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토막 시신 사건' 이 부른 장기매매 괴담

김민상 2014. 12. 1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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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4000만원 주고 간 이식 60대"사형장 인근 병원, 사형수의 것 짐작"

경기도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인 중국동포 박모(56)씨를 11일 밤 체포했다. 이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충격적이었다. 지난 4일 팔달산 등산로에서 토막 시신이 발견됐다. 검은 비닐 봉투에는 머리·팔·다리가 없는 사람 몸통이 들어 있었다. 몸통 안에 심장과 폐, 간이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시신은 박씨와 동거하던 중국동포 김모(48·여)씨로 추정된다. 그러나 박씨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장기 없는' 토막 시신 사건은 괴담으로 이어졌다. "납치와 장기매매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이 빗발쳤다. 인터넷에는 댓글 수천 개가 달렸고 '토막 시신' '장기 매매'가 검색어 상위권을 점령했다. 지난 9일 SNS에는 '조선족이 한국 젊은 남녀 장기를 노린다. 잡아서 기절시킨 후 필요한 모든 장기를 아이스박스에 넣는다'는 유언비어까지 퍼졌다.

 이 유언비어는 2012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우위안춘 사건이 발생했을 때 퍼진 내용과 동일하다. 중국 동포인 우는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칼로 훼손해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다. 그해 11월 인터넷에 "우위안춘 사건처럼 표적납치와 장기매매가 국내에서 성행한다"는 주장이 담긴 동영상이 유포됐다. 조회 수가 200만 건에 이를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이 영상은 "20세 이상 여성이 1년에 2300여 명 실종되는데 우위안춘 사건처럼 장기밀매에 이용된다"고 주장했다. 중국 납치조직들이 한국에 와서 한 달 동안 여성의 동선을 파악한 뒤 기회를 노리다 납치하고 장기를 적출한다는 것이다. 영상은 우위안춘 사건 당시 공개된 폐쇄회로TV(CCTV)를 보여 주면서 "길 건너편 차량 뒤에서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여성이 또 다른 납치 조직원"이라고 지목한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주목을 끌지 못했던 영상 속 인물을 공범으로 몰아가면서 조직화된 장기매매 범죄가 이뤄진다고 추측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장기매매에 관한 소문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것일까. 불법 장기매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나 장기이식 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불가능한 괴담이라고 입을 모았다. 질병관리본부 김택 장기이식관리과장은 "심장과 신장, 간과 같은 장기는 적출해 바로 이식하지 않으면 조직이 크게 손상된다"며 "장기를 이식하는 것도 10명에 가까운 의료진이 투입돼야 하는 고난이도 수술"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처럼 차량 내부에서 사람 한 명이 장기를 적출하는 게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수원 토막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 관계자도 "장기를 빼내려면 가슴 중앙에 위치한 흉골을 절개해야 하지만 시신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괴담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최근 『음모론의 시대』라는 책을 펴낸 서강대 전상진(사회학) 교수는 "완전히 허황된 괴담은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괴담의 일부분이라도 실체가 확보돼야 괴담이 주기적으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중국에서 장기매매로 이식을 받았다는 사례가 주변에 있고, 인육으로 만든 캡슐이 실제로 거래됐다는 경찰 수사 결과도 있어 괴담이 완전히 허황됐다고 치부해 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6036명에 달한다. 반면 기증자는 2416명에 불과했다. 쉽게 돌아오지 않는 이식 기회 때문에 아직도 많은 환자가 해외 장기매매를 바란다. 이식에 성공한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오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진다. 생사가 불투명한 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몰려든다. 그렇지만 이식받은 장기가 누구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 병원에서도 장기의 출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중국에서는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파는 조직이 있다'는 식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본지는 해외 장기매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판결 기록을 열람했다. 환자들은 장기의 출처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2004년 간경화 판정을 받은 A씨(53). 그는 얼굴이 갑자기 시꺼멓게 변해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을 정도였다. 국내 병원에서도 딱히 손을 쓸 수 없었다. 담당 의사마저 "시간이 지나면 중국에서도 못 합니다. 빨리 하세요"라며 해외 장기이식을 권할 정도였다. 5명 중 1명은 죽는다는 위험한 수술이었다. A씨는 "그래도 남은 인생을 환자로 살기 싫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가 수술받은 병원은 중국 베이징(北京) 근처에 있는 곳으로 중국 경찰조직이 직접 운영했다. A씨는 "화장실과 주방까지 갖춰진 병실에 조선족 통역사까지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4년 4000만원을 주고 간 이식을 받은 B씨(64)는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 곳 가까이 병원이 위치해 있어 직원들이 수시로 사형 집행시간을 물어보고 아이스박스로 장기를 옮겨 왔다"고 말했다. A씨는 "오후 6시에 갑자기 수술을 하자고 했다. 오후 4~5시에 간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형수의 것으로 짐작됐다"고 말했다. B씨는 장기매매 조직 괴담에 대해선 "중국 정부도 사형수와 그 가족에게 장기 적출 의사를 먼저 묻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길거리를 가다가 납치를 당해 장기가 적출됐다는 건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중국 장기이식 수술가격이 2~3배 이상 뛰어올랐다고 한다. 부산지검에서 2011년 적발된 한 브로커는 2007~2010년 중국 원정수술 대가로 간 이식에 1억원, 신장 이식에 5000만원을 챙겨 온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최근 중국 간 이식은 2억원에 이른다. 일반인들은 갈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해외 장기이식이 어렵다 보니 국내 불법 이식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장기매매가 불법이다. 가까운 가족만 무상으로 기증할 수 있다. 먼 친척이나 지인들 간 장기 기증의 경우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국내 불법 이식은 간의 일부나 신장 한 개를 떼어 줄 한국인을 찾아 가까운 가족으로 속여 이식받은 뒤 몰래 돈을 주는 식이다. 단속이 심해지는 시기에는 장기 매도자와 함께 인도에 가서 이식 수술을 받기도 한다. 수원지법은 지난 2월 인도에서 간 일부를 떼어 주는 수술을 받는 대가로 1억5000만원을 제시한 브로커 일당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일당 중에는 서울 대학가 인근 식당에서 일을 하는 인도인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 빚에 시달리던 여성 피아노 강사는 5000만원을 받고 간을 떼어 줬는데 후유증이 심해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불법 장기이식 때문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납치 후 장기매매가 실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안구는 적출해 보존액에 잘 담가 놓으면 24시간이 지나도 수술이 가능하다"며 "길 가다가 납치를 당해 안구가 없어졌다는 해외 토픽이 사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장기매매와 적출에 대한 괴담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제노포비아를 확산하고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 영상은 "2002년 김대중 정권이 제주도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기 때문에 중국 장기밀매 조직이 한국에 들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상진 교수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도 선입견 때문에 또다시 괴담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장기이식을 둘러싼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불일치가 해결돼야 괴담 문제도 풀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가 급한 환자들이 불법 장기매매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려면 결국 장기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장기기증원 하종원 이사장(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은 "장기·조직 기증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스페인은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가 35명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8명에 불과하다"며 "환자와 기증자를 잇는 중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step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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