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구미 가스 누출 사고

<구미 불산사고 한달> ②"언제까지 여기에…"

연합뉴스

기약 없는 새장 생활…"정부 믿을 수 없다"

"엄마 잘 있나"…뿔뿔이 흩어진 가족

(구미=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가만히 눈만 뜨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미쳐 버리겠습니다."

24일 경북 구미시 해평면 한 청소년수련원에서 만난 불산가스 피해지역 한 주민은 안부 인사에 이같이 대답했다. 이곳에는 어르신 20여명이 맥없이 앉아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발생한 구미 국가산업4단지 불산가스 누출사고로 대피한 산동면 임천리 주민이다.

사고가 난 지 한달이 됐으나 이들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가축을 돌보고 빨래를 하기 위해 잠깐씩 마을로 돌아가는 게 생활의 전부다.

공동시설로 대피한 주민들 가운데는 사고가 난 휴브글로벌 주변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 여파로 이 공장이 임시로 문을 닫는 바람에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피한 주민들 가운데 젊은 편인 송옥순(64·여)씨는 "새장 같은 곳에서 언제 나갈 수 있을 지…"라며 "도로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기약없이 주민들을 데려다 놓으니까, 공황상태가 뭔지 알겠어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불산가스 직격탄을 맞은 터전을 떠나 이곳에서 한달을 보낸 산동면 임천리 주민은 156명이다. 옆동네 봉산리 주민 95명은 백현리 환경자원화시설로 대피해 생활하고 있다.

임천리와 봉산리 주민은 모두 1천2백여명. 시설로 들어오지 않은 주민 대부분은 친척, 친구 등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다.

송씨는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다"며 "직장 때문에 외삼촌 집으로 보낸 딸과 전화를 할 때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 지 속상해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 있던 주민 김금석(78·여)씨는 "우리야 늙어 어쨌든 여생을 이어가겠지만 후대가 걱정"이라며 평생 농사 지으며 살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는 "며느리가 찾아와 앞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냐며 울고 난리가 났다"면서 "불산사고로 다들 예민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임천리와 봉산리에는 몸이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한두 밤을 보내는 이들도 간혹 있다.

두 시설로 대피한 주민 가운데 상당 수는 우울증과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다. 구미시는 주민에게 웃음치료와 요가 등 놀이치료를 하고 있다. 그러나 효과는 그때뿐이라고 한다.

구미시 평생교육원 정기한 강사는 "놀이치료를 할 때 어르신들의 표정이 잠시 밝아진다"면서도 "그 뒤에는 어르신 대부분의 눈빛이 다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차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민들은 구미시, 환경부 등 행정 당국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23일 환경부 주최로 산동면사무소에서 열릴 예정이던 주민설명회가 담당 공무원과 주민들의 마찰로 취소되기도 했다.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면사무소를 다녀왔다는 오정식(72)씨는 "정부가 사고 이튿날 안전하다며 다시 집으로 보냈다"며 "이랬다가 저랬다가 자꾸 말을 바꾸는 정부를 이젠 믿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일부 주민은 정부에 조속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구미시민에게서 서명을 받고 있다.

인적이 끊긴 산동면 임천리와 봉산리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개, 소 등 가축만이 남아 있다. 한창 추수를 해야 할 논밭에는 불산가스로 메마른 농작물만 가득 차 음산하다.

사고 발생 한달이 지났으나 이곳 주민들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불안과 절망 속에 살고 있다.

sunhy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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