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佛 법원 "만평이 선정적이라도 표현의 자유 남용 안해"

조성은 기자 입력 2015. 1. 27. 00:50 수정 2015. 1. 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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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엡도 테러로 본 '표현의 자유' 역사적 논쟁

"프랑스는 정교분리 원칙을 둔 다원주의 사회다. 종교를 믿을 자유는 그 종교를 비판할 자유와 분리될 수 없다."

2007년 3월 22일 프랑스 파리 경범죄법원 17호 법정. 판사가 천천히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여기에는 신앙의 주체 및 대상을 표현할 자유도 마찬가지로 포함된다. 한 종교를 얼마나 모욕하든 간에 신성모독죄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해 전인 2006년 2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꼰 만평을 실었다. '근본주의자들에게 시달리는 무함마드'라는 제목 아래 검은 옷을 입은 무함마드가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며 "바보들에게 사랑받기란 쉽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림이다. 출간 이후 격분한 무슬림들은 샤를리 엡도를 증오발언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날 열린 공판에서 법원은 "아무도 샤를리 엡도를 사서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며 "만평이 아무리 선정적·충격적이라도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았다"고 무죄 판결했다. 르몽드는 이 판결문에 대해 "200여년간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정치·종교적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표현의 자유가 탄생한 배경은 1789년 프랑스혁명이다. 같은 해 8월 제헌국민의회가 채택한 프랑스인권선언 제11조는 '사상·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귀중한 권리다.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발언·기술·인쇄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탄생 직후부터 격렬한 논쟁에 휘말리며 순탄치 않은 여정을 예고했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세운 제1제정도, 나폴레옹 몰락 이후 수립된 왕정도 표현의 자유를 옥죄었다. 1830년대에 활동한 만평작가 오노레 도미에는 당시 군주였던 루이 필리프를 풍자한 만평을 잇달아 그리다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왕의 투실투실한 얼굴을 과일인 배에 비유하는가 하면, 16세기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에 등장한 거인 '가르강튀아'에 빗대 백성의 고혈을 짜는 폭군으로 묘사했다.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아돌프 티에리가 1835년 제정한 법률은 '왕에 대한 모독은 곧 왕의 인격과 법적 권위에 대한 증오와 멸시다. 고로 국가 안보를 중대하게 침해한다'고 규정했다. 40여년 후 제2제정을 폐지하고 들어선 제3공화정도 표현의 자유 보장에는 인색했다. 1881년 통과된 언론자유법은 프랑스 대통령과 해외 국가원수에 대한 모욕을 엄격히 금지했다.

결정적인 전환은 20세기가 지나서야 찾아왔다.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1968년 5월 혁명이 그 계기다. 샤를 드골 행정부에 대한 규탄 시위로 출발한 혁명은 기존 보수적 가치와 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진다. 샤를리 엡도 만평가들 또한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다.

언론 전문 변호사 바질 아데르는 샤를리 엡도 만평가들을 '선구자'라 칭하며 "당시까지 저속하고 외설적이라 배척받아왔던 것들을 과감히 시도했다"고 평가했다. 1976년 유럽인권법원이 "창작물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충격에 빠뜨리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민주주의 사회에 필수적인 다원주의, 관용, 개방정신이 이를 요청한다"고 판시하면서 사실상 논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종교계가 중심이 돼 이러한 움직임에 '반격'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 2006년 프랑스 법원은 가톨릭교회가 제기한 2건의 광고게재금지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첫 번째는 프랑스 에이즈예방협회가 제작한 '신성한 콘돔'이란 광고로, 어깨 맨살을 드러낸 수녀 옆에 피임기구가 그려진 그림이다. 다른 하나는 패션업체 '마리테 프랑수아 저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광고로, 예수와 12제자를 선정적인 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들로 대체했다. 프랑스 법원은 "(이 광고들이) 의도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을 모독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신앙을 위협하지도 않는다"며 표현의 자유의 한도를 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바로 '인종주의'다. 유대인 수백만명을 학살한 나치의 악몽이 지금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법원은 반(反)유대주의 성향 코미디언 '디유도네 음발라 음발라'에 대해 2006∼2012년 사이 6차례에 걸쳐 4500∼1만 유로(약 550만∼1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유대인은 사기꾼이다" "홀로코스트 추모행사는 포르노 기념행사다" 등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2007년 판결에서 법원은 "(그의 발언은) 한 집단을 특정 인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모욕하는 것"이라며 "이 경우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디유도네는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오늘밤 샤를리 쿨리발리(파리 테러범 중 한 명의 이름) 같은 기분"이라고 썼다가 테러선동 혐의로 또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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