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슈퍼 갑'

입력 2014. 12. 22. 11:36 수정 2014. 12. 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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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 제공 서비스를 트집잡아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고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한 이른바 '땅콩회항'사건 재벌3세 부사장의 '슈퍼갑'질에 대한 나라안팎의 비난이 거셉니다.

수백명의 승객이 탄 비행기를 사유물로, 직원을 아랫사람으로 부리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을 따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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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더슨 쿠퍼 / CNN 앵커▶

정말 이해하기 어렵네요. '마카다미아 넛'을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째 갖다 줘서라고 합니다. 정말입니다.

◀일본 후지TV▶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 때 일등석에서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美 인터넷 뉴스▶

대한항공 오너의 딸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인해 부사장 직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국내 최대 항공사의 사주 일가이자 임원이 승무원에게 내리라고 명령하고, 비행기를 되돌린 사건.

처음엔 어이없는 해프닝 쯤으로 여겼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온 국민의 관심과 분노의 대상이 됐고 외신들은 앞다퉈 조롱거리로 삼았습니다.

일이 왜 이렇게 커진 걸까요?"

지난 8일 사건이 보도된 뒤, 대한항공이 처음 내놓은 공식입장은 램프리턴은 지나친 행동이었지만 담당 임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장이 변명과 거짓으로 둘러댔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현아 부사장을 보호하고 책임을 직원에게 돌리려는 태도에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장진영 / 변호사▶

운항중의 비행기에서는 기장과 승무원이 기내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사법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법경찰관입니다. 범인이 경찰관을 잡아가지고 무릎 꿇리고 내쫓은 아주 특이한..

다음 날 대한항공은 조부사장이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가 부사장 직함과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유지한 '무늬만 사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흘이 지난 12일, 조사를 받으러 나온 자리.

◀조현아 / 대한항공 전 부사장▶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항공기에서 내렸던 사무장으로부터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회사가 허위진술을 강요했고, 심지어 조사장소에 대한항공 임원이 배석했다는 폭로가 나왔습니다.

◀안진걸 /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조현아 부사장의 불법행위, 일탈 행위를 숨기고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하기 위해서 그런 허위 진술을 강요한 것으로...

악화된 여론을 달래기 위해 주요 일간지 1면에 낸 사과 광고도 소용없었습니다.

◀임채운 /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변화하겠다 문화를 바꾸겠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보면 CEO의 의식이라던가 그런 가치관이라든가 그런 걸 바꿔야 되는데 의지나 그런 것을 표명한 것이 없이..

당시 1등석에 탔던 승객의 항의에도 엉뚱한 대응을 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박OO / 1등석 탑승 목격자▶

사과의 차원에서 무슨 모형 비행기, 달력을 보내 준다고 저한테 택배로 보낸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걸 보고 그 물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처신 방법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조현아 씨는 증거인멸 등의 혐의를 받아 곧 구속영장이 청구될 처지가 됐습니다.

조현아 씨의 행동 못지않게 무조건적인 오너감싸기로 일관한 대한항공의 후속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보려했지만

하나같은 반응들이었습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동료들끼리 같이 얘기하십니까. 이번 사안에 대해서?) 네 (어떻게?) 저 버스가 와서 가봐야 해서..

◀대한항공 승무원▶

죄송한데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어요.

기자 신분을 밝히자 서둘러 피합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안녕하세요 MBC 기잡니다.) 아니 괜찮아요.

10여년동안 승무원으로 일하다 5년 전 대한항공을 그만 둔 박 모씨.

박 씨는 직원들이 회사와 관련된, 특히 오너 일가와 관련된 언급을 피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박OO / 전 대한항공 승무원▶

처음에 유포한 사람을 추적해서 잡죠. 찾아서 색출해서 짜르던가..그렇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무서워서 나서는 사람 없었을거에요.

박 씨는 당시 조씨가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반말로 내리라고 한 것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평소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OO / 전 대한항공 승무원▶

함부로 대하고 막말하시고 그래왔기 때문에 전 직원이 전전긍긍 두려워하고 같이 비행기에 안 타고 싶어하죠.

승무원들은 회사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해 스스로를 기내 물건이라고 불렀다고 말합니다.

◀박OO / 전 대한항공 승무원▶

우리가 무슨 사람이야, 우린 기물이지 해요. 우리가 기물 밖에 더 되겠어? 저들의 눈에는..그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하는 거죠.

3년 전에는 기내 면세품 판매 실적을 올리려고 승무원 한 명 당 천달러씩 당을 내려보낸 적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승무원 구매 한도 100달러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는데 당시 기내 면세품 담당은 조현아 상무였다고 합니다.

◀박OO / 전 대한항공 승무원▶

이걸 사야 진급할 수 있다. 그룹장들이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다 보니 후배들이 전화와서 다른사람들한테 주문 받아서 사다가 줬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사주 가족의 말과 행동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박OO / 전 대한항공 승무원▶

"큰 주식회사인데 오너라고 해서 모든 직원을 마음대로 자를 수도 있고, 그럴수도 있다는 인식이 저희들은 팽배해 있어요,언제나. 이게 옳습니다. 라고 말할 그런 상황도 못됩니다. 부당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말을 안할 뿐이죠"

결국 이런 기업의 조직문화가 기업의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임채운 /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

총수 일가의 과실이 발생했을 때 그걸 드러내놓고 그 때는 내가 과도했다. 내가 진짜 잘못했다 반성을 한다 하는 얘기를 했으면 넘어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는데..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2,30대에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는 우리나라 재벌 2,3세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재벌닷컴 / 정선섭 대표▶

"빨리 승계를 해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 그런 조급함 때문에 사실은 경영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나 인성이 덜 갖춰지고 이런 이제 젊어서 최고층에 올라가다보니까 다소 안하무인 격인, 황제적인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 이런 현상 때문에 문제다"

재벌가의 일탈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지난 2011년 SK M&M의 최철원 사장은 탱크로리 화물 운전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때린 뒤 맷값으로 2천만원을 줘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당시방송 인터뷰 / 유홍준▶

"10대 맞고나서 제가 안 맞으려고 몸부림을 치니까요 그때 부터는 최 사장이 지금부터는 1대에 3백만원이씩 하겠다 그러면서 3대를 힘껏 가격했어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으면서 자랐고 이른 나이에 많은 권한을 갖게 되면서 재벌 2,3세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곽금주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를 따라온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기 중심적으로 되고 자기의 권위를 남용하게 되는 것까지 간다라고 볼 수 있겠죠.

"권한을 가진 사람은 자기중심적이 돼 본인의 실수에 대해 관대한 경향이 있고, 그 상대는 권한을 가진 사람의 권위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2580 제작진은 권한과 권위에 대한 간단한 실험을 해 봤습니다. "

나이가 비슷한 같은 성별의 두 명에게 교사와 학생의 역할을 맡겨봤습니다.

학생을 맡은 사람에게는 졸업식 뒤풀이와 관련한 서술형 답안을 작성하게 하고 교사를 맡은 사람에게 답안지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교사 입장에서 이 부분은 잘못 됐다 잘 됐다 평가하고 지적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시간을 재 주세요..

그리고 실험이라는 걸 알리지 않고 다음 과제로 넘어간다고 말하며 두 사람 사이에 과자를 놓아봤습니다.

이건 작성하시면서 편하게 드십시오. 다 드시면 더 드릴게요.

10번의 실험 가운데 7개 조에서 과자를 먹었는데 이 중 5개 조에서 교사가 먼저 과자를 집었습니다.

먹은 양도 많게는 3개까지 교사가 더 많이 먹었습니다.

◀이수빈 (교사 역할)▶

학생이 답안을 작성해야 되는 것과는 다르게 교사는 채점만 하면 되니까 그런 부분에서 조금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또 과자를 아예 먹지 않은 3개 조 가운데 두 조의 학생이 교사가 먼저 먹지 않아 과자를 못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목지선(학생 역할)▶

그냥 안 드시니까 왠지 좀 안 먹게 됐던 것 같아요. (먼저 드셨으면 좀 편하셨을까요?) 그럼 저도 아마 같이 먹었을 것 같아요

◀정경남(학생 역할)▶

쿠키를 좋아하는데 전 먹질 않았어요 교사가 먹었으면 저도 먹었겠죠. 먹으라고 권했을테니까

역할이 부여된 이후의 행동 관찰에서도 교사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은 과자를 먹은 손을 바닥에 털었던 반면,

학생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은 과자가루를 접시에 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두 사람의 상하 위계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곽금주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우리가 일상 현실사회에서 만들어진 권력 앞에서는 얼마나 약해질 거고 또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자신의 권력에 대해서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거 바로 이게 인간의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짧은 시간에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

하지만 위계질서가 강한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전근대적인 모습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상명하복의 문화가 오랫동안 군사주의 문화와 섞여 왔기 때문에 결국은 위의 사람의 지시가 부당하다 하더라도 거기에 승복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 문화가 기업의 경영 형태나 문화하고도 굉장히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세습해온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하지만 후계자가 되려면 부모의 도움없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해군 사관학교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는 등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영국 왕실 최초로 특수부대에서 근무한 윌리엄 왕자는 최근 미국 방문 중 코노미 좌석을 이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폐쇄적인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교류하려는 유럽 지도층의 모습은 속에서 자라 권한만 누리는 우리 재벌 2,3세들의 모습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 '땅콩회항'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도 '갑'을 모시며 '을'로 사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투영됐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우린 이런 위계질서 속에서 살고 있고 나는 거기에 기대서 살 수 밖에 없다. 그게 너무 분노스러운 거죠. 그게 저 안에 있다가 폭발하는 거에요."

결국 이번 사건은 잘못된 권위의식과 권한의 남용, 그리고 이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대응이 기업 전체에 얼마나 해를 끼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경영학에서는 책임이 동반된 힘을 '권한'이라고 하고, 그 권한으로 주변의 인정과 존경을 받으면 '권위'가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기업을 개인 소유물로, 직원을 '머슴'으로 생각하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을 버리고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합당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땅콩회항'이 남긴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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