것이지요.

"독일 수상 메르켈을 배우시라"고 조언

그러면 박근혜 당선인과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박당선인이 정치에 뛰어들었던 시간 등을 따져 보면 접합점 등이 별로 안 보이는데 말입니다. 서강대 시절 교수와 학생으로?

17대 국회 때 박근혜 의원을 만났습니다. 소속 정당이 달랐지요. 독일을 방문하게 된 박의원이 한독친선협회장인 나에게 방독에 필요한 자문을 요청했습니다. 호감이 가는 박의원이기에 성심껏 몇몇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메르켈 의원(현 총리)을 주목하라고 했습니다. 같은 여성 의원으로서 배울 게 있다고 말입니다. 그가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제 자랑 같은데 독일에서 유학을 했고, 이후 독일 정계 지도자들이 미처 예상하지도 못할 때 독일 통일을 예견한 게 맞아 떨어져 독일 지도자들이 저를 조금은 대단한 존재로 인정하고 있거든요. 어쨌든 이것이 박당선인과의 교분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2007년 지금의 박당선인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을 때 위로할 겸 점심에 초대했습니다. '낙담 마시라. 메르켈 총리도 정계 입문 15년 만에 독일 총리가 되었다. 의원 선거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남성 벽을 넘지 못하다 이번에 되지 않았느냐. 박대표도 5년 뒤인 2012년이면 국회의원 입문 15년이 되니 시기도 적당하다. 대통령이 되려면 무엇보다 복지를 잘 알아야 한다. 부자 정당이라고 각인된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국민 80%가 복지에 민감하다. 반발을 사고 있는 MB(이명박 대통령)와 각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으로서 대안이 못 된다. 세종시 문제는 물러서서는 안 된다. 무너지면 끝이다' 등등을 조언했습니다. 힘을 내라고 했지요. 그 뒤 박후보가 2012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도와줄 것을 요청하기에 '꼭 당선되시도록 열정을 쏟겠다'고 확약했던 것입니다.

지난 대선의 다크호스였던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멘토였다가 박근혜 후보의 최고 참모가 되셨지요.

안교수를 두 번째 만났을 때 '깜'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포부, 기상, 이런 게 안 보여요. 이내 기대를 접었습니다. 언론에서 단일화 돌풍 어쩌니 했는데 저는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정치판의 개혁을 외친 사람이 당선만을 위해 정치권과 일체화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것만으로 찻잔 속의 태풍이 된 것입니다. 제가 최소한 1.5% 표 차이의 승리를 호언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으로서 책임 윤리와 신뢰의 윤리를 역설했습니다. 신뢰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해서는 안 되는 가치이지만 책임 윤리는 다소의 신축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승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단일화에 응했다면 문재인 후보를 열성적으로 도왔어야지 어정쩡했으니 두 덕목을 모두 어긴 것이 되지요. 제가 1997년 대선에서 패한 이인제 후보에게 '실망하지 마라. 한국 정치사에 나름의 획기적 역할을 한 것이다. 5백만 지지표를 생각하며 외롭고 괴롭더라도 참고 후일을 기약하라'고 위로 겸 조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잘 지키겠다'던 사람이 2개월도 못 가 DJ 품으로 갔으니 다 끝난 것이지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가 해산된 뒤 독일에 가 있던 5월 박근혜 후보의 전화를 받고 귀국하신 것으로 압니다. 막중한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행복추진단위원장으로서 일하면서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단호하게 사표를 던지셨는데 그래도 됩니까? 자신의 원칙이 수용되지 않았음에도 복귀하신 것은 박후보의 간곡한 설득 때문인가요, 아니면 아까 말씀하신 '책임 윤리' 때문인가요?

단순히 대선 승리뿐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경제 민주화를 간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탬이 안 된다고 한다면 떠나야죠. 맞습니다. 박후보에게 대통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와야 했지요.

"박당선인은 말 바꾸는 분이 아니라 기대"

지난 대선의 일등 공신 반열에서 이른바 '경제 민주화' 공약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선전이 치열하던 지난해 11월의 대선 공약 발표 때 총책임자이면서도 발표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본인께서는 원래 그런 자리에 안 나간다고 말했지만 취재한 바로는 그것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 중 핵심인 경제 민주화 부문을 다듬기 위해 20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고생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박후보가 반드시 거쳐야 할 대면 보고를 건너뛰면서 자료만 건네라고 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지나간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련의 해프닝이 틀림없다면 당 정강에도 명시한 경제 민주화를 비롯한 많은 공약이 선거용 구호에 불과한 것이 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것입니다. 벌써부터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다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조달이 어려운 만큼 공약을 선별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덧붙이자면 원안의 대기업집단법 제정 등 재벌 개혁 방안이 누락된 것은 물론 작업에 참여했던 책임자들이 인수위 인선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박당선인 비서실의 측근들과의 알력설과 더불어.

…지켜보려고 합니다. 잘 되겠지요. 나라의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과업이고, 당선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요. 경제 민주화가 이뤄진 기반 위에서 경제 성장도 가능하다는 엄중한 사실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자기 말을 바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고 주변에서 대통령을 흔들면 본인도 확신이 덜한 마당에 다른 길을 모색하려 들지 않을까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동시에 경제 성장의 그늘도 짙게 드리우게 했습니다. 박당선인이 부친의 경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느냐, 아니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당선인은 원칙이 확실한 분입니다. 사심도 없고. 하기야 socialism과 sociality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social' 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펄쩍 뛰는 딱한 무리들이 정·관계와 재계에 널려 있으니 한편 우려스러운 점이 없지 않죠. 기다려봅시다.

"김종인이 좋아서 새누리당 찍었다" "경제 민주화 때문에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 "김종인이라면 제대로 할 것 같다"는 목소리가 여전하고, "무엇보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려면 계속 도와야 할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빙긋 웃는 것으로 답했다.

김현일 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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