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예멘 공습 중단.. 이란과 외교전서 '완패'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 대한 공습 중단을 선언했다. '아랍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해결사 노릇을 자처했지만 '이란의 힘'만 확인하고 서둘러 발을 뺀 모양새가 됐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방송은 21일 "오늘 밤 자정을 기점으로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연합군은 예멘의 후티반군에 대한 공습을 종료한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랍연합군의 아흐메디 알아시리 대변인은 "연합군은 예멘 군사작전에서 성취를 거뒀다"며 "이제 예멘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작전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작전명은 '희망의 복원'이라고 공개했다.
사우디는 정치협상에 나설 것처럼 밝혔지만, 예멘 사태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사우디가 아니다.
사우디는 지난달 26일 아랍국가들을 이끌고 호기롭게 예멘전에 뛰어들었으나 오히려 정치적 부담만 떠안았다. 사우디는 "후티반군의 전력을 80%가량 무력화시켰다"고 주장했지만 반군은 연일 맹공을 퍼부으며 예멘 수도 사나에 이어 남부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사우디·아랍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된 후 민간인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서 사우디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도 높아졌다. 지난 20일까지 세계보건기구(WHO) 집계에 따르면 사우디 공습 후 944명이 숨지고 3487명이 부상당했다. 유엔과 국경없는 의사회 등은 생지옥이 된 예멘의 모습을 전하며 사우디에 공습 중단을 촉구했다.
사우디에 더 뼈아픈 것은 이란의 외교적 영향력 강화다. 예멘 공습을 시작할 때 사우디가 겨냥한 것은 후티반군보다는 반군 뒤에 있는 이란이었다. 그러나 이란은 "반군과 관계없다"고 선을 그으며 "오히려 사우디의 개입이 예멘 평화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우디가 예멘에 로켓을 퍼붓는 동안 이란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핵협상 초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우디의 공습으로 예멘에서 84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 20일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예멘 사태를 위한 대화 테이블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우디로서는 '중동 평화의 적'으로 지목한 이란이 만드는 판에 불려나가는 형국이 됐다.
22일부터 이란과 핵협상 세부조율을 시작한 미국은 사우디의 공습중단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란도 "처음부터 이란은 군사적으로 예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며 뼈있는 논평을 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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