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정당방위.. 여성의 경우

기자 2014. 10. 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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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

자기 집에 침입한 강도를 때려서 식물인간이 되게 만든 죄로 최근에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20대 남성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가난 때문에 절도를 하려다가 식물인간이 되도록 맞아서 언제 깨어날지 기약이 없는 50대의 경우는 참으로 딱하다. 그러나 여러 언론 매체가 길을 막고 물은 행인들은 대부분 자기 집이 침입을 당했을 경우 침입자를 제압하기 위한 폭력은 정당방위로 인정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나는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 도둑이 쓰러져서 피를 흘리는데도 계속 폭력을 행사한 젊은이는 정말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불시에 내 집을 침입한 도둑에게 어느 정도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 같다. 도둑이 나와 내 가족을 상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빠진 시점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법원이 공표했다는, 도둑이 맨손이면 집주인도 맨손으로만 저항해야 하고 자기가 당한 정도 이상의 상해를 도둑에게 입혀선 안 된다는 규정은 지극히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법원의 규정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도둑에게 먼저 두들겨 맞거나 흉기에 찔리기 전에는 대응해선 안 되는 게 아닌가? 더구나 도둑은 대부분 흉기를 감추고 다니니까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아닌지 겉보기로는 알기 힘들고, 당황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는 더욱더 알 수 없을 터이니 도둑에게 선수를 양보(?)하는 것은 완전히 목숨을 내맡기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현대인은 대부분 피해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 자동차나를 비롯해 자칫하면 살생무기가 될 수 있는 기계·시설이 곳곳에 널려 있고 인간관계가 대립적·경쟁적이 돼서 내면에 경쟁심과 적대감이 쌓였기 때문일 텐데, 어쨌든 대부분 현대인들의 무의식 속에 크나큰 피해의식이 자리 잡은 건 사실이다. 집 밖은 정글이고 전쟁터라고 의식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일단 집에 들어오면 편안하고 안전해야 하는데 자기 집에 도둑이 들면 공포는 물론 피해의식과 분노가 함께 폭발하기 쉽다.

이 논쟁의 계기가 된 젊은이의 경우 도둑이 자기의 재산을 탈취하려 할 뿐 아니라 어머니와 누나에게 성적인 상해를 입힐지(입혔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내재했던 울분과 피해의식과 폭력성을 폭발시켰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의 그날 밤 행동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것이지만, 대법원의 정당방위 인정 가이드라인은 자신이 무방비 상태라고 느끼는 힘없는 서민들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번 사건 이후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가택 침입을 당한 시민은 침입자의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사살해도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개척시대였다면 상대편의 총기 소지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그는 산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10여 년 전에 10대의 일본 유학생이 밤에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의 아버지가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프리즈(freeze!, 꼼짝 마!)'라고 소리쳤는데 그 말의 뜻을 모른 유학생이 계속 접근하다가 총을 맞아 숨진 일이 있다. 많은 미국인을 안타깝게 한 사건이지만 그 친구의 아버지는 정당방위가 인정됐다. 그보다 여러 해 전에 환풍구로 침입한 도둑에게 도난을 당한 뒤 환풍구에 강한 전류를 흐르게 해서 재침하는 도둑을 감전사시킨 가게 주인에게는 과잉방어라는 판결이 내려졌던 것 같다.

내가 이 사건과 판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날 도둑을 발견한 것이 여성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여성은 재산과 목숨보다도 성적인 침해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고, 절대다수의 여성은 도둑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포로 인해 이성이 마비되지 않겠는가? 이럴 때 여성은 자기방어 본능에서 무기를 찾게 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빨래 건조대 같이 어설픈 무기이고, 상대에게 빼앗길 경우 오히려 자기가 큰 해를 입게 되기 쉬운 무기라 해도 손닿는 곳에 있기만 하면 엉겁결에 잡아서 휘두르지 않겠는가?

자기를 방어할 도리가 없어서 강간을 당하고만 여성의 평생 회한과 울분은 9세에 강간을 당하고 21년 뒤에 그 성폭행범을 살해하고서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절규한 김부남 씨의 경우가 입증해 준다.

여성이 위기 상황에서 필사적인 저항을 하다가 강간범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 정당방어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 사법의 현주소다. 한편 필사적인 저항도 헛되이 성폭력의 제물이 된 여성들도 법의 설욕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성폭력의 피해자들을 오히려 죄인시하고 능멸하고 짓밟기 때문에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을 일생 두려움에 떨며 숨어 살게 만들어서 오늘날 일본이 그들의 위안부 강제동원 죄과를 부인할 틈을 준 우리의 유교문화는 21세기에도 성폭력 피해자들을 음지에서 울게 만든다.

자신을 아홉 살 때부터 10여 년 간 성노예로 부려온 의부가 검찰청 관리여서 고발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남자친구의 힘을 빌려 살해한 김보은 양의 경우는 현재와 미래의 악랄한 성폭행에 대한 정당방위 행위였으나 유죄판결을 받았고 조사 과정에서 '의붓아버지와의 성관계를 즐기지 않았느냐'는 심문(또는 희롱)도 당했다고 한다.

여성이 자기의 신체적 존엄성을 수호할 수 있도록 법이 든든한 울타리가 돼줘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남성과 여성 두 개의 건각(健脚) 위에 굳건히 서게 될 것이다. 우리의 법은 여성의 신체적 존엄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의지가 있는가?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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