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쫓겨 못 먹던 아침밥 먹어.. 집중 잘 돼요"

안아람 정준호 2015. 3. 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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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 첫날 '9시 등교제'

서울 초·중·고교 32%가 시행, 시간적 여유 생긴 학생들 "좋아요"

맞벌이 부부는 출근전쟁에 발동동

상당수 학생은 이전 시간대에 등교, 일부선 아침도서관 등 묘안 찾기

"못 먹던 아침밥을 먹으니 성적도 더 오를 것 같아요."

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수서초등학교 앞. 새 학년 첫날을 맞아 엄마나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의 표정은 유난히 밝아 보였다. 이날부터 오전 8시40분이었던 등교 시간을 오전 9시로 늦춘 '9시 등교제'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20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몰라도 학생들의 체감 시간은 확실히 차이가 나는 듯 했다. 잠을 더 자거나 아침밥을 챙겨 먹을 시간적 여유가 생긴 까닭이다. 평소처럼 오전 8시에 일어났다는 6학년 공현중(12)군은 "아침에 여유 있게 씻고 등교 준비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중학교 학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 2학년이 된 서울 가산중 양은혜(14)양은 "평소 못 먹던 아침밥을 먹었더니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30분 정도 더 잤더니 학교에서 집중도 더 잘 되고 성적도 오를 것 같은 느낌"이라며 반겼다.

9시로 늦춘 등교 시간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학부모들도 대체로 9시 등교제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초교 2학년 딸을 바래다 준 백기탁(42)씨는 "작년만 해도 오전 7시30분쯤 일어나 힘들어하던 아이가 오늘은 8시에 일어나 준비하는 걸 보니 보기 좋았다"며 "엄마가 아이 머리를 땋아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 도림초에 자녀 둘을 보내고 있는 고은희(37)씨는 "20분 차이지만 아침 시간에 닦달하지 않아도 돼 아이들 정서에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자녀를 등교시키고 출근까지 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들의 아침 시계는 더욱 빨라졌다. 서울 아현초 3학년 딸을 둔 한 김모(43)씨는 아이가 학교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마자 인근 지하철역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김씨는 "(등교 시간 늦춘 것) 난 반대예요. 안 그래도 출근 시간이 빠듯한데…"라며 푸념했다.

맞벌이 부모를 둔 학생 상당수는 9시 등교제와 상관없이 이전 시간대에 등교하는 모습이었다. 학교 측도 이런 불편을 감안해 학생들을 모아 책을 읽히거나 운동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묘안을 짜내고 있다. 김재환 미아초 교장은 "직장맘들을 위해 학교 도서관을 오전 8시부터 개방하고 아침 돌봄 교실도 운영 중"이라며 "학부모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 사안이라 늦춰진 등교 시간의 긍정적인 효과가 반감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9시 등교제의 성패를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날 서울에서 9시 등교를 실시한 초ㆍ중ㆍ고는 1,299개교 중 32%(426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등교 시간이 초등학교보다 빨라 9시 등교의 체감 효과가 큰 중학교와 고교는 각각 14곳과 1곳만 시행 방침을 밝히는 등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다. 지난해 9월 논란 속에 '9시 등교'를 처음 강행한 경기 지역에 여전히 반대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지역에서 '학원 새벽반' '새벽 그룹별 과외' 등 부작용이 나타난 것처럼 학생들의 수면권ㆍ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의 취지가 몰각되고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과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실제 취재 중 만난 일부 중학생들은 "신체리듬이 9시 등교에 익숙해지면 아침 시간을 활용해 학원을 이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에도 인천(96.4%) 강원(84.7%) 등 지역이 등교 시간을 9시로 늦췄다. 울산 대구 경북은 9시 등교를 시행하지 않고, 부산 대전 경남 전남은 학교장 재량에 맡겼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고지대가 많은 지역 특성상 여름에 땀을 흘리는 학생이 많아 등교 시간을 8시 이전으로 앞당기는 학교도 많다"며 "등교 시간을 강제하기보다 0교시 수업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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