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票퓰리즘'이 결국 정국파행 불렀다

김정남 2014. 11. 2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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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명확하지 않은 누리과정..갈등잉태
세수부족 미리 예측 못한 정부·정치권 책임도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 탓에 27일 이틀째 국회가 멈춰 섰다. 새해 예산안 심사기한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누리과정 국고지원 예산 3000억여원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대치를 이어갔다. 376조원 규모의 예산안을 볼모로 잡은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누리과정은 불과 3~4년 전만 해도 보편복지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8개월 전인 2011년 3월.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는 "무상보육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무상보육 등을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였다. 그해 정치권에서는 무상 공약이 줄을 이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인 그해 8월 "만 0~2세도 무상보육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만5세 보육료를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누리과정을 발표한 지 불과 3개월 만이었다. 이에 민주당은 곧바로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그렇게 해서 여야는 그해 0~2세 무상보육과 5세 누리과정을 반영시킨 예산안을 처리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이듬해인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겹친 해였고, 여야가 경쟁하듯 무상 계획을 내놓았던 것이다.

선거의 해인 2012년에는 논의가 더 가팔라졌다. 정부는 당장 1월부터 만3~4세 누리과정 확대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여야는 0~5세 전 계층 보육료를 지원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나란히 내놨다. 그해 연말 박근혜·문재인 당시 여야 대통령 후보는 0~5세 누리과정을 핵심공약으로 내걸었고, 관련 예산도 곧장 반영됐다.

이후 정부는 지난해 초 누리과정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부담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선거를 앞둔 불과 1~2년새 누리과정이 일사천리로 현실화됐다.

◇현행법상 개념 명확치 않은 누리과정

무상보육의 장밋빛 꿈은 채 2년이 가지 않았다. 여야는 누리과정을 두고 '네 탓'만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 출발은 결국 선심성 '표(票)퓰리즘'이었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총·대선을 앞둔 여야의 성급함은 당장 법적 미비를 초래했다. 누리과정은 교육과 보육이 합쳐진 개념이다. 교육과 보육의 경계가 애매해진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둘을 명확히 갈라놓은 법체계(영유아보육법, 유아교육법 등)까지 바꾸진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여당과 시·도교육청이 벌이는 법리 논쟁도 여기서 시작된다. 정부·여당은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누리과정 재원은 지방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시·도교육청은 누리과정은 보육의 영역이라고 맞서고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상 교부금 지출대상인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교육과 보육의 개념을 둘러싼 현재 갈등은 결국 법체계를 명확히 하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는 누리과정과 관련한 입법에는 손을 놓고 있다.

◇세수부족 예측 못한 정부·정치권 책임

더 본질적인 문제는 결국 돈이다. 최근 누리과정 논란이 불거진 직접적인 이유도 세수 부족 때문이었다. 정부는 매년 예상되는 세수의 20.27%를 교부금으로 시도교육청에 준다. 정부가 지난 2011년부터 누리과정을 의욕적으로 추진한 것도 이 교부금이 매년 증가할 것이라는 추계가 그 바탕에 있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세수는 급격히 줄었다. 이에 정부는 올해 과다 지급된 2조7000억원을 내년 교부금에서 줄이기로 했다. 시도교육청이 받는 교부금(39조5000억원)이 올해보다 1조4000억원 축소된 것이다. '영유아 무상보육 비용은 예산의 범위에서 부담하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교부금으로 부담한다'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두고, 시도교육청이 '예산 범위 내'를 내세우며 반발하는 이유다.

정치권도 책임이 크긴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복지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선이 임박하다 보니 보편복지를 두고 너무 안일하게 봤다"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이번 누리과정 논쟁이 봉합된다고 해도 재정 문제는 계속될 것이고, 보편복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줄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각종 선거 때마다 선심성 공약을 내는 문제는 불거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인들이 공약을 세울 때 재정추계 문제를 더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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