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경합주 집중공략 '방화벽 전략'의 승리

2012. 11. 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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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들은 7일(현지시간) 대선에서 결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51)에게 '4년 더' 기회를 줬다.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65)와 선거 직전 지지율 격차는 0.4%포인트까지 좁혀져 막판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36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후보와 앨프 랜든 공화당 후보 간 대결 이후 최대 접전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정치전문 매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8일 내놓은 집계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전국 득표율은 50.4%로 48.0%의 롬니를 불과 2.4%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실제 판세를 가르는 선거인단 수에서는 격차가 컸다. 오바마는 332명(플로리다주 포함)을 확보해 206명인 롬니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오바마의 승인(勝因)으로는 경합주(스윙스테이트) 다수를 선점한 점이 꼽힌다. 미국은 주별로 1표라도 더 많이 얻는 정당이 선거인단 전부를 가져가는 승자독식제로 선거를 치른다. 민주·공화당은 각각 우위를 점하는 전통적인 '텃밭'이 있다. 민주당의 캘리포니아주, 공화당의 텍사스주 등이 대표적이다. 경합주는 이 같은 색깔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선거 전 RCP가 최종 경합주로 분류한 주는 11개다. 지지율 차이가 5% 미만인 곳이다. 이 중 '롬니 우세'로 분석된 곳은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두 곳뿐이었다. 실제 이번 선거를 봐도 롬니(50.6%)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만 오바마(48.4%)를 이겼을 뿐, 나머지 경합주는 모두 내줬다.

경합주 11곳 중 10곳에서 오바마가 이겨

이는 오바마 진영의 '방화벽 전략'이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초박빙 예상 지역 중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곳은 플로리다주(29명)다. 그래서 오바마팀은 이곳을 잃어도 선거에서 이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오하이오, 아이오와, 위스콘신 등 중부의 다른 경합주를 완벽하게 가져오자는 목표를 세웠다. '방화벽'만 지키면 플로리다를 잃어도 더 많은 선거인단 수 확보가 가능하다는 전략이 나왔다. 이 지역에 광고와 유세 등을 집중했다. 롬니팀은 이 전략에서 밀리자 선거 막바지에 펜실베이니아를 공략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4년 전 대선에서 오바마의 버팀목이 돼준 여성과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표를 지키려던 노력도 통했다. 이번 대선은 백인과 나머지 인종 간 구분이 특히 뚜렷해졌다. 미 방송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흑인 유권자의 93%가 오바마를 찍었다. 히스패닉, 유대인, 아시아 유권자 득표율도 70~73%에 달했다. 반면 백인 유권자는 경합주인 오하이오·플로리다주에서 절반 이상이 롬니를 찍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몰린 비(非)백인 표는 롬니의 백인표를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내 최대 소수인종이 된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그들에게 유리한 이민과 사회보장 정책을 공약한 오바마에게 표를 몰아줬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캠프의 '비방전'(네거티브) 도박도 일부 효과를 봤다는 평이다. 오바마 측은 롬니가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고 일자리를 해외로 빼가는 악덕 기업인으로 묘사한 광고를 내보냈고 일반 대중에게 크게 각인됐다. 롬니가 운영하는 투자사 베인캐피털의 과거 사건들도 맞물리면서 이는 고정된 이미지로 남았다. 공화당 전략가인 찰리 블랙은 "현직 대통령이 이번처럼 부정적이고 편파적인 선거운동을 한 적은 없다"면서 "그렇지만 그들은 이겼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유색인종 표 잘 지켜 롬니의 백인표 눌러

빌 클린턴 전 대통령(66)도 오바마 재선의 일등공신이다. 9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48분간 오바마가 다시 대통령이 돼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연설로 힘을 실어줬다. 막판 경합주 유세전에도 직접 나서 발로 도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다음날인 7일 롬니의 패배 시인 전화를 받고 바로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감사의 전화를 걸었던 것은 그가 얼마나 큰 지원군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경제'에 방점을 찍었음에도 롬니가 판세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공화당 전략의 실패로 보인다.

뉴욕타임스와 CBS가 6일 실시한 공동 출구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0%가 대선 최대 이슈로 경제를 꼽았다. 지금 경제는 10명 중 7명 이상(75%)이 좋지 않은 상황으로 봤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정치성향에 따라 다르게 인식했다. 오바마 지지자(88%)의 상당수는 "좋아지고 있다"고 봤고, 롬니 지지자(91%) 대부분은 "나빠지고 있다"고 답했다.

유권자들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경제정책 운용에 있어서는 오바마(45%)보다 롬니(51%)를 더 신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택은 오바마였다. 이는 경제를 어렵게 한 '원흉'이 현 정부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조사 응답자의 절반은 경제가 어려워진 책임이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에 있다고 했다. 오바마가 잘못한 탓이라는 응답은 10명 중 4명 수준이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개선된 고용지표를 만든 점도 한 번 더 기회를 얻는 데 효과를 봤다. 선거 나흘 전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고용통계를 보면 실업률은 7.9%를 기록했다. 전달보다 0.1%포인트 늘어나긴 했으나 두 달 연속 7%대를 유지했다. 미국 실업률은 올 9월 44개월 만에 7%대로 떨어졌다. 표면상 실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관건은 신규 취업자다. 10월 한 달간 새로 생긴 일자리 수는 17만1000개로 예상치(12만5000명 수준)를 웃돌며 9월(14만8000개)보다 2만3000개 많아졌다. 특히 신규 고용과 실업률이 함께 높아진 것은 구직을 단념해 기존에는 아예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았던 실업자들이 다시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노동시장이 신뢰를 찾는 신호로,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풀이했다.

허리케인 샌디, 생각보다 영향 적어

반면 100년 만에 큰 규모로 미 동부를 강타해 막판 변수로 예상됐던 허리케인 샌디는 생각보다 당락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54%가 샌디가 후보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영향을 받은 투표자(42%)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지난해 말 샌디 상륙으로 뉴욕, 뉴저지 등지의 피해가 커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 유세전을 접고 재난 상황에 국가를 이끄는 사령관이 됐다. 상대적으로 롬니의 노출은 줄었다. 공화당 선거고문 칼 로브는 "롬니가 샌디만 아니었으면 재정적자, 부채 등 경제 관련 이야기를 할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층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궂은 날씨에도 자가용을 몰고 투표장으로 갈 수 있지만 저소득층이 많은 민주당 지지들은 버스를 타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샌디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면 오히려 공화당에 유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바마와 롬니는 반 년간 선거운동을 치르며 각각 반전 기회를 여러 번 맞았다. 롬니는 지난 8월 젊은 공화당 강경파 폴 라이언 하원의원(42)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정부의 예산 삭감을 주장해 현 오바마 행정부와 대립해온 라이언은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카드'가 됐다. 지지율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했으나 중도파인 롬니의 이미지 쇄신에는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칼이 됐다. 오바마 캠프를 이끈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고문은 "롬니가 지지기반을 다지고 당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짜낸 구상으로 보이나 이는 실수였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라이언이 보수층 외 일반 유권자와 롬니가 멀어지게 한 요인도 됐다는 것이다.

10월 초 열린 1차 대선후보 TV토론은 오바마의 위기였다. '달변가'로 알려진 그는 이례적으로 무기력한 토론을 이어갔다. 유권자를 실망시켰고 롬니는 빈틈을 거침없이 공격했다. 4%포인트까지 앞섰던 오바마의 지지율은 토론 후 2%포인트 뒤처지는 상황으로 역전됐다. 그러나 바로 다음주 열린 부통령 후보 간 토론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민주당 백전노장 조 바이든 부통령(69)은 공화당 라이언 후보를 몰아붙였고, 대선후보의 2·3차 토론에서 오바마도 '평심'을 되찾으며 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롬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셈이다.

<김보미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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