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사태 그 이후, "고발하고 왕따됐어요"

입력 2015. 2. 14. 13:39 수정 2015. 2. 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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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커녕 고발 대리점주에 집요한 보복… 밀어내기 줄었지만 '을'의 설움 여전

[미디어오늘 이하늬 이재진 장슬기 기자]

이제 한국사회에서 '갑질' 이라는 말은 전혀 새롭지 않다. 시작은 2013년 남양유업 사태였다. 국민들은 남양유업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여론이 악화되자 남양유업 경영진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후 편의점, 택배 노동자 등 수많은 '을'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때마다 '갑'들의 사과도 이어졌다. 1년 6개월이 지났다. 당시 상황은 얼마나 개선 됐을까. 미디어오늘이 남양유업, CU편의점, 배상면주가, CJ대한통운 사건의 이후를 살펴봤다.

# 남양유업 "회사 고발하고 왕따됐어요"

'밀어내기' 논란 이후 1년 6개월, 여전히 남양유업 대리점을 하고 있는 김대형(36)씨는 사과는 커녕 소위 '왕따' 취급을 받고 있다. 논란 당시 결성된 피해대리점협의회에 소속됐다는 이유다. 협의회는 총 109명의 전현직 대리점주들로 구성됐고 이 중 33명이 현직이다. 김씨는 "남양유업을 사회에 고발한 당사자이고 현직에 남아있기 때문에 너희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대리점주 33명은 남양유업 차원의 교육이나 판촉상품을 제공받지 못한다. 김씨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정책이나 거래처에 서비스를 설명하는 교육이 있는데 2013년 상생협약 이후부터는 한 번도 교육에 못갔다"며 "교육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남양유업과 해당 대리점들은 2013년 상생협약 이후 연락조차 오가지 않는 상황이다.

▲ 남양유업 김웅 대표이사(가운데 오른쪽)와 본부장급 임원들이 서울시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판촉상품 제공은 실질적인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양유업은 주기적으로 특정 상품에 대해 할인행사를 벌이는데 이때 해당 점주들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똑같은 우유가 A지역에서는 1000원인데 B지역에서는 700원에 판매되는 일이 벌어진다. 김씨는 "이렇게 되면 거래처랑 마찰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며 "거래처에서 '왜 이렇게 마진을 많이 남겨먹냐'고 할때마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거래확인서를 제공하지 않는 일도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대리점은 남양유업에서 물건을 받고 돈을 준다. 이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거래확인서다. 물건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또 돈이 얼마나 지불돼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김씨는 "거래확인서를 보여주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며 계약서 준수사항인데 우리한테만 이걸 지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당연하게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던 사과도 없었다. 당시 밀어내기와 영업사원의 욕설 등을 고발한 김웅배씨는 아직까지도 사과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30대 영업사원은 50대인 김씨에게 "죽기 싫으면 (물건) 받으라고요. (물건을 받고) 버리든가. 버려 그럼. 망해 그러면. 망하라고요. 망해 이 XXX아" 등의 막말을 했지만 당사자 및 대리점주에게 남양유업의 사과는 없었다.

그럼 당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밀어내기 횡포는 근절됐을까. 김씨는 "다행히 그 이후에 밀어내기는 어느 정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상생협약에는 구매와 판매목표를 부당하게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공급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협약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회사와 협의회가 각각 3명씩 지명해 상생위원회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밀어내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서울고법 행정2부(이강원 부장판사)는 '밀어내기'로 부과된 124억 원의 과징금 중 5억 원만 내라고 판결했다. 판촉사원의 임금을 대리점에 전가한 부분은 인정했지만 밀어내기를 강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김씨는 "법원이 과징금을 축소한 것에 대해 저 혼자 공정위에 가서 재신고를 했다"며 "너무 화가 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 씨유편의점 "3명이 죽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비슷한 시기 경기 용인에서 씨유 편의점을 운영하던 50대 남성이 본사 직원과 술자리에서 다툼을 벌이던 중 약국으로 달려가 수면유도제를 먹고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씨유는 해당 점주 자살 직후 사망진단서를 변조해 언론에 배포했다. 사망원인 가운데 '항히스타민제(수면유도제 성분) 중독' 이라는 부분을 삭제해 마치 고인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조작한 것이다.

씨유 편의점주의 자살은 용인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씨유 편의점주는 3명이나 된다. 앞서 1월에 목숨을 끊은 거제 씨유 편의점주는 32세의 청년이었다. 당시 유족은 편의점 가맹본부의 불공정 계약 때문에 자살을 택했다고 주장했다. 심야에 손님이 없어도 24시간 영업을 해야하는 강제 규정, 매출의 35%를 본사에 수수료로 지급해야 하는 규정, 폐점 위약금 수천만원 등이 고인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현재 어머니 명의의 씨유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원창배(52)씨는 "전반적으로 보면 2013년도보다는 좋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고 입을 뗐다. 먼저 김씨는 중도해지 위약금 기간이 1년에서 6개월이나 3개월 수준으로 줄어든 것을 높게 평가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편의점주는 1년치 매출액을 계산해 본사에 35%를 물어줘야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약금 금액이 줄었을 뿐이지 여전히 문제의 소지는 다분하다. 편의점주가 영업을 하는 동안 적자가 나더라도 가맹본부는 계속해서 매출의 35%를 걷어들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이 때문에 원씨는 "인테리어 위약금은 물어주는 게 맞다고 쳐도 적자가 나서 빚을 안고 폐점하는 사람들한테 3개월, 6개월 위약금을 물라는 건 말이 안된다"며 "매출이 저조해서 폐점하는 경우에는 위약금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심야에 손님이 없어도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 강제 규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문을 닫을 수 있는 시간이 오전 1시부터 오전6시까지로만 한정돼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원씨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심야에 장사가 잘 된다면 문을 닫으라고 해도 안 닫을 것"이라며 "심야시간을 현실적으로 쉴 수 있는 오후 11시에서 오전 7시 정도로 조정을 해주거나 아예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씨는 무엇보다 처음 계약시에 가맹본부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는 것부터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처음 편의점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매출이 돼야 이익이 발생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인데, 가맹본부에서는 사탕발림만 한다는 것이다. 가맹본부에서는 인근 5개 점포의 매출액만 제공할 뿐이라고 한다. 원씨는 "한 건물 안에서도 매출이 천차만별인 게 편의점"이라며 "이렇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놓고 나중에 위약금을 물라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 배상면주가 대표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리점주를 조문 후 유가족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다.

# 배상면주가 밀어내기 보상은 받았지만

주류 업체 배상면주가에서도 '밀어내기'로 인해 대리점주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배상면주가 인천부평지역 대리점 점장 이아무개씨(44)는 지난 2013년 5월 배상면주가의 밀어내기 횡포와 빚 독촉에 시달렸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유통기간이 10일 정도 밖에 안되는 '우리쌀 막걸리'를 대리점주들에게 일방적으로 물품을 공급해 밀어내기를 하고 반품을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

이씨의 자살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배상면주가의 밀어내기 행위는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2010년 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우리쌀 생막걸리가 유통기간이 짧아 잔여물량에 대한 폐기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74개 전속 도매점에 대해 주문 외 잔여물량을 배당했고 잉여물량도 임의로 배당해 제품대금을 회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조업감시과는 밀어내기 관행에 대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밀어내기 횡포에 비하면 과징금이 턱없이 적다는 비판이 나왔고 특히 검찰 고발 조치도 대표 이사가 아닌 법인에 한정됐다. 제조업감시과 강신민 과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배상면주가 막걸리 매출액이 30억이 되지 않아 매출액에 대한 2~4%를 적용해 900만원 과징금을 물은 것"이라며 "행위 자체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규모 자체는 적었다"고 말했다.

배상면주가는 발빠르게 밀어내기 관행을 시인하고 상생안을 논의했지만 사실상 합의안은 도출해내지 못했다. 먼저 상생방안으로 논의됐던 지역 영업권 보장은 사측과 공정거래위원회에 막혀 관철하지 못했다. 배상면주가는 당초 지역별로 자사 대리점에만 상품을 공급하는 지역영업권을 보장하다가 지키지 않았다. 자살한 이씨는 유서에서 "10년을 충성하고 누구보다 회사를 믿고 따른 이 대리점에 이제는 지역제한(해제)이란 칼을 꽂는다"라고 쓰기도 했다.

자살 사건 당시 지역 대리점주들과 함께 상생안을 논의했던 이동주 전국을비대위 정책실장은 "파는 물건의 속성상 사측과 전속계약이라고 해서 특정 주류만 판매한 것에 대해 계약을 깬 것은 사측의 영업 전략이 바뀐 것이고 도매업체한테도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대리점주 입장에서는 영업권을 뺏긴 것"이라며 "공정위가 정책적으로 이런 환경을 만들어줬다. 대리점주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하지만 공정위는 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 특정 계약을 비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가 시장만능주의에 빠지면서 말 그대로 특약 형태의 특수성과 개별성을 보지 않고 있다. 배상면주가 뿐 아니라 남양유업과 같이 전속 계약을 특징으로 하는 시장에서는 공정위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이상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신민 과장은 "공정위는 기업 영업권을 지역적으로 고정해 관할하는 것을 위법으로 본다"며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경쟁이 활성화돼야 한다. 대리점이 한 지역에서 팔라고 고정을 해버리면 독점이 구축되기 때문에 경쟁법에 서로 배치된다"고 해명했다.

배상면주가 마케팅 관계자는 "지역제한 영업권 문제는 공정위 차원에서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봐서 보장을 할 수 없다"며 "지역제한 영업권에 대한 부분에 있어 보상을 하는 형식으로 대리점주들과 원만히 협의했다"고 말했다.

▲ 여의도에 멈춰선 CJ대한통운 택배차량. 사진=노컷뉴스

# CJ대한통운 수수료 2년 동안 협상 중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이 지난 2013년 5월 4일부터 19일까지 집단 운송을 거부했다. 택배업체간 과당 경쟁으로 택배 가격이 하락하면서 택배기사들의 처우가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정도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씩 일하는데 사측이 일방적으로 페널티 제도를 도입하고 수수료를 삭감했다며 항의하고 나섰다.

윤정학 당시 비대위원장은 "CJ와 대한통운이 통합하면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당시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는 "CJ GLS와 대한통운이 합병하면서 건당 900원이 넘었던 택배 운송수수료가 800원으로 내려갔다"며 운송 거부 이유를 밝혔다.

페널티 제도도 문제였다. 고객정보에 오류가 있거나 고객이 물건을 못 받으면 기사들에게 페널티 3만원이 부과되고, 고객과 언쟁이 생기면 10만원의 페널티가 부과된다. 그 외 물품 파손, 분실 문제가 발생해도 택배 노동자가 책임져야 한다. CJ와 대한통운이 통합하기 전에도 각종 페널티 제도가 있었지만 통합 이후 부담이 더 커졌다.

지난 10여 년 동안 물가와 유가는 지속적으로 올랐지만 배송수수료는 동결되거나 인하됐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국내 택배 평균단가는 3500원이었지만 2012년 평균단가는 2460원이다. 지난해 평균 단가는 2449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이중 택배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800원 정도이며 여기에서 유류비 등 각종 금액이 빠진다. 미국이 평균단가 1만원, 일본이 7000원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파업은 보름정도 지속됐다. 지난 2013년 5월 18일부터 CJ대한통운과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는 밤샘 협상을 벌였고, 19일 합의안을 도출해 업무에 복귀했다. 수입 보전 및 페널티 제도 폐지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택배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의 협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페널티 제도는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지 않지만 규정상 제도는 남아있다. 파업 당시 CJ대한통운 비대위원장이었던 윤정학씨는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오래 걸렸지만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다"며 "배송 수수료에 대해서는 인센티브제 등의 보완 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불공정한 페널티 제도에 대해서는 거의 폐지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 2위인 KGB택배가 지난해 5월 배송수수료를 최대 1200원까지 올린 사실, CJ대한통운의 실적이 좋아진 점 등은 택배 노동자 삶의 개선 가능성을 보여준다. CJ대한통운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76% 늘어난 592억원을 기록했고 당기순이익도 370억원을 기록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택배 물동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택배사업 부문의 성장이 실적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택배 업계의 과당경쟁 구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수급사업자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경영상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히고 조사에 들어갔다. 을의 입장이었던 수급사업자가 CJ대한통운과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업무를 진행해 CJ대한통운이 하도급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갑질 논란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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