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집 못 구해 '별거 신혼'

김현빈 2015. 3. 28.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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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난 탓 부모 집서 생활 등 생이별

정부 지원은 저소득층에 집중

도시 예비부부들 대출 까다로워

자칫 결혼포기 세태로 이어질 수도

지난달 결혼한 박모(31)씨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한 달째 사실상 '별거' 생활을 하고 있다. 5박 일정의 여행은 달콤했지만 갓 결혼한 부부를 별거 아닌 별거로 이끈 건 다름 아닌 전세난이다. 경기 일산에 직장이 있는 박씨는 현재 서울 은평구의 부모님 집에, 경기 하남시가 직장인 부인은 강동구 부모님 집에 임시 거주하며 주말 부부로 살고 있다. 박씨는 27일 "부인 직장과 2세 계획을 고려해 강동구에 집을 얻으려 했지만 전세 가격이 너무 뛰어 엄두를 못내고 있다"며 "자녀 계획도 기약 없이 미뤘다"고 토로했다.

전세대란의 여파로 '별거 신혼'이 늘고 있다. 3~5월은 매년 성사되는 20만~30만 건의 결혼 중 30% 이상이 집중되는 기간이다. 당연히 신혼집 수요도 폭증하지만 전셋값도 덩달아 껑충 뛴 탓에 신혼 커플이 생이별을 하는 풍속도가 생겨난 것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서울 강동구의 경우가 올해 1분기 동안 전셋값이 7% 올랐는데 이는 작년 한해 전국 평균 전세 상승폭이 7%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거의 폭등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젊은 부부의 경우 내 집 장만이 어려운 점도 별거 신혼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전에서 2주째 별거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김학민(35)씨는 서울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부인을 위해 부서 이전까지 신청해 놨으나 모아둔 1억5,000만원으로 서울의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급하게 목돈을 마련하려 정부가 지원하는 '서민 전세자금 대출'도 기웃거렸지만 부부 합산 소득이 '연간 5,500만원 이하'가 돼야 한다는 조건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김씨는 "양가의 체면 때문에 결혼을 미룰 수도 없어 임시방편으로 별거 신혼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별거 신혼 현황이 제대로 조사된 적은 없지만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의 한 웨딩홀 관계자는 "결혼식 연기가 가능하냐는 문의가 지난해보다 두 배는 증가했다"며 "과거에는 결혼준비로 인한 갈등이 주된 예식 연기 사유였다면 올해는 살 집을 못 구해서라는 답변이 단연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2030세대 2,8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결혼을 포기했다'고 응답한 사람 중 절반가량(49.8%)이 '주택마련 부담'을 이유로 꼽았다. 전세대란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 2030세대의 상당수는 잠재적 '별거 신혼' 대상자가 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별거 신혼은 언뜻 '웃기면서도 슬픈' 세태로 비쳐질 법도 하나 가뜩이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젊은층의 결혼 포기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벼운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신혼부부 주거 안정' 대책은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지역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정부가 과제로 제시한 행복주택 공급이나 주택금융 지원 등은 소득이 낮은 계층에 대한 지원책이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신혼부부들은 아예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소규모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근본 대안 없이 대출만을 장려하는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신혼부부들에게 '대출 폭을 늘려줄 테니 집을 마련하라'고 강요하는데, 전세난의 직격탄을 맞은 도시 거주 예비부부들은 부부합산 소득 조건에 미달돼 효과가 없다"며 "젊은 부부를 위한 안정적인 주택공급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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