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인천 어린이집 뉴스 못 보겠더라.. 8년 前 죽은 내 아이가 생각나서"

울산/신정선 기자 2015. 1. 2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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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7일 오후 3시 30분 울산 북구의 이상윤(46)씨는 잇따라 울리는 휴대폰을 받았다. 어린이집에 맡겨둔 둘째 아들 성민이의 두 돌 하루 전이었다. 선물로 줄 운동화와 옷을 챙기던 그를 찾은 것은 모친이었다. "성민이가 병원에 있단다! 빨리 가봐라. 나도 가고 있다."

모친이 일러준 경주 동국대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간 이씨에게 병원 직원은 "아이는 영안실에 있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하던 이씨는 냉동고에 들어간 시신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키 89㎝ 작은 몸은 멍과 생채기투성이였다. 이마, 코, 손등, 입 주위 곳곳이 검고 붉은 자국이었다. 왼쪽 눈자위는 피멍으로 덮여 있었다. 배는 가슴 언저리까지 산처럼 부풀어 있었다. 오열조차 못하고 있는 이씨에게 다가온 어린이집 원장 A(36)씨가 말했다. "성민이가 두유를 먹다가 그만…."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폭행 사건 이후, 잊혔던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8년 전 울산 성민이의 죽음을 재수사해달라는 인터넷 청원 글에는 수천 명이 서명했다. "큰아들에게 다시 아픔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부하던 이씨는 지난 20일 울산 북구 자택에서 어렵게 입을 뗐다. 이씨는 "인천 폭행 사건 뉴스를 들으니 성민이가 생각나 귀를 막고 싶을 정도"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을 그렇게 보낸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던 이씨는 "돌이켜보니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든다"고 말했다.

소장 한가운데가 완전히 절단…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졌다"

이씨는 2006년 3월 이혼 후 두 아들 성진이(가명·사건 당시 6세)와 성민이를 키웠다. 조선소 용접일을 하며 울산 인근에서 일감이 생길 때마다 출장을 다녔다. 매일 아이들을 돌볼 형편이 안 된 이씨는 사건 석 달 전부터 24시간 맡아주는 H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맡겼다. 원장 A씨와 남편 B(30)씨가 자신들이 사는 방 4개짜리 아파트에서 아이들 20명을 맡아 돌보던 곳이었다. 어린이집 교사는 A씨를 포함해 5명이었다. 통학 차량을 운전하던 남편 B씨는 교사가 되겠다고 경주 S전문대 아동미술보육과에 다녔다.

이씨와 성진·성민 형제는 금요일 밤에 만나고 일요일 저녁에 헤어지는 주말 가족으로 지냈다. 두 아들은 헤어질 때마다 아빠의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매달렸다. 이씨는 "저와 떨어지기 싫은 투정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겁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성민이의 사인은 소장(小腸) 파열에 의한 복막염이었다. 장 한가운데가 완전히 절단된 드문 경우였다. 끊어진 틈으로 이물질이 흘러나와 염증을 일으켜 복막염이 됐다. 부검의는 강력한 외부의 힘에 의한 파열로 봤다. 주먹으로 직접 복부를 가격하거나 막대기로 찌르는 경우에 발생하는 경우라는 소견이었다. 소장이 파열되고 수일이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부검 때 머리카락을 밀어내자 드러나지 않던 멍이 여러 개 발견됐다. 발생 시기가 각기 다르고, 반복된 충격으로 생긴 멍이었다. 손등과 손바닥에는 방어흔(공격을 무의식적으로 막으려다 생긴 상처)이 보였다. 특히 아동 학대의 중요한 지표인 윗입술주름띠(윗입술과 잇몸을 이어주는 피부 조직) 파열도 확인됐다.

성민이가 사망한 17일은 목요일이었다. 이씨는 주말에만 아이를 봤기 때문에, 14일 월요일부터 사망 당일까지 상황은 원장 부부의 진술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 나중에 2심 법원이 "석연치 않다"고 지적한 B씨의 17일 행적은 오전 10시 성민이만 데리고 경주로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B씨는 경찰에서 "학교에서 대출한 책을 반납하기 위해서 갔다"고 주장했다. 가는 김에 경주 소아과에 성민이를 보여주려고 데려갔다고 했다. 의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성민이 눈가의 피멍이었다. 사흘 전인 14일 성민이가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져 이마에 멍이 들었는데, 그 멍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며 진해져 눈가에 피멍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B씨 부부의 주장이다.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진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교사들이 출근하기 전인 오전 8시 발생한 상황이라고 부부는 주장했다. B씨는 "욕실에 있는데 쿵 소리가 들렸다"고 했고, A씨는 "부엌에서 일하는데 쿵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부부가 가보니 성민이가 피아노 앞에서 엎어져 칭얼거리고 있었고, 형 성진이가 피아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어서 피아노에서 떨어진 걸로 알았다는 것이다. 부부는 "성민이가 식탐이 강해서 피아노 위에 있던 사탕을 먹으려고 올라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는 B씨는 학교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친구를 만나고, 교수 면담을 하고, 약국에 가서 입술 연고를 사고, 마트에서 두유를 구매했다. B씨는 "성민이가 워낙 자주 떨어지고 말썽을 피워서 빨리 병원에 갈 생각을 못했다"고 진술했다. 성민이가 구토하는 것 같아서 마침 근처에 있던 본가(本家)에 데려가서 두유를 먹였더니 "맛있다"고 받아먹다가 구토가 심해졌다고 했다. B씨가 등을 두드리고 인공호흡을 하다 아내 A씨에게 부탁해 119를 불렀으나 구급차가 왔을 때는 이미 숨을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공호흡을 하며 코로 바람을 불어넣었더니 배가 부풀어 올랐다고 주장했다.

B씨의 주장에 따르면, 얼굴의 여러 생채기는 인공호흡을 하느라 아이 몸을 뒤집다가 생겼다. 손등의 멍은 플라스틱 책상이 쓰러질 때 찍혀서 생겼고, 얼굴 멍은 싱크대에 부딪혀서 생겼다. 형 성진이가 좋아하는 비행기 타기 놀이를 해줬더니 어지럽다고 머리를 흔들다 옆에 있던 동생 얼굴을 박아서 든 멍도 있다고 했다. 윗입술주름띠 파열은 방에서 나오다가 넘어져서 생겼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린이집 교사들은 "성민이는 평소에 떨어지거나 부딪혀서 다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장 파열 상태로 보아 사망하기 최소 몇 시간, 최대 이틀 전에는 심한 복통을 호소했을 것이라고 부검의는 지적했다. B씨는 "두유를 먹기 전까지 잘 먹고 잘 놀았다"고 주장했다. 새벽에 심하게 아이 우는 소리가 났다는 이웃 주민의 증언이 있었으나 "잠귀가 어두워서 모르겠다"고 했다.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시행 불과 5개월… "인식 강화 시발점으로"

사건 직후 상해치사, 업무상과실치사, 아동복지법 위반,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선 원장 부부는 "절대로 아이를 때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피아노에서 떨어져 장이 파열돼 사망한 것이며, 병원에 늦게 데려간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피아노 의자의 높이는 약 75㎝다.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충격으로는 소장이 파열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1심에서는 '피아노에서 추락하면서 의자 모서리에 배를 부딪혀 소장에 손상을 입었고, 염증 반응이 진행되다 4일 후 소장이 파열되면서 완전히 절단돼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형 성진이는 "동생이 맞는 걸 여러 번 봤다"며 B씨의 폭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동생의 죽음으로 정서 불안과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어 증언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얼굴 상처는 인공호흡하다 생겼다는 B씨의 주장도 인정됐다. 윗입술주름띠 파열은 아동 학대 이외의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부검의 소견, 서울대 법의학연구소 의견서, 경찰의 수사보고 등은 주로 문헌에 기초했거나 추측에 불과해 믿기 어렵다고 봤다. '피아노 추락' 이후 4일간 방치한 업무상과실치사만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년,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내렸다.

부부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2심에서는 "피아노 정도의 높이에서 추락해 소장이 파열됐다는 주장에는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부검감정서와 형 성진이의 증언은 신빙성이 있다고 했으나, 상해치사를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부부는 학대로 인한 아동복지법 위반이 추가돼 A씨는 징역 1년 6월, B씨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대법원에서는 2심대로 확정됐다. 끝까지 폭행 혐의를 부인한 B씨는 "세심하게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형이 확정된 사건은 다시 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따라 부부는 다시 재판받지 않는다. 아동 학대 문제 전문가인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8년 전만 해도 법원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아동 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이 극히 희박했다"며 "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특례법이 시행된 것도 불과 5개월 전으로, 우리 사회가 이제야 아동 보호에 대한 개념에 눈을 떠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국회에서 제정돼 지난해 9월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은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 관장은 "아동 문제 전문가여야 할 보육교사가 아동 학대에 대한 개념조차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강령에 아동 인권에 대한 부분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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