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그리스를 가다 - 특파원 4신]"여전히 불안" "후유증 클 것" 투표 끝나도 어두운 얼굴들

아테네 | 정유진 특파원 입력 2015. 7. 5. 22:14 수정 2015. 7. 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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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던져진 주사위

▲ 투표소 나오는 시민들 희망·기대감 안 보여 세대·계급 간 갈등 드러나 “결과 어떻든 후유증 심각”

“투표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투표 결과에 따라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투표를 마친 지금도 답답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군인인 마놀리스(26)는 5일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근처 콜로나키 투표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 채권단의 긴축안 수용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마친 그리스 사람들의 표정은 투표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해 보였고 희망이나 기대감을 찾기 힘들었다. 아들을 데리고 투표소에 온 드미트리스(57)는 “7년간의 경제적 고통, 6일간의 경제 마비가 그리스를 분열시켰다”며 “공포, 분노, 굴욕감 속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꾸는 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리스는 최근 일주일 동안 찬성과 반대, 둘로 쪼개져 몸살을 앓았다. 특히 지난 5년간의 긴축 탓에 가중되는 실업난으로 고통받는 젊은이들 대부분과 저소득층은 ‘반대’를, 노인들과 중산층은 ‘찬성’을 지지해 세대 간·계급 간 갈등이 여실히 드러났다.

대학생인 마리아(21)는 “더 이상 긴축으로는 희망이 없다”면서 “찬성을 찍겠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지팡이를 짚거나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투표장에 도착한 백발의 노인들은 “내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리스는 유럽에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일간 아브기가 지난 3일 내놓은 설문조사를 보면 18~24세 중에서는 반대를 찍겠다는 답변이 71%로 압도적이었던 반면, 65세 이상은 찬성이 56%로 반대(26%)의 2배가 넘었다. 투표장에서 만난 그리스 언론인인 요르고스(43)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둘로 나뉜 이번 투표 때문에 그리스 전역에 걸친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오전 투표에 참여하면서 “누구도 국민 스스로 운명을 선택한 결정을 무시할 수 없다”며 “내일 우리는 유럽의 모든 국민을 위한 길을 열 것을 확신한다”면서 투표 결과를 낙관했다. 반면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독일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그리스 국민이 반대를 택한다면 다른 통화를 도입해야 할 것이고, 이는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경제가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스 경제전문가들조차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데 30년 이상이 걸린다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 예일대 스타디스 칼라바스 교수도 “반대가 이기든, 찬성이 이기든 그리스가 가야 할 길은 장미로 장식된 길이 결코 아니다”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일부에서는 사재기도 벌어졌다. 일부 슈퍼마켓에서는 우유, 쌀, 설탕, 밀가루, 초콜릿 등이 동났고 몇몇 약국의 의약품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장을 보러 나온 안드레스 아나스타시아(72)는 “빵, 스파게티 재료 등 비상식량을 준비해뒀지만 현금이 부족해 생각만큼 많이 사놓지 못했다”고 했다.

AP통신은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치프라스는 이전보다 진전된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불확실함이 가득 찬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테네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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