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성추행 교수 사표 수리.. 진상조사 외면

김관진 2014. 11. 2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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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유예할 권한 없다"며 면직 처분, 퇴직금·재취업 등 신분 불이익 없어

피해 학생 '비상대책위원회' 등 "학교 측 제 식구 감싸기 위한 꼼수"

성추행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강모(53)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27일 사직원을 제출했다. 서울대는 이를 받아들여 면직 처분키로 결정했다. 학교의 진상조사를 모면하려는 꼼수라는 비판과 함께 강 교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은 서울대 인권센터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다.

서울대에 따르면 강 교수는 성추행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 '일신상의 이유로 교수직을 사직한다'는 내용의 사직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면직은 해임, 파면 등 징계에 해당하지 않아 강 교수는 교수를 그만둬도 퇴직금, 연금을 다 받고 재취업 등에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또 서울대 인권센터는 교원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어서 면직된 강 교수에 대한 조사를 더 진행할 수 없게 된다. 학교 측은 "문제가 발생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재발방지 및 교수 윤리 확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면직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학교 측의 '제 식구 감싸기'로 진상규명이 불가능해졌다며 즉각 반발했다. 강 교수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학생들이 결성한 '피해자 X' 측은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으며 서울대의 면직 처분을 반대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수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강 교수의 사직원을 수리하는 것은 사건을 덮겠다는 것"이라며 "면직 처분 결정을 철회하고 진상규명 후 징계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무처 관계자는 "공무원의 사직원은 소속 기관이 유예할 수 있지만 법인화된 서울대 교수들은 공무원이 아니다"며 "학교는 교수가 낸 사직원을 유예할 권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직원은 강 교수 스스로 사건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낸 것으로 생각한다. 징계를 면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면직 결정 이전부터 학교 측이 진상규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가 성추행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후 2주가 넘도록 강 교수를 불러 조사하지 않고 피해자 실명접수를 요구하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피해자 X' 측은 "서울대 인권센터는 피해자가 실명으로 접수해야 강도 높은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조사 강도를 자체적으로 조절하고, 추진할 수 없다면 센터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냐"고 질타했다. 피해자들을 대신해 기자회견문을 읽은 한유미 변호사도 "피해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며 "학생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껴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강 교수는 지난 7월 서울의 한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며 데리고 있던 다른 학교 출신 20대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강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학생들은 11일부터 사흘간 온라인 등을 통해 추가 피해사례 22건을 모아 '피해자 X'를 결성한 후 26일 대학에 엄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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