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의 시리아, 자유와 평화를 꿈꾸다] 종교 차별·비민주 사회 넘기 위한 목숨 건 항쟁

입력 2012. 10. 31. 19:12 수정 2012. 10. 3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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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용광로, SNC

"혁명이 끝나면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가 되길 원하나요?"

"전혀요. 어느 종교든 차별받지 않는 민주주의, 시민사회가 돼야지요."

지난달 1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이마딘 알 라시드 다마스쿠스대 샤리아(이슬람법)대 학장은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독재에 항거해 중동 전역에서 확산된 '아랍의 봄'은 일부 국가에선 이슬람 원리주의로 회귀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시리아의 최고 종교 권력자는 이슬람 원리주의 사회로 귀결되길 원치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샤리아는 이슬람 사회에서 중요한 법이자 종교적 권위를 가진다. 장기 집권 중인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항한 라시드 교수는 시리아국가위원회(SNC) 공동설립자다.

모자이크 사회

지난 5~6일 이스탄불 '힐튼 가든 인' 호텔에서 진행된 집행위원회 회의에는 다양한 종교 인종 집단을 대표하는 집행위원들이 속속 모였다. 정권에서 탄압받다 망명한 정치인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10여명의 집행위원은 SNC의 최고 지도자다. 압둘아하드 아스테포(54) 등 일부 위원들은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고위 관계자를 만나 국제사회 개입을 촉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리아인들은 종교적으로 광신적이거나 맹목적이지는 않아요. 살라피스트나 지하드 같은 극단적 무슬림은 소수입니다. 아사드 정권이 기독교인에게 호의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기독교인이 많이 거주하는 자지라와 하사케 지역의 상당수 기독교인이 정권 때문에 해외로 도망쳤습니다. 정권은 혁명을 막기 위해 종교 세력간 갈등을 유발했어요. 일부 지역에선 갈등이 일어났지만 혁명을 방해할 만큼 거대한 문제는 아닙니다."(기독교인 아스테포 위원)

"사람들의 사상과 생각의 자유를 저해하는 종교는 종교로서의 의미가 없습니다. 헌법이 보장되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원해요.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종교와 민족 차이는 극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무슬림형제단 출신 모하메드 파룩 타이푸르 위원)

타이푸르 위원이 소속된 무슬림형제단(MB)은 이슬람권 최대 정치·사회단체다. 아사드 대통령의 친부(親父)인 하페즈는 무슬림형제단을 진압하기 위해 1982년 하마를 폭격해 3만여명이 학살당했다. 시리아의 '법령 49'는 무슬림형제단에 관계된 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 참여도 확대되고 있다.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알리야 만수르(32·여)씨는 "혁명의 계기가 된 '다르아 소년 고문 사건'을 최초 폭로한 사람은 남성이 아닌 여성 의사였다"며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여성 권익이 남성과 완전히 동일하기를 바란다"고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밝혔다. SNC의 여성은 약 15%다.

시리아는 중동에서도 특히 다양한 종교·인종이 어우러진 '모자이크 국가'다. 미국 의회 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종교 분포는 수니파 무슬림(74%), 시아파 무슬림과 하위 분파(16%), 기독교(10%) 순이다. 인종적으로는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인(90.3%) 외에 쿠르드, 투르크만, 아르메니안 등이 존재한다.

아사드 대통령은 소수 종교 집단에 해당하는 알라위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SNC에도 알라위파 활동가들이 포함돼 있다. '내서널 블록'에 소속된 우사마 슈르바지(33)씨는 "시리아 사태의 핵심이 종파 갈등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다"며 "혁명 초기부터 현재까지 정권 지지층인 알라위파에 대한 종파적 반대 입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정부 세력 통합

SNC는 지난달 창설 1주년을 맞았다. 조직의 최대 난제는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소수 정치 단체를 SNC라는 '정치 우산'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SNC는 70개국이 참여하는 외교 회담 '시리아의 친구들'로부터 유일하게 대표성을 인정받은 최대 반정부 연합체다.

반정부 정치 세력들의 통합을 가로막는 핵심 이유는 국제 사회 개입 여부다. SNC는 민간인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 개입을 지지한다. 아나스 압다흐(45) 위원은 "이라크 사태처럼 서방 세력이 한 국가의 자주성을 저해하는 행위는 원치 않는다"면서도 "민간인 보호를 위한 조치로서의 국제사회 개입은 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SNC는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과 협력하면서도 때로 노선 차이를 빚는다. 최근 반군이 아사드 정권을 옹호한 레바논 기자를 납치한 사례가 대표적 예다. 압둘바세트 시에다 SNC 위원장은 "혁명은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납치는 혁명과 절대 양립할 수 없다"고 반군을 비판했다.

반정부 세력의 분열이 시리아 사태를 장기화한다는 국제사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조지 사브라 대변인은 "야권이 통합되지 않는 문제가 사태 장기화의 핵심 이유는 아니다"면서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학살을 방임하는 국제사회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유"라고 지적했다.

다마스쿠스 근교 지키는 반군 인터뷰

"우리 부대에는 이슬람 수니파도 있고 기독교인도 있어요. 우리는 종교간 갈등을 빚고 있지 않습니다. 서방 언론은 왜 우리가 종교 때문에 싸운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부 아흐마드(44)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근교 깔라문 지역을 지키는 반군이다. 지난달 13일 스카이프로 진행된 40분간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마스쿠스는 정부군이 우세한 지역이다. 그는 "매일 폭격이 계속되고 있으며 반군은 수도에서 주로 방어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아흐마드는 평범한 상인이었다. 시위에 참여하거나 정부군에 고립된 지역에 식량을 조달하는 역할을 하다 깔라문의 파루끄(별을 뜻하는 아랍어) 부대에 합류했다. 그는 의사를 도와 부상당한 반군을 치료하고 있다. 홈스 알레포 이들립 등 전투가 치열한 지역에서는 의료진과 약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깔라문에는 의사가 있지만 홈스에는 약이 전혀 없습니다. 시체가 거리에 쌓여 있어요. 부상당하면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어요."

그는 정부군과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민간 부대인 샤비하 군인의 죽음을 보면서도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를 죽이지 않았다면 해치지 않았을 거예요. 죽어가는 정부군도 불쌍하지요. 이슬람 종교는 살인을 금지하고 있잖아요."

그는 "정부군 중에 상당수가 용병"이라며 "정부군의 계속된 이탈 때문에 정권이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에서 용병을 수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자와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은 전쟁의 최대 희생양이다. 끊임없이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 어떤지를 물었다. "아이가 죽는 걸 볼 때, 여자들 죽는 걸 볼 때…."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어떤 감정이 드는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시리아 사태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묻고 싶어요. 우리는 이렇게 소나 양, 닭처럼 죽고 있어요. 시리아라는 국가 안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어요."

아흐마드는 통화 중에 농담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폭격이 없습니다. 조용하죠. 어제 저녁에는 정부군의 공격이 두 차례 있었고 반군 몇 명이 다쳤어요. 참, 어제 정부군이 닭 농장도 공격했어요. 아사드가 동물도 못 살게 구네."

그는 "한국은 시리아 사태에 대해 잘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또 기자의 스카이프 화면에 저장된 희생당한 시리아 어린이 그림을 보고는 수차례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로. 한국에 시리아 상황을 자세히 전해주세요."

이스탄불=글·사진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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