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오바마, 보스턴의 롬니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2012. 11. 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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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미국]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 이태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1년 가까이 진행된 미국 대선을 경선부터 시작해 본선까지 지켜본 것은 특파원으로서 미국을 더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장에서 느낀 것들 가운데 가장 우선은 미국이 감추고 싶었을 분열된 모습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그 극명했던 순간이 9월 플로리다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와 11월6일 선거 당일 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 측 집회였다.

흑인, 히스패닉을 찾을 수 없는 공화당의 모임들은 다양한 인종이 섞인 민주당 집회들과는 비교됐다. 어떤 게 진짜 미국의 모습일까 하고 자문해보면 아마 두 개 모두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게 갈라져 있는 게 본 모습이고, 사람들의 정서였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느낌은 섬뜩하기조차 했다. 미국을 대변하는 '멜팅 팟'(Melting pot)이란 말이 20세기 초반 서구 백인들의 '이민 쓰나미' 때 나온 말이고, 지금의 미국은 비 백인들로 인한 '샐러드 볼'(Salad bowls)로 표현된다는 게 실감이 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어렸을 적 사랑하던 외조모가 길에서 만난 걸인이 흑인이라 무서웠다고 외조부에 던진 말을 우연히 듣고 느꼈을 감정도 이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미국의 유권자들이 검은 콤플렉스를 승화시킨 정치인 오바마를 다시 선택, 분열된 나라에 조화를 이뤄냈다는 것은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이다.

미국 선거에서 인구 숫자를 늘려가는 히스패닉을 비롯한 비 백인들이 승패를 가르고, 인구변화가 정치지형을 바꾼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수논객 패트릭 뷰캐넌이 책 '서구의 죽음'에서 비 백인 인구의 증가로 인한 미국의 변화를 경고한 게 2001년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책사 칼 로브는 선거 초반 공화당이 1960년대 흑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 히스패닉까지 민주당에 넘겨주면 영원히 집권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4년 전에도 제기된 동일한 지적을 4년 뒤에도 극복하지 못한 건 분명 공화당의 한계였다. 어쩌면 공화당은 아직 타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선거 당일 밤 롬니의 보스턴 선거캠프 본부가 마련한 행사는 그런 모습을 명확히 드러냈다. 당초 롬니 당선 축하 파티로 준비됐던 행사에는 정장 차림의 백인들이 1000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참석해 웨이터의 서빙까지 받았다. 누가 봐도 롬니 당선 축하객은 돈 있는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 미국의 1%였다. 롬니가 당선돼 이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미국과 세계에 중계됐다면 99%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좌절했을 것이다. 후일담으로, 롬니 측은 이날 행사 취재 기자들에게 의자 하나 당 75달러에서 1020달러를, 큰 공간이 필요한 방송사들에게는 6500달러의 자리 값을 요구했다.

이런 롬니 측과 가장 대조적이고 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선거 다음날인 7일 오바마가 시카고 선거캠프의 젊은이들에게 한 눈물의 연설이었다. 미국에서도 늦게 알려져 큰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5분여 진행된 연설에서 오바마는 그의 정치역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말들을 조용히 토해냈다. 오바마는 흐르는 눈물을 예닐곱 차례 훔쳤고, 나중에는 눈물 젖은 손을 바지에 닦아냈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 데이비드 액설로드가 진정하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연설의 일부를 인용하면, 오바마는 먼저 25살 때인 1985년 월가의 돈 버는 직장을 버리고 시카고로 와 빈민운동을 시작하던 때를 떠올렸다. 오바마는 "여기에서 사람들의 희망과 꿈, 그리고 실망과 함께 사는 법에 대해 알게 됐고, 그렇게 한 남자로 성장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리고는 "그 때의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조직화돼 있고, 더 효율적인 여러분이 장차 놀라운 일을 해낼 것"이라며 "로버트 케네디(전 법무장관)가 말했던 호수에 돌을 던져 일어나는 '희망의 파문'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했다. 오바마는 "앞으로 4년 임기에 이룰 성과는 다가올 미래에 여러분이 성취할 위대한 일에 비하면 빛이 바랄 것"이며 "그것이 나의 희망의 원천이다"라고 자신의 정치적 계승자들일 젊은이들을 다독였다.

이번 대선에서 4년 전처럼 흑인 90% 이상이, 히스패닉과 아시안은 70% 이상이 오바마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보다 18~25세의 젊은이 60%가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것이 미국의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선거 다음날 이 젊은이들 앞에서 27년 전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시카고로의 회군, 그때의 초심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떠올리는 오바마에게서 미국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지난 4년 9·11 테러 이후의 시대를 열어 세계를 악의 담론에서 벗어나도록 한 오바마의 다음 4년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 copyrightⓒ 기자협회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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