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마법' 가능케 한 건보료 체계

천관율 기자 2015. 5. 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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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직장인이고 2013년보다 2014년에 소득이 올랐다면, 4월 월급을 받아들고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 폭탄'에 치를 떨었을지 모른다. 매년 4월은 건보료 정산이 있는 달인데, 지난해에 소득이 늘어난 직장가입자는 4월에 추가 납부액이 발생한다. 올해 정산에서는 직장가입자 중 61.3%인 778만명이 건보료를 추가로 낸다. 개인 평균 12만4100원이다. 직장가입자 중 20%인 253만명은 소득이 줄어서 건보료를 돌려받는다.

매년 4월이면 돌아오는 '건보료 폭탄 논란'은 일종의 해프닝이다. 건보료 폭탄이 아니라, 냈어야 할 건보료를 뒤늦게 낸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래도 흔쾌한 기분이 들기는 쉽지 않다. 건보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낮아서, 정상적인 정산에도 여론은 쉽게 끓어오른다.

올해 2월 <시사IN>과 미디어리서치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세금과 복지에 대한 태도를 묻는 심층 여론조사를 한 바 있는데(<시사IN> 제388·389호 ' 세금과 복지 '바람'이 보인다 ' 기사 참조), 이때 건강보험에 대한 여론도 함께 물었다.

건보료의 공정성과 효능에 대한 신뢰가 모두 낮았다. 당시 응답자 중 67.3%가 '건보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공정하다'는 응답은 29%였다(모름·무응답 3.7%). '내는 건보료에 비해 받는 의료 혜택이 더 적다'는 의견도 51.8%로 절반을 넘겼다(<표 1> <표 2> 참조). 진짜 핵심은 어쩌다 보니 4월에 몰아내는 건보료 정산이 아니라, 애초에 불평등하게 설계되어 있는 건보료 부과체계다.

유명한 사례를 몇 가지만 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서울시장이 되기 전인 2000년부터 2002년까지, 175억원 자산가이면서도 건보료를 2만원도 내지 않았던 '건보 재테크의 달인'으로 손꼽힌다. 어떤 마법을 부렸을까.

건보 가입자는 크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뉜다(<표 3> 참조). MB가 정상적인 지역가입자로 잡히면, 재산 175억원과 금융소득·임대소득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한다. 100만원대 보험료가 예상된다.

그런데 직장가입자는 월급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매긴다. MB는 소유하고 있던 건물 세 채를 관리하는 회사 '대명기업'을 차렸다. 그리고 이 회사 대표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러면 MB는 직장가입자가 된다. '대명기업'에서 받는 급여를 최소한으로 잡아 건강보험료를 2만원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MB만큼은 아니지만, 직장인들을 흔히 좌절시키는 상황이 있다. 주식투자 수익, 재산에 따른 금융소득, 건물주로 받는 임대소득이 있는 직장인을 볼 때다. 예를 들어보자. 직장인 A는 근로소득만 있다. 연봉 4000만원이다. 반면에 직장인 B는 연봉은 3000만원이지만 물려받은 건물이 있어서 임대소득이 연 7000만원, 합산 연소득은 1억원이다.

누가 건보료를 더 많이 낼까? 답은 4000만원을 버는 A다. 현행 부과체계에서는, 근로소득 외의 종합소득이 연 7200만원을 넘어갈 때에만 건보료 부과 대상이 된다. B의 임대소득 7000만원은 건보료 산정에서는 무시된다.

건보 직장가입자 수는 1455만명이다. 이 중 1209만명은 A처럼 근로소득만 있다. 임대료를 받거나 주식 배당을 받는 등 별도의 종합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는 246만명인데, 이 중 종합소득 7200만원이 넘는 사람은 4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242만명은 B처럼 종합소득에 대해 건보료를 내지 않는 것이다.

MB의 '마법' 역시 이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지역가입자는 자산과 소득이 일일이 잡히지만, 직장가입자가 되면 종합소득은 7200만원까지 '보험료 면제점' 적용을 받고, 자산은 보험료 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MB는 직장을 '창조'하는 방법으로 직장가입자로 넘어왔다. 직장을 창조할 능력까지는 없는 자산 소유자들은 위장취업과 같은 탈법을 동원해서까지 직장가입자 전환을 시도한다. 건강보험공단이 적발한 직장가입자 허위 등록은 지난 5년간 7000건이다.

지난해 11월 임기를 마친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임 일주일 전 자신의 블로그에 '생계 곤란으로 자살했던 송파 세 모녀는 건강보험료로 5만원을 내야 했지만, 5억원 자산에 4000만원 가까이 연금도 받는 나는 건강보험료가 0원이다'라고 써서 건보료 부과체계의 모순을 지적했다.

연소득 1억1700만원인 사람도 '건보료 0원' 가능

김종대 이사장의 건보료가 0원이 되는 것은, 퇴직 후에 그가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등록되기 때문이다. 피부양자 제도는 직장가입자의 부양가족 보험료를 면제해주는 제도인데, 이 역시 광범위한 무임승차를 낳는다. 피부양자 인정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하다.

현행 부과체계에서 피부양자는 연금소득 4000만원, 금융소득 4000만원, 기타소득 4000만원을 각각 넘지 않으면 인정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세 종류의 종합소득이 각각 3900만원씩이어서 연소득 1억1700만원인 사람도 피부양자 등록 자격이 생기므로 건보료 0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송파 세 모녀'의 건보료가 소득 대비 과도한 5만원이나 책정된 것은, 지역가입자 중에서도 저소득층(연 500만원 이하)의 경우, 성별·연령·자동차·전세·월세 등의 간접 요소를 통해 소득을 '평가'해 보험료를 매기기 때문이다. 송파 세 모녀의 월세 50만원은 전세로 환산해 재산 3700만원으로 간주된다.

제도를 최초로 설계하던 1998년에는 직장인이 아닌 지역가입자의 소득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전세금이나 자동차와 같은 요소로 간접 평가를 했다. 하지만 국가의 소득 포착 능력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건보료를 왜곡시키는 요소가 된다.

이렇게 보면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크게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소득에 따라 일관성 있게 설계된 부가체계가 아니다. 대체로 직장가입자보다 지역가입자가 불리하고, 지역가입자 중에서도 송파 세 모녀와 같은 한계 계층이 더욱 불리한 구조다.

둘째, 고소득자가 무임승차할 수 있는 구멍이 너무 크다. 직장가입자는 종합소득 7200만원까지 보험료 대상에서 빠진다. 피부양자는 연금·금융·기타소득이 각각 4000만원까지 인정된다. 현행 부과체계 최대의 수혜자는 종합소득이 있는 근로자와, 피부양자 등록이 가능한 고소득 은퇴자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은 박근혜 정부가 정한 국정 과제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전문가 16명이 참여하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개선기획단'(이하 기획단)을 띄웠다. 기획단은 종합소득 보험료 면제점을 72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내리고, 피부양자 기준도 현재의 최대 1억2000만원(3종 소득 합산)에서 2000만원으로 내리는 안을 마련했다. '무임승차 차단선'을 2000만원에서 치겠다는 얘기다. '송파 세 모녀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도록 평가소득 제도를 폐지하고 최저보험료를 도입하기로 했다.

개편안은 현행 부과체계의 모순을 정확히 짚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도 출입기자단 설명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공표를 준비했다. 그런데 1월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돌연 개편안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는 연말정산 논란 이후 조세저항 여론이 정권을 뒤흔들고 있었다. 문형표 장관은 어쨌든 특정 계층의 보험료가 늘어나는 개편안을 발표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 숫자를 따져보면, 종합소득 기준을 내렸을 때 해당자는 27만명, 피부양자 기준을 강화했을 때 해당자는 19만명이다.

이들은 부담이 늘어난다기보다는 무임승차 상태가 해소되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하지만 고소득층 세금 부담 증가를 고리로 '세금폭탄론'을 퍼부었던 야당과 언론이 또다시 '건보료 폭탄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은 정부에게는 현실적인 공포였다.

내년 4월 총선 앞두고 '건보료 개편안' 후퇴하나

복지부가 손을 들어버린 이후, 정부와 새누리당은 건보료 개편을 주제로 지금까지 네 차례 당정 협의를 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기획단이 그려놓은 틀 자체를 흔들 가능성은 낮다. 다만 '무임승차 차단선 2000만원'이라는 기준선은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 일정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처지에서, 여론 주도층이자 이슈 고관심층인 고소득 은퇴자와 종합소득 보유자를 적으로 돌리고픈 정치인은 흔치 않다. 연말정산 파동 당시 언론은 고소득 은퇴자와 종합소득 보유자의 목소리를 과잉 대변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4000만원설'이 돌고 있다. 무임승차 차단선을 상당히 취약하게 만드는 후퇴다. 실제로 이루어지면, 웬만한 도시근로자 연봉에 해당하는 3000만원대 종합소득은 지금처럼 건보료를 면제받게 된다.

여당은 야당을 믿지 못한다. 기껏 취지에 맞는 건보료 개편안을 만들어 내놓았다가 야당이 '건보료 폭탄론'을 들고 나오면, 돈 문제의 속성상 여론전에서 밀릴 것이 걱정이다. 이 때문에 논의 단계 어딘가에서 여야 합의의 모양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 반대로 야당은 여당이 책임 있는 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독촉한다. 혹시나 터져 나올지 모를 정치권 책임론에 대비해 건보료 논의를 정부·여당 몫으로 미뤄두는 분위기다. 총선이 임박한 정치 일정까지 겹쳐 여야가 눈치작전에 들어가면서, 모처럼 방향을 제대로 잡은 건보료 개편안이 어이없이 사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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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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