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리얼 전도사', 백배 사죄합니다

입력 2014. 10. 23. 14:21 수정 2014. 10. 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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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곽동운 기자]

▲ 자전거여행

저 앞바구니에 항상 시리얼이 담겨 있었다. 2012년 울릉도 항목령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여행하느라 힘들 텐데, 그냥 빨래는 대충 하지 왜 세제를 가지고 다니시나?""예? 세제요? 무슨 세제요?""거기 앞에 있잖아. 바구니에 파란 거.""윽... 이거 세제 아니에요, 시리얼이에요."

2012년 여름, 당시 필자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 중이었다. 한계령을 넘으려고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동네 어르신한테 저런 소리를 들었다. 눈이 어두웠던 그 분은 파란색 시리얼 상자를 '가루비누'로 착각했던 것이다.

'빨랫비누라니요! 저게 저한테는 얼마나 고마운 밥인데요!'

여행의 동반자 시리얼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면 항상 먹는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끼니 때마다 매번 식당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돈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장거리를 이동하다 보니 제시간에 식당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리를 해먹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매번 초콜릿 바로 배를 채울 수도 없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결국 시리얼을 먹기로 했다. 간편한 데다 우유 또는 두유와 함께 섭취하니 건강을 챙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쓰지 않는 그릇에 작은 숟가락을 넣으면 시리얼 '밥통'이 되기 때문에 부피도 작아 안성맞춤이었다.

폭우가 내려 텐트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날에도 시리얼은 주전부리가 돼주었다. 과자가 생각날 때 심심풀이 땅콩 같은 역할을 해줬다. 새우깡이나 꼬깔콘이 간절했지만 폭우를 뚫고 읍내 마트까지 갈 엄두가 안 나 주섬주섬 시리얼을 봉지를 뒤지곤 했다. 감자칩보다는 못해도 바삭바삭한 게 먹을 만했다.

준비하기도 편하고, 동시에 우유와 두유까지 섭취할 수 있고, 비 올 때는 심심풀이 땅콩 역할까지 했던 시리얼. 그런 시리얼은 어느 순간부터 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코펠이나 버너보다 시리얼 밥통을 먼저 챙길 정도였으니까.

시리얼 전도사가 되다

▲ 시리얼

필자가 즐겨먹었던 동서식품 아몬드 후레이크. 동서식품 자가품질검사에서 대장균이 검출된 제품이다. 동서식품 홈페이지 캡쳐.

ⓒ 화면 캡쳐

어떨 때는 삼시 세끼를 시리얼로 때운 적도 있었다. 물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체력적으로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시리얼 전도사가 됐다. 주위 사람들이 행동식으로 무엇을 먹으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할 때마다 이런 대답을 했다.

"시리얼 드세요. 읍내 마트에서 묶음으로 파는 두유 사다가 같이 말아 먹으면 간편해서 좋아요. 그렇게만 있으면 전 지리산 종주도 당장 할 수 있어요."

"너무 자주 먹으면 지겹지 않아?"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건포도 같은 거 둥둥 띄워 먹었더니 입에 잘 들어가던데요."

나의 시리얼 예찬은 점점 커져, <오마이뉴스> 여행기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11월 19일에 나간 '가난뱅이도 울릉도를 여행할 권리는 있다'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관련기사 : 가난뱅이도 울릉도를 여행할 권리는 있다).

전쟁 때는 주먹밥 먹고도 전투를 잘 했다고 하지 않던가! 주먹밥보다는 두유나 우유에 시리얼 둥둥 띄워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여행자라면 이런 정도는 감수를 해줘야지!

불량식품은 4대악

내가 시리얼 예찬론자서 그런가? '대장균 시리얼' 사태는 정말 충격이었다. 지난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동서식품의 '포스트 아몬드 후레이크'등 네 종류의 시리얼의 판매와 유통을 잠정적으로 금지한다고 밝혔다.

내 여행의 동반자였던 시리얼이 불량식품이었다니! 더군다나 내가 즐겨 먹었던 '아몬드 후레이크'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니! 이번에 시리얼 파동을 일으킨 동서식품은 '동서커피문학상'을 주관하고, 세계 최초로 커피 믹스를 개발하는 등 나름대로 좋은 이미지를 가진 기업이었기에 입맛은 더욱 씁쓸했다. 동서식품은 문제의 10월 17일 이전에 만든 시리얼들을 유통기한과 상관없이 모두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동서식품은 자체품질검사에서 대장균군이 발견됐지만 폐기하지 않고 문제의 제품들을 다른 제품에 섞여 완제품을 만들었다.

▲ 4대악

불량식품은 4대악 중 하나다.

ⓒ 안전사회 정책브리핑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그보다도 더 내 속을 들끓게 했던 건 지난 21일에 내린 식약처의 처분이었다. 식약처는 동서식품 시리얼에서 대장균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자가품질검사 결과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했다. 식약처가 동서식품에 면죄부를 내린 셈이다.

아이들도 즐겨 먹는 시리얼에 대장균이 발생한 제품을 새 제품에 섞어 재활용했는데 고작 과태료 300만 원 처분이라니! 불량식품 문제를 '4대악'중 하나라고 선포한 정부의 호언이 무색할 정도다. 이번 처분이 더욱 문제인 건, 내부 고발로 수면에 떠오른 문제를 담당 기관이 행정 처분으로 무마했다는 점이다. 그 내부 고발자만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뻔하다.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지난 200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불량만두 파동에서 보듯 먹거리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누구나 다 그 대상이 되어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리얼은 아이들도 많이 먹지 않는가?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대장균 시리얼'을 내놓겠는가?

그나저나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 여행할 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당장 다음 달에도 장거리 여행 일정이 잡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이 말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제발 부탁이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 어디 불안해서 음식을 입에 댈 수 있겠나!"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라고 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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