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아이들 가슴에 '멍'이 들었습니다

최고운 기자 2015. 3. 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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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 그 이후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천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 얼굴을 때리던 영상을 처음 봤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아마 다들 기억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때 나동그라지던 아이도 그렇지만 교사의 학대를 무릎을 꿇고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마 제가 18개월 딸 아이를 둔 엄마라서 그랬을 겁니다.

왜 아이들이 울지 않지? 아이는 어른이 혼내거나 무섭게 굴면 보통 우는데, 왜 가만히 쳐다만 보는 거지? 저는 나중에 전문가에게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런 아이들의 상황이 전문용어로 '경직(freezing)'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시 아이들은 너무도 충격적인 상황에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 말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던 겁니다. 어른도 충격을 받으면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데 어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요.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경직된 상태를 보며 학대가 반복해서 일어났으리라 추정했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는 사법처리를 받게 되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는 어떻게 치료되고 있는지 무척 신경이 쓰였습니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는 언론의 주목도가 높았던 사건인 만큼 상당히 다방면에서 대책이 추진됐습니다.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 보육교사 자질 향상 방안, 어린이집 CCTV 설치 문제 등이 주로 거론됐죠. 제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건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사후 대책, 아이들에 대한 심리 지원 문제였습니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의 경우, 상당히 이례적으로 긴급 심리지원팀이 꾸려졌습니다. 난관이 많았습니다. 일단, 심리지원을 담당할 전문가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웠습니다. 영유아 정신건강 전문가가 워낙 적은 것도 그렇지만 인천을 꾸준히 오가며 아이들을 치료해야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나영이 주치의로 유명한 신의진 의원의 인맥이 한몫했습니다. 이경숙 교수, 박진아 교수 등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흔쾌히 나서면서 다행히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심리지원팀이 활동할 장소를 구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학대받은 어린이집이 아니면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장소를 찾기까지 많은 품이 들어갔습니다. 부랴부랴 송도 보건지소 영양 교육실 벽을 뜯어내 아이들을 치료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신의진 의원 방에 설치된 프린터를 떼다가 설치할 정도로 급박하게 움직인 끝에 아늑하면서도 널찍한 공간이 생겨났습니다.

전문가들이 살펴본 아이들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화면 속 그 아이들, 교사가 아이를 때리던 현장에 있었던 16명의 아이들 가운데 11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5명도 정서와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어른의 잘못으로 꽃 같은 아이들의 마음에 멍이 든 겁니다.

(사례1) 밤에 잠을 자다가 일어나 "잘못했어요." 하며 울거나

(사례2) "걔(친구)가 김치를 안 먹어서 맞은 거야." 라며 상황을 중얼거리는 아이가 생겨났습니다.

(사례3) 경찰이 교사를 잡아갔으니까 안심하라는 말에도 "선생님이 커? 경찰이 커?" 하고 물으며 불안해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치료적 보육'을 시도했습니다. 단어를 뜯어보면 모르는 말이 없지만 합쳐 놓으면 굉장히 생소한 '치료적 보육'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접근 방법입니다. 아이들하고 치료사가 1대 1로 개별 놀이치료 하는 방식을 집단의 형식에 적용하는 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보육 장면에 치료사가 들어가 문제를 가진 아이의 심리상태를 관찰하면서 집단에 다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입니다.

'치료적 보육'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다 보니 혼란도 적지 않았습니다. 담당 공무원, 보육교사, 심지어 아이들의 부모님까지도 아이들을 집에서 안정되게 보호하고 필요할 때 치료하면 되지 왜 그 집단에 다시 적응을 시켜야 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꾸준한 설득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집 아이들은 일상적인 생활의 반 이상이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적응해야 되는 나이라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집안에서 아이들을 잘 보호해주고 개별 놀이치료를 통해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집단에서 경험했던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어주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보다 더 어려운 점은 아이들이 보육 장면에 다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학대나 외상경험을 받았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행동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거나, 선생님들이 다가가 이야기를 해주려고 할 때 피하고 구석에 가 있는 등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치료기간 동안 아이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불안-우울 증세와 공격적 행동이 줄어들고 수면 장애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학대받은 경험을 무방비 상태에서 막 주절거리는 이상 행동도 통계적으로 많이 줄었습니다. 치료 막바지에 다시 심리 검사를 했더니 다행히 보통 아이들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는 마음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뇌 발달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치료를 서두르는 게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치료적 보육'의 효과가 부모님들의 입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아동학대를 겪은 다른 지역의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도 같은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에만 예외적으로 지원됐을 뿐, 법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는 부결됐던 영유아보육법 재처리에 나섭니다. 그 때가 되면 또다시 물리적 해결책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겠죠. CCTV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교사 처우 개선비는 올리는 게 좋은지 유지하는 게 좋은지 등등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에 보이는 대책 마련에 급급해하는 사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하지 않을까요?최고운 기자 gow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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