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선 성공

[특파원 칼럼]지금 미국 공화당에 필요한 것

경향신문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위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공화당원을 만났다. 그는 4년 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흑인) 대통령에게 롬니가 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는 "이길 기회가 숱하게 많았는데 롬니는 그걸 한 번도 살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공화당이 이번 대선에 진 것은 롬니의 선거전략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오바마를 국민들이 재신임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원도 민주당원도 미국 유권자도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본 이번 대선은 롬니의 패배가 아니라 롬니를 뒷받침해주지 않은 공화당의 패배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공화당의 평가대로 오바마는 잘한 게 없는 대통령이지만 선거운동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함으로써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당의 전략은 비인간적일 정도로 치밀하고 냉철했다.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보다 롬니를 공격하는 기조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흩어놓았고, 아군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쪽은 가차없이 버렸다. 네거티브와 편가르기는 오바마의 재선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민주당이 이것만으로 대선에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너나없이 혼탁했던 선거판에서 민주당은 유권자들의 생각을 읽는 데 성공했다. 공화당은 사회의 변화된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국 득표율 2%포인트 차이의 아슬아슬한 패배였지만 공화당은 이번 대선 패배가 의미하는 것을 심각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애초에 이번 대선은 오바마의 대세론으로 출발했다. 공화당이 모르몬 교도이면서 중도적 성향을 가진 롬니를 후보로 뽑게 된 이유는 단 한가지, '본선 경쟁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롬니는 캠페인 과정에서 자신의 중도적 성향을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다. 공화당 주류세력의 압력에 밀려 티파티 성향의 부통령 후보를 영입해야 했고, 자신이 과거에 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중도적 입장을 버려야 했다. 롬니는 이 때문에 민주당으로부터 '말을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지난 8월 공화당이 공개한 당의 정강은 1960년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강경한 보수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했다. 낙태·동성결혼·총기 규제에 강하게 반대했고 미국의 인구구조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음에도 이민정책은 전혀 포용적이지 않았다. 서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부유층 감세도 줄기차게 주장했다. 외연을 넓히기보다 전통적 지지층인 백인 계층의 결집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보인 것이다. 이번 선거와 함께 치러진 각 주의 주민발의 결과를 보면 공화당의 판단이 유권자들과 얼마나 달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메릴랜드·메인·미네소타주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가 가결됐고, 콜로라도주에서는 의료용이 아닌 오락용 마리화나까지도 허용하기로 했다. 미국의 새로운 세대들과 주류사회에 진출한 소수계 때문에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민발의 결과가 말해준다. 오바마와 롬니의 표 차이가 미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화당이 사회적 이슈에서 조금만 유연한 입장을 보였어도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공화당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이들은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당내 토론과 투쟁을 거쳐 새로운 진로를 정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화당이 꿈꾸고 있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부활'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쇄신은 미국이 지난 30년 동안 자신들이 인식한 것보다 훨씬 큰 폭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유신모 워싱턴 simo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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