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파동은 '평균의 함정'

2015. 1. 2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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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세금 내는 사람들은 개개인인데 기재부가 '평균치'로 뭉뚱그려

"100명의 군인들이 강을 건넌다. 군인들의 평균 키는 1m80㎝. 강의 평균 깊이는 1m50㎝다. 보고를 받은 장군은 도강을 명령했다. 그런데 강 언저리를 지나니 물이 갑자기 깊어졌다. 병사들이 한 명 두 명씩 빠져죽기 시작했다. 겁이 난 병사들은 뒤를 흘깃흘깃 쳐다봤지만 장군은 '돌격 앞으로'만 외쳤다. 물에 빠져죽는 병사가 속출하자 장군은 당황했다. 그제야 장군은 회군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군사를 잃은 뒤였다. 알고 보니 이 강의 최대 수심은 2m였다. 군사 중에 2m가 넘는 사람은 30명이 안 됐다."

'평균의 함정'을 설명하는 유명한 우화다. 2014년 소득분에 대한 연말정산 사태를 지켜본 세종의 한 관료는 "이번 사태는 꼭 이 우화를 닮았다"며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개개인들인데 기재부가 '평균치'로 뭉뚱그려 설명한 것은 무리였다"고 말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당정협의회를 통해 2014년 소득분에 대한 연말정산을 소급입법해 주기로 하면서 파문은 일단 진정됐다. 하지만 구체안이 아직 확정된 것이 없어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1월 21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연말정산 논란과 관련 최경환 경제부총리(오른쪽)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소급 입법해도 불씨는 살아 있어

이번에 논란이 된 연말정산은 악연이 길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첫해인 2013년 8월 세법개정안이 공개됐다. 소득세를 먼저 건드리는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이 골자였다. 소득공제를 건드린 것은 세율을 올리지는 않으면서도 증세효과를 낼 수 있는 묘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봉 3450만원부터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450만원을 '소득상위 30%'로 표현한 것이 월급쟁이들의 화를 돋웠다. 여론이 들끓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재부에 재설계를 명령했다.

그렇게 확정된 것이 현행 제도다. 연봉 5500만원 이상부터 세금이 오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당시 기재부는 설명했다. 1월 15일 2014년 소득분에 대한 연말정산이 시작됐다. 하지만 여론이 다시 악화됐다. 정부 주장과 달리 연봉 5500만원 이하 소득자 중에서 세금을 많이 토해내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펄쩍 뛰며 난리가 났다. 정부는 "5500만원까지는 정말 세금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지만, 여당은 "당장 우리 사무실부터 난리가 났다"며 분노했다. 그 서슬에 정부는 이미 통과된 개정안을 또 손대기로 했다. 정부도, 여당도 "징글징글하다"고 할 만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총급여 5500만원 이하자 중 '아주 일부' 근로자만 예외적으로 부양가족 공제, 자녀 교육비·의료비 공제를 적용받지 못해 세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며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아주 일부'가 얼마나 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신원기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주변의 분위기를 보니 '아주 일부'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주부들이 모이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장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금이 대폭 늘 것으로 추정되는 1인공제자의 경우 연봉 6600만원 이하자만 100만명이 넘는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정부는 과연 개인별 편차가 심하다는 것을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자체를 잘못했든지, 아니면 알고도 의도적으로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시뮬레이션을 잘못했다면 "연말정산 개편으로 8600억원의 세수가 늘 것"이라고 밝힌 것도 믿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1조원이 넘을 수 있다. 이미 정부는 "확대되는 세수는 9300억원"이라며 700억원을 높인 상태다.

2년 전 세법개정안을 만들었던 한 핵심 인사는 "시뮬레이션을 안 해봤을 리가 있겠느냐"며 "지금도 그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인별 편차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고, 당시에도 그런 사실을 밝혔다"며 "다만 이런 점을 좀 더 알리지 못한 것이 아쉽고, 이번 연말정산 직전에 부처에서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홍보 부족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얘기다.

하지만 야당의 주장은 다르다.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자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3년 당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켰던 한 야당 의원은 "개인별 세수추계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하면 '시간이 없어서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평균치를 제시한 정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세소위 위원인 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세제개편안 논의에서 제도를 바꾸면 국민들의 세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등이 정확히 공유되지 않았다"며 "기재부에 전망치를 가져오라고 하면 개괄적인 평균치만 가져오기 때문에 충실한 심의가 되지 않고 사후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기재부 일부 "언론이 부풀렸다"

기재부 일각에서는 억울해하는 시각도 있다. 언론이 과도하게 부풀렸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2월 연말정산이 끝나보면 우리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일부 언론에서 나오는 것처럼 세금부담이 그렇게 크게 늘어나는 경우는 설계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공제 변경의 부작용'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 역진성 해소는 크지 않고, 개인별 편차만 커진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소득세란 개인의 소득에서 필요경비를 뺀 남는 부분(과표)에 세율을 매겨 과세하는 제도다. 개인이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교육비·의료비 등은 필요경비로 보고 소득공제를 시켜줘야 한다. 반면 월세처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비용은 세액공제가 맞다는 것이다. 만약 교육비·의료비 등을 세액공제로 바꾸면 개인마다 편차가 커 역진성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되레 같은 소득 내 공제 차이만 커질 수 있다. 홍기용 한국세무학회 회장(인천대 교수)은 "기재부가 공제의 특징을 잘못 이해했던 것 같다"며 "소득재분배 기능을 생각하면 높은 과표에 적용되는 세율을 높이면 끝날 일이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그러면서 "공제를 건드리는 순간 이미 논쟁은 예고된 것이었고, 충분한 검토와 홍보가 없는 상황에서 예견된 파문이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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