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거리 10m "앞차 비상등 불빛도 안 보였다"

이환직 2015. 2.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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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영종대교 105중 추돌사고

복사 냉각 영향받는 '바다 위 대교' 택시와 리무진 버스 부딪히며 발생

운전자들 안전거리 미확보 가능성, 신공항하이웨이 조치 여부도 수사

11일 오전 인천공항에 출국하는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이모(52)씨는 영종대교에 진입하는 순간 갑자기 흐려진 시야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짙게 드리운 안개로 바로 앞 차의 점멸하는 비상등 불빛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속도를 시속 20~30㎞로 줄여 운행하다 앞에 버스가 서있어 가까스로 멈췄는데 뒤따라 오던 차량들이 잇따라 들이 받았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이모(29)씨도 "안개가 많이 껴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앞 좌석의 손잡이를 꼭 쥐고 있는데 버스가 급제동 했다. 큰 일이 나겠다는 예감이 엄습했고, 뒤이어 차들이 들이 받기 시작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사상자 65명을 낸 인천 영종대교 추돌사고는 짙은 안개 속 일부 운전자들의 부주의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1일 오전 9시 40분쯤 공항 리무진 버스와 택시 등 차량 106대가 연쇄 추돌한 영종대교 상부도로의 가시거리는 10~15m에 불과했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와 목격자들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인천기상대 등에 따르면 이날 사고 직전인 오전 9시 기준 인천공항 인근 가시거리는 약600m였다. 이날 오전 인천공항에는 가시거리가 400m 이하일 때 발효되는 저시정 경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영종대교에는 기상관측시설이 없어 정확한 가시거리 측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고현장이 습한 대기와 지표 온도가 떨어지는 복사 냉각 현상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바다 위 대교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시거리가 짧았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 영종대교에는 해무가 자주 발생하며, 2006년 11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때도 복사 냉각에 따른 짙은 안개가 한 원인으로 꼽혔다.

목격자들과 인천공항고속도로를 관리·운영하는 신공항하이웨이에 따르면 사고 당시 영종대교 노면 상태는 양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를 당한 한 운전자는 "노면이 미끄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신공항하이웨이 측도 "노면은 얼지 않았던 상태로 최근 며칠간 염화칼슘을 뿌린 적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운전자의 부주의도 하나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인천 서부경찰서에 설치된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사고 당시 영종대교 상부도로 1차로를 달리던 유모(60)씨의 택시가 앞서 가던 한모(62)씨의 택시와 추돌했고 2차로로 튕겨나간 한씨의 택시를 최모(58·여)씨의 리무진 버스가 들이 받았다. 이후 뒤에 쫓아오던 차량 100여대가 연쇄 추돌했다. 유씨는 조사에서 "어떤 차량이 내 차를 먼저 들이 받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고차량들이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았거나 과속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신공항하이웨이 측이 짙은 안개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신공항하이웨이 측은 사고 당시 전광판을 통해 영종대교의 최고 속도 시속 80㎞(인천공항고속도로는 시속 100㎞)보다 20% 감속 운행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로교통법에선 안개 등으로 가시거리가 100m 이내인 경우 최고 속도의 50%로 감속 운행을 하도록 했다.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는 "짙은 안개로 인해 가시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차량들이 연속적으로 추돌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운전자들의 안전운전 의무 위반 여부, 신공항하이웨이 측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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